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피아노

밴드 사이로 배어나온 핏물보다 아픈 것

by 리안박

'이제 정말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


나는 천재가 아니었고, 음악말고 다른 길은 모르는 음대생이었다.

플루트를 그만둔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2평 되는 공간. 플루트는 사라지고 오로지 나와 피아노만 남았다. 전공을 바꾸기 전까지 아예 그만둘 수는 없었기에 피아노는 계속 쳤지만, 대충 악보 외워서 실기시험을 칠 정도만 딱, 그 정도였다.

평소 꼭 레슨을 받고 싶었던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 제가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야 될 것 같은데요. 저를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다시 시작]

다시 피아노와 마주 앉아 더 잔인하고 더 처절하게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되돌아갈 길도 없었고, 이제 이게 아니면 유학길도 어려워 보였다. 정말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하던 새벽 기상을 다시 시작했다.

5시 반에 일어나서 7시에 학교 연습실에 도착했다. 그동안 적당히 쳤던 쇼팽 에튀드로 테크닉을 다시 만들기로 교수님과 상의했다. 교수님은 감사하게도 나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해 주셨고 새로운 테크닉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교수님이 가르쳐주시는 걸 최대한 익히려고 노력했고, 나의 손은 다시 벌어져 피가 나기 시작했다.

상관없었다. 이제는 돌아갈 길이 없으니 손이 아프면 밴드를 한 번 더 감으면 그만이었다.


아침에 시작된 연습은 저녁 10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건반을 두드려야 하는데 학과 수업도 들어야 하니 마음이 조급했다. 김밥을 한 줄 사서 점심 저녁을 나눠서 먹거나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주기적으로 연주회 간다고 입고 다니던 예쁜 옷도 다 귀찮아서 안경을 쓰고 대충 후드티를 입고 다녔다.

시간을 쪼개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학과 수업마저 사치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그래도 알바도 안 하면서 부모님께 부담을 드릴 순 없어서 학과 수업도 열심히 들어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덕분에 교직 이수도 해서 교직자격증도 땄다.


지금도 교수님과 가끔 만나서 레슨을 받지만, 교수님은 제자 중에 내가 제일 독했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들을 때면 묘하게 뿌듯하다.


[쇼팽 협주곡과 절교 위기]

실기곡으로 피아노 협주곡이 나왔다. 협주곡은 솔로를 피아노가 하고 반주를 오케스트라가 하지만, 매번 연습 때마다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못 해주니까 피아노 두 대로 오케스트라 파트와 솔로 파트를 나눠 쳤다.

나의 절친, 연습실에서 나를 레슨해주던 그 친구가 다시 초청되었다. "아... 또... 좀... 하...." 궁시렁하면서 추임새를 넣는 놈이지만 나를 위해서 멀고도 먼 나의 학교로 와줬다.


우리는 2평 되는 연습실에 고등학교 때처럼 다시 처박혔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왜 하필 그 곡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손이 작아서 다시 손 사이가 벌어져 트기 시작했고, 손 모양이 한 번 더 변하기 시작했다.


연습실 레슨 샘, 그놈도 나의 테크닉에 짜증이 났는지 다시 치라고 닦달하기 시작했고, 나는 구시렁대면서 겨우 따라갔다. 우리는 절교할 위험을 몇 번이고 넘겼다. 나의 성질머리를 묵묵히 받아주다가 현타가 왔는지 그놈이 화를 내면 내가 "미안하다" 하고, 그의 예민함에 내가 "좀 적당히 하자" 했다가 또 싸우고.

2평 되는 공간 안에서 우리는 친구가 된 이후로 절교를 선언할 만큼 몇 주간 매일 싸웠다.

그 덕분에 30분짜리 곡을 무사히 외워 실기시험을 쳤다.

"진심으로 고맙다. 인쇄비 줄게. 언제 나올지는 모른다."


[리스트와 밴드로 가린 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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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가 다시 시작되고 실기곡으로 리스트 에튀드를 골랐다. 이 정도 돼야 유학길에 써먹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리스트는 손이 굉장히 큰 작곡가였고, 아이돌의 원조급 피아니스트였다. 자기가 자기 곡을 연주하니 작곡도 자기 위주로 이기적으로 했다. 도에서 도를 뛰어넘는 옥타브는 기본이고, 조밀한 음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곡만큼은 너무 아름다웠다.


연습 시간이 더 길어지고 손의 밴드가 늘어나고 손 모양도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아........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말이 유학이지, 유학 갔다 와서는 뭐 하지?'

내가 뭐 엄청난 연주자가 될 것 같지도 않고, 벌써 글렀고, 천재는 당연히 아니고, 이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인가? 새벽부터 밤까지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해서,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리스트를 치면서 밴드로 겹겹이 가린 손끝이 너무 쓰렸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그날따라 손끝이 너무 아파서 건반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손도 아파 죽겠고 손 사이는 벌어져 트는데 곡은 너무 어렵고, 내가 이 곡을 완성할 수 있을지, 왜 이렇게 아파야 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밴드 사이로 배어 나온 핏물보다, 더는 설레지 않는 나의 미래가 더 아팠다.

그리고 막연하게 든 생각이, '리스트도 못 치면 라흐마니노프도 못 칠 거 아니야?'


나는 유독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 좋았다. 늦은 10시에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면 나의 손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나에게 라흐마니노프는 성스러운 음악이었다. 어둑한 가로등이 포근히 나를 감싸줄 때, 나의 귀에 울려 퍼지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의 어둡고 로맨틱한 멜로디와 오케스트라와의 조화가 유일하게 나의 일상을 위로해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치기 어렵다는 그 곡을 죽기 전에는 꼭 치고 싶었다. 리스트도 소화 못 하는데 라흐마니노프는 소화할까?

그저 서러웠다.


리스트 악보가 놓인 피아노 앞에서 나의 선택, 나의 학창 시절, 나의 빛나는 시절이 눈물로 바뀌었다. 금빛 조명으로 빛나는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 언젠가 기립박수와 환호성으로 데뷔를 할 수 있을지 알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꾸던 나의 미래를 그날 하루, 눈물로 보냈다.


다음 날 교수님을 찾아갔다.

"이제는 피아노로 먹고 살 생각이 없습니다. 졸업은 해야 하니 연습은 하겠지만, 예전처럼은 안 하겠습니다."

정말 연습을 안 할 거라, 학기 내내 개인 레슨을 해야 할 교수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4학년 1학기, 그렇게 나는 나의 선택이자 나의 학창 시절, 누구보다도 무대를 갈망했던 피비린내 나는 나의 빛나는 꿈을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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