10,000시간도 비껴간 예고 꼴찌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소 1만 시간의 '의도적인 연습'이 필요하다는 법칙을 세상에 내놓았다.
1만 시간만 채우면 나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학년 때 못해도 3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간 선배도 있다지 않은가. 나는 내 집념의 시간을 믿었다.
[반에서 1등, 전교 6등. 나는 인재였다]
예고에 처음 입학했을 때 나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실기성적은 반에서 피아노 전공생 15명 중 6등. 고작 6개월 준비해서 들어온 것치고는 놀라운 성적이었다. 공부 성적은 더 압도적이었다. 반에서 1등, 전교 6등. 나는 내가 음악과 공부를 다 잡은 인재인 줄 알았다.
첫 상담 날, 담임 선생님은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리안이는 지방 국립대는 당연하고요, 서울대나 사범대 쪽으로 목표를 잡아보시죠."
[88명 중에 79등]
하지만 그 달콤한 꿈은 첫 실기시험에서 처참히 깨졌다. "88명 중에 79등."
예고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마다 실기시험을 치러야 했고, 연주회 형식의 수업이 따로 있었으며 각종 음악이론, 청음 등 전공 수업이 휘몰아쳤다.
매번 바뀌는 실기시험곡은 학년에 높아질수록 어려워졌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본 꼴찌에 가까운 점수. 이틀을 꼬박 울었다. 6개월 만에 단 두 곡으로 예고의 문을 통과한 '무늬만 전공자'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음악 용어조차 제대로 몰랐다. 예술중학교에서 올라온 친구들, 어릴 때부터 교수님 레슨을 받은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에 나는 끼어들 수 없었다.
"테크닉이 좀 부족한 것 같아." '테크닉? 테크닉이 정확히 뭐야?'
나는 테크닉이 뭔지도 모르는 채 예고생이 되어 있었다.
[새벽 6시의 연습실]
하지만 꼴찌는 참을 수 없었다. 새벽 6시, 어둠이 깔린 연습실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건반을 눌렀다.
손끝은 벌어져 자주 피가 났고, 이미 짧은 손톱을 더 깎을 수 없어서 네일파일로 손톱을 갈아가며 연습했다. 연습을 해도 새끼손가락이 제대로 서지 않는 나를 보며 레슨 선생님조차 신기해할 정도였다.
그 시절 발레리나 강수진의 혹독한 연습 수기를 읽으며 오기를 다졌다. 그 아름다운 발을 보며 나의 손의 고통도 당연한 과정이라 여겼다.
여름에는 선풍기 바람 하나에 의지해 피아노를 쳤다. 다리와 의자는 늘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베이비파우더를 발라 뽀송뽀송하게 만드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겨울에는 학교 시멘트 바닥의 한기를 얇은 구두로 견디느라 결국 동창에 걸렸다. 어그부츠도 아니고 구두가 학교 복장의 기본이었다.
베이비파우더 향기는 지금도 나에게 그 어떤 아로마 치료제보다 편안함을 주지만, 동창은 겨울마다 잊지도 않고 나를 찾아온다. 젠장.
[입시에 망한 예고생]
하지만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게 있었다. 3년 내내 나는 '실기 꼴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공부 성적은 학교 수업만으로도 유지되어 꾸준히 전국 모의고사 2, 3등급을 찍어주었다. 학교에서만 하는 공부로 수능까지 칠 수 있었지만, 정작 내 본업인 실기에서 나는 그저 '입시에 망한 예고생'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