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공무원 생활
안녕하세요. 이번에 발령받은 리안입니다. 혹시 총괄국에서 관내국으로 갈 때 누가 저를 데리러 오시나요?"
"네? 나이가 몇 살인데... 혼자 가실 수 있죠? 혼자 가세요."
지방직의 관습과는 다른 우체국의 쿨한(?) 문화 덕분에, 나는 첫 출근부터 '공주님 대접을 바란 이상한 신규'라는 오해를 사며 우체국에 입성했다.
[나의 어사화, 임용장을 받으러]
2021년 7월 1일, 나는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나의 어사화, 임용장을 받으러 총괄국으로 갔다. 총괄국은 우체국의 구청 같은 곳이고, 관내국은 행정복지센터 같은 곳이다. 임용장은 총괄국에서 받고, 관내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예쁜 정장을 입고 첫 출근길을 나서는 날, 엄마는 문 앞에서 꼭 안아주었다. 엄마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때까지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나를 쳐다봐주셨다.
"잘 다녀와!!"
지하철로 45분 정도 떨어져 있는 나의 첫 직장. 지하철에 앉아서 이어폰을 꽂고 항상 듣던 pop