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 가자, 예쁜 교생 쌤이 왔대"

와 무서울 거 같은데?

by 리안박

"리안, 이제 교생실습 가는데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겠어요?"

"학생을 가르쳐본 적이 없어서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교육자로서 피교육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보도록 하겠습니다."

4학년 1학기, 피아노를 그만두기로 했지만 학교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벚꽃이 흩날리던 너무 예쁜 봄날, 나는 교생선생님이 되었다. 교생실습을 가기 전 마지막 수업에 교수님이 학생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할 건지 여쭤보셨다. 교수님은 참 따뜻하신 분이셨고, 실제로 교직 이수를 하면서 교수님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았지만 나는 교육자로서 피교육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보겠다는 차가운 답변을 했다. 교수님은 당황하셨지만 잘하고 오라고 격려해주셨다.


[다시 돌아온 벚꽃 교정, 이번엔 정장을 입고]

교생실습 장소는 나의 모교, 나의 예술고였다. 모교로 금의환향한 느낌이 들었다. 교문을 지나 학교의 중앙정원을 따라 걷는데 누군가의 연습 소리들이 섞여서 들렸다. '아, 내가 진짜 학교에 왔구나.'

교무실로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러 갔다. 사립고등학교다 보니 여전히 나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께서 계셨다. 선생님들이 "리안이 대학 가서도 열심히 했나 보네, 교생실습 온 거 보니" 라고 칭찬해주시니 다시 고등학교 철없던 학생이 된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작아진 듯하지만 학교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분수가 있는 예쁜 중앙정원, 연습실에서 하늘거리는 하얀 커튼들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친구들과 뛰어놀던 교실도 그대로이고 학교 풍경, 연습실에서 시작해서 학교 전체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도 그대로인데, 친구들은 없고 정장 원피스 차림의 내가 있었다.

낯설고 묘한 느낌이 들었다.


교생에게는 담당선생님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과학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담당선생님이 되어주셨다. 선생님과 함께 담당 교실로 가는 복도가 왜 이렇게 길고 아이들은 왜 다 밖에 나와 있는지, 내가 동물원의 동물이 된 것 같았다.

어떤 남자아이가 "예쁜 교생 선생님이 왔대. 구경 가자"라고 하면서 앞을 뛰어갔다.

"누군데, 저 사람이야?"

"오.........."

아이들이 지금 내 얘길 하는 건가? 아이들이 나랑 걷는 속도를 맞춰서 나의 담당 교실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오... 나는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심지어 예쁜 교생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내가... 좀... 예쁘긴 하지? 아이들이 예쁜 건 또 아네?


선생님과 교실로 들어간 복도 창문에 다른 반, 다른 학년에서 구경 온 학생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담당선생님께서 나보고 직접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처음이니까 편하게 학생들하고 인사하라고.

아이들이 동물 소리인지 모를 환호성을 질렀다.

"오... 쌤 예뻐요!"

'좋아하는 티 내면 안 돼. 나는 선생이야! 할 수 있어. 플루트로 단련된 복식호흡을 담아.'

"조. 용. 히. 해."

한마디 했다.

목소리가 너무 깊었나... 정적이 흘렀고 복도에 매달린 아이들이 "와... 무서울 것 같은데?" 하고 도망갔다.

우리 반에 도망도 못 가고 앉아 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일제히 조용히 하고 굳은 표정으로 내 얼굴만 보고 있었다.

'아, 괜히 정색했나. 뭐라 하지.'

"교생선생님으로 온 리안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이렇게 나는 예쁜데 무서운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복도를 지날 때면 대롱대롱 매달려서 환호성을 지르던 남자아이들은 모여서 놀다가도 모세의 기적처럼 뒷걸음질 치면서 복도를 내어주었다. 그리곤 90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응, 안녕."

암... 선생님은 근엄해야지. 리안 잘했어.


[매점은 못 참지!]

이번 교생실습에는 나의 친구들도 함께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언니처럼 나를 챙겨주고 내가 많이 의지하는 성악 전공 친구, 서울에서 학교 다니다가 내려온 친구들, 예고 선배들. 모두 교생실에서 수업 얘기를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제일 즐거웠던 건 성악 친구와 함께 수업 시간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공부하던 틈을 타 몰래 매점에 가서 과자를 사서 교생실에 가서 먹는 일이었다. 정말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학창시절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1층 매점까지 야생마처럼 뛰어다녔고, 나는 꼭 바나나킥에 바나나우유를 먹어야 하루가 즐거웠다. 내 친구는 카프리썬과 몽쉘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교생이잖아? 교사 체면이 있지... 쉬는 시간에 갈 수는 없잖아? 어쩌다 과자 사 오는 걸 선생님들께 걸리면 선생님들마다 꼭 한마디 하셨다.


