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고의 아이들
노다메 칸타빌레가 유행했었다. 치아키 센빠이가 지휘를 하는 모습에 반하고 노다메가 피아노 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은 일본 드라마.
우리는 현실판 노다메 칸타빌레였다.
[예술고의 천재들]
예술고에는 다양한 천재들이 모여 있었다.
밖에서 "계란이 왔어요~싱싱하고 맛 좋은 계란이 왔어요" 하는 방송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작곡 천재. 매일 선생님이 자취방으로 깨우러 가야 겨우 학교에 오는데, 쇼팽 에튀드를 엄청난 속도로 쳐내는 게으른 피아노 천재(내가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저 녀석은 연습도 안 하는데 피아노는 왜 잘 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드는 친구였다.)
쉬는 시간에 진지하게 악보를 보며 곡 분석을 하는 나의 짝꿍. 단 한 번도 피아노 전체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천재였다. 나는 악보를 봐도 뭘 분석해야 하는지 모르는 수준이었기에,
"뭘 보는 거야? 뭘 듣는 거야? 뭐 해야 해?"라고 물어보면 시크하게 악보만 보며 "좀 들어봐"라고 대답했다.
절대음감을 가진 천재 친구들은 집에 가는 길에도 "도~"라고 누군가 음정을 잡으면 "레~" 하고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교향곡을 들으면 어떤 파트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 세밀하게 다 들린다고 했다. 나는 멜로디와 나머지 음들이 섞여 들리는데....이 친구는 지휘자가 되었다.
연주회를 다녀와서 쉬는 시간에 앉아 "그 부분은 어땠어", "이 부분은 좀 그렇더라" 하고 서로 얘기하면, 나는 "아... 아.... 오홍..." 하면서 그 대화에 열심히 호응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연주회를 다녀오면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경험이 쌓이는 건 좋은 일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강한 척했지만, 사실은 속이 여린 아이로 보였던 것 같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 눈에 밟히는 아이였다. 선생님께 레슨을 받고 마음이 상해 연습실에서 눈물 뚝뚝 흘리며 앉아 있는데 손에는 밴드를 감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심지어 저렇게 하는데도 꼴찌였다.
친구들은 나에게 기꺼이 전우가 되어주었다.
성악을 전공하던 나의 절친은 공부도 연습도 모두 잘하던 매우 성실한 친구였다. 항상 반짝거리는 눈과 해맑은 목소리, 탄탄한 종아리로 학교를 뛰어다니며 나를 챙겼다.
피아노를 전공한 친구는 나의 연습실 레슨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테크닉도 모르는 나에게 기꺼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연습 방법을 공유해 주었고, 내 눈물도 닦아주었다. 대체 본인 연습은 언제 하는지 모르겠는데 피아노는 굉장히 잘 쳤다. 학교는 상위 등수 인재들을 위해 전교생이 보는 특별 연주회를 열어주었고, 이 친구는 늘 그 무대에 섰다.
클라리넷을 전공한 친구는 공부는 솔직히 안 했다. 하지만 연습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학교의 촉망받는 인재였으며, 내가 털어놓는 연습의 고통을 묵묵히 다 받아주었다.
바순을 전공한 친구는 엄청난 재능으로 콩쿠르에서 우승까지 했고, 나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연습의 고통을 공유했고, 울고, 반짝였다.
[예술고의 남자들]
예술고 음악반 40명 중 남자는 단 6명이었다. 피아노, 플루트, 호른, 작곡, 성악, 국악, 클라리넷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남자아이들이었다.
호른을 전공한 친구는 눈 색깔이 예쁘고 압도적으로 잘생겨서 비주얼 담당을 하는데, 심지어 운동까지 좋아해서 점심시간마다 농구를 하러 가면 앞 건물 예중·여중 학생들이 "오빠!!!!" 하고 연예인처럼 불러주었다. 얘는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한 아름 받아왔고, 나에게 빼빼로를 빼앗겼다. 다들 잘생기고 성격도 좋았다. 진짜다.
여자애들끼리 친한 친구가 있듯이, 나에게도 유독 친한 남자 친구들이 있었다. 반에 딱 6명밖에 없는데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동반자, 보약 같은 친구가 되어주는 아이들.
피아노 전공을 하다가 함께 공무원 공부를 해서 유일하게 공직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는 연습실 레슨 샘. 남자애들 중에 제일 다정해서 장가도 먼저 간 지휘자.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의 모든 고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지만 다른 나라에 있어서 너무 보고 싶은 현. 삼성전자에서 밥 먹는 친구.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친구들에게 가장 고마운 건 나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었다는 것. 그냥 서로 음악을 얘기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지금도 깊은 감수성으로 여전히 나를 받아주는 것. 남자라서 여자라서가 아니고, 인간으로 서로를 대해주는 친구들. 항상 고맙다.
[우리의 일탈]
학교에는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는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에 연습실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정해져 있었다. 새벽에 일찍 악보를 올려서 '오늘 하루 여긴 내 연습실이다!'를 정하고 나면 방과 후 연습이 시작되었다.
연습실 레슨샘인 피아노 전공 친구는 어김없이 저녁을 드시고 내 연습실로 와서 나를 지도 편달해 주었다. 연습실에 둘이 있는 걸 보고 클라리넷 친구가 슬쩍 들어오고, 어느새 사랑방이 되었다. 우리는 "아.... 짜증 나는데 그냥 과일빙수나 먹자" 하고 즐거운 일탈을 했다. 겨우 연습실에서 한 시간 일찍 나가 근처 카페로 향하는 게 우리가 하는 제일 재밌는 일탈이었다. 물론 과일빙수에 공짜로 제공되던 디저트 식빵은 무한 리필해야 했다.
[각자의 길]
재능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었고, 연습이 음악의 전부도 아니었다. 그리고 음악이 인생의 전부는 더더욱 아니었다.
반짝이는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은 이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음악을 계속해 오케스트라에서 단원으로 일하는 친구, 지휘자가 된 친구, 피아노 학원 선생님, 학교 음악선생님, 나처럼 다른 길로 떠나 법원직 공무원이 된 친구, 삼성에서 일하는 친구, 아기를 키우는 친구. 모두 제각각 다른 삶을 산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누구보다도 깊은 감수성을 공유했던 그 시절의 우정은, 지금도 나의 모든 관계의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깊은 우정을 친구들과 나눈 나에겐, 사회의 얕고 가벼운 관계는 때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우리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시절을 함께하며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 친구들은 지금도 기꺼이 나의 삶의 고통을 나누어준다. 누구보다도 깊은 공감으로.
우리는 음악에 쏟은 그 열정으로 다른 일을 했더라면, 사회가 말하는 성공을 하고도 남았을 아이들이었다. 어린 시절에 너무 많은 고통을 받으며 울고 웃고 꿈같은 시절을 보낸, 귀한 친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