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라더스와 20년 된 40만 원짜리 야마하
수능과 실기점수를 합쳐서 합격생을 결정하는 음악대학 입시에서 나는 수능보다도 실기가 문제였고, 결국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대학교를 친구들과 떨어진, 집에서 아주 먼 곳으로 갔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반수도 해봤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자존심 때문에 친구들과 연락도 끊었다. 나는 욕망 덩어리 그 자체였다. 6개월 만에 예고를 뚫었던 내가, 입시에서 미끄러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6개월 만에 예술고에 합격했는데 내가 진짜로 천재가 아니라고? 하... 어쩌면 피아노 말고 다른 걸 더 잘할 수도 있잖아?'
내가 뭘 잘하지... 내가 뭘 잘했지?
이 시점에서,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고 음악을 놓았어야 했지만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엉뚱하고 희한한 선택을 하였다.
[리코더와 단소를 독학하던 아이]
음악을 놓진 못한 나는 나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생 때 나는 리코더와 단소, 하모니카를 꽤 잘 불었다. 전부 독학이었는데도 말이다. 학교에서 배우긴 했지만 그전에 이미 교본과 악기만 가지고 독학을 해서 갖고 놀았다. 리코더는 전국대회 준비생으로 방과 후에도 남아서 연습했다. 집에서 알토리코더도 가지고 놀았다. 왜 가지고 놀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악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리코더 전국대회엔 못 나갔지만, 왜 못 나갔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리코더 수행평가 점수는 계속 100점이었다.
오...... 혹시.... 플루트라면 어쩌면?
내가 관악기에 소질이 있지 않을까? 피아노 연습에는 질려버렸고, 연습으로도 안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어느 날, 문득 미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내가 아는 유일한 플루트 천재, 시각장애를 딛고 오로지 소리만으로 수천 개의 음을 외워 연주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플루트 하고 싶은데, 연습용 악기 좀 빌려줄 수 있어?"
동생은 흔쾌히 자기가 어릴 때 쓰던 연습용 악기를 빌려주었고, 나는 엄마 몰래 빌린 악기를 가지고 혼자 놀기 시작했다. 그 막연한 기대는 적중했다. 소리가 본능적으로, 아주 잘 났다. 첫소리가 났을 때, 나는 전율했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났지만, 플루트는 내 입술과 호흡으로 직접 소리를 만들어냈다. 하모니카를 독학했을 때처럼 플루트 기초 교본만 보고 운지법을 익혔고 음이 정확하게 나왔다.
'이거다. 이게 내 것이다.'
6개월 만에 예고를 뚫었던 그 확신이 다시 찾아왔다. 나의 착각과 집념이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시립교향악단 부수석에게 건 '말도 안 되는' 전화]
"너네 교수님 전화번호 좀 알려줘."
플루트 전공인 친구에게 교수님 번호를 받아 냈다. 친구는 피아노 전공인 내가 왜 시향의 교수님 전화가 필요한지 물었다.
"아, 나 플루트를 불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시립교향악단 부수석인 교수님께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었다.
"교수님, 제가 집에서 플루트를 좀 갖고 놀아봤는데요.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요. 혹시 한번 봐주실 수 있나요?"
이번에는 좀 쉬운 길이길, 이번에는 나에게도 연습을 뛰어넘는 재능이라는 게 있는 길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교수님의 연습실로 교수님을 뵈러 갔다. 그리고 플루트 교본으로 독학한 운지법으로 조심스럽게 소리를 냈다. 이 말도 안 되는 전화에 교수님은 정말 황당하셨을 텐데 운 좋게도 교수님은 무척 관대하신 분이었다. 실제로 뵈러 간 날, 교수님은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가르쳐줄게. 한번 해보자."
나중에 교수님께 나를 가르쳐주시기로 한 날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었다.
"제가 진짜 재능이 있었나요?"
"소리를 내는데 네가, 본인이 내는 소리가 이상한 걸 알더라. 그럼 그게 재능이 뭐 별게 재능이야?"
[스펀지와 무식한 연습]
나는 또 스펀지처럼 교수님의 수업을 무섭게 흡수했다. 나는 교수님께 '도레미' 음계부터 가르침을 받은 첫 제자였다. 시립교향악단 부수석에게 누가 '도레미'부터 배우는 사치를 누리겠는가. 나는 내가 특혜를 받은 학생임을 알았기에 더 열심히 연습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무식하게 하루 5시간씩 불어대고 레슨을 받으러 간 날, 처음으로 교수님께 혼이 났다.
"연습 방법이 틀리니까 안 좋은 습관만 남았잖아!"
피아노에서 질려버린 나는 다시는 시행착오를 만들지 않을 거라 다짐했고, 선생님 말씀을 깊이 새겼다. 무조건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알바를 병행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이동하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도 내 입술은 늘 플루트를 부는 모양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교수님이 하신 말씀은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집념으로 남들이 6년 걸려 이뤄낼 과정을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해냈다. 하지만 운명은 이상한 곳에서 꼬였다.
[리먼 브라더스와 20년 된 40만 원짜리 야마하]
플루트는 소리를 내는 몸체의 소재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되는 악기다.
입문용으로 쓰이는 니켈 소재의 은도금 악기, 나의 40만 원짜리 20년 된 연습용 야마하는 소리가 가볍고 쉽게 나지만 연주자의 깊은 호흡을 담아내기엔 밀도가 너무 낮았다. 반면 내가 갈망하던 '실버(All Silver)' 플루트는 은 특유의 묵직한 밀도로 연주자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넓은 배음을 가졌다.
실기 꼴찌를 벗어나기 위해 2년을 미친 듯이 달려온 나에게, 이제 니켈 악기는 내 호흡을 감당하지 못하고 쇳소리를 내뱉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만약 2008년 경제 위기가 아니었다면,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치솟는 환율과 은값은 중고 실버 플루트의 가격마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 알바를 하며 모은 돈으로는 도저히 그 격차를 메울 수 없었다. 연습용 야마하 악기는 어느덧 나의 재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예쁘게 소리를 내고 싶어도 얇은 니켈 몸체는 내 열정만큼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악기 탓을 하며 스트레스가 정점에 달했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것도 내 길이 아니구나.'
교수님은 내 인생의 은인이었다. 시립교향악단 부수석에게 "저 재능 있는데 좀 봐주실?"이라고 묻는 무모한 학생을 받아준 분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플루트를 그만둔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린 날, 교수님은 "그래, 수고했어"라고만 하셨다.
연습실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내 40만 원짜리 야마하를 봤다. 20년 된 이 악기는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악기가 아니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교수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