"너네는 그리 붙어다니더니 어쩜 그리 변한 게 없냐. 또 매점 가서 과자 사 오냐. 좀. 철 좀. 선생이고 하면 좀... 철 좀 들자"

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학교에 오면 매점은 놓칠 수 없지.


[나는 피교육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역시나 음악. 예고에서도 음악 수업은 공통 과목이라 미술반 아이들, 음악반 아이들, 무용반 아이들도 가르쳤다. 아이들은 나의 시절에도 그랬듯이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아이, 뒤에서 자는 아이, 친구한테 쪽지 보내고 노는 아이, 화장하는 아이, 여러 부류가 있었다.

모두가 너무 너무 귀여웠다.


교단에서 보는 아이들은 자기들은 내가 못 볼 거라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나도 고등학교 때는 내가 책 뒤로 문자 하면 선생님한테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고, 선생님께 죄송하게도 교단은 모두가 보이는 자리였다. 정말 나는 반지의 제왕의 눈, 사우론이 된 것처럼 딴 짓을 하는지, 수업을 듣는지 희한하게도 다 볼 수 있었다.

수업 시간 말고도 어쩌다 자습 시간에 감독을 하러 가게 되면 아이들을 더 관찰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교생에게 흔히 하는 질문들, 첫사랑은 누구냐, 남친은 있냐, 학교 때 뭐 했냐를 받았고 나는 매우 재밌게 얘기해주었다. 그 시절 교생 선생님들이 나에게 해준 것처럼.


학교는 변하지 않았는데 같은 교복을 입은 또 다른 나와 친구들이 그 교실, 연습실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 모두에게 관심이 갔다. 수업 시간에 화장을 하고 있어도 "화장 안 해도 쌤보다 예쁜데?" 라고 해주고,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조언도 해줬다. 영어 공부하는 방법, 국어 공부하는 방법, 나는 어떻게 했다. 연습하고 공부 시간 배분은 이런 식으로 했다.


선생이 아니라 선배로서 해주는 조언들에 아이들이 하나둘 마음을 터 놓기 시작했다.

"연습을 해도 제자리인 것 같아요."

"공부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고등학교 시절 밴드를 붙이고 연습실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던 예고 꼴찌가 조금 더 큰 나에게 하는 질문들이었다.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마음이 쓰였다.


잠깐 스쳐 가는 교생 선생님이 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이 아이들이 겪고 있는 삶에서 봄에만 잠깐 보는 벚꽃같은 사람이지만 살면서 어쩌다 생각나는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교육자가 피교육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걸 알기에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골라서 했다. 아이들을 더 열심히 관찰했다. 혼자 앉아 있는 아이들한테는 고민은 없는지 조심스레 물어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교생실로 와도 된다고 말해주고. 한 달 선생님이지만 그 힘든 시기를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잘 보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너희들은 전부 빛나는 삶을 살 거야]

지금은 실기 1등을 안 해도 괜찮아. 공부도 못 해도 괜찮아. 그렇지만 공부든 실기든 후회 없이 하렴. 너희들은 커서 전부 빛나는 삶을 살 거야.

이런 내용을 내가 관찰한 나의 반 아이들에게 한 장 한 장 메모지에 마음을 담아 교생실습 마지막 날 선물로 주었다.

"우리 반 반장, 마음만큼 잘 안 될 때가 많지? 그래도 괜찮아, 뭐든 후회 없이 하렴."

이런 식으로 나의 마음을 나의 반 아이들 모두에게, 아이들의 미래가 빛나길 바라면서 메모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


아이들에게 빛나는 삶을 살라고 쓴 메모는 어쩌면 피아노라는 유일한 빛을 끄고 지독한 어둠 속에 서 있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수도 있다. 언젠가 나의 삶이, 피아노라는 빛이 사라진 나의 삶에 다시 빛이 생길 거라 믿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이 아이들 만큼은 빛나게 살길...

나의 진심이 어느 정도는 통했을까. 교생 실습 마지막 날,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여는데 스승의 노래가 들렸다.


'아... 내가 스승이었던가.'

아이들이 한 땀 한 땀 풍선을 붙여 칠판에 나의 이름을 쓰고 스승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696e3f2fa3c10.jpeg?imgSeq=81248

나는 한 달짜리 선생님이었는데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우는 아이도 있었고, 악기 반주를 해주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연주에, 나의 교생 선생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울었다.

소중한 나의 첫 제자들이자, 마지막 제자들... 나의 후배들...


아이들은 우리가 헤어지고 1년 뒤, 2년 뒤까지 학교는 어디 갔다, 선생님 잘 지내시죠? 하는 안부를 물어왔다.

누군가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안부를 묻고 자기의 삶을 자랑스럽게 얘기해주는 걸 보면서 '아.. 내가 선생님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벚꽃이 흩날리던 봄 날, 나는 스승이었다.

이전 05화다시 피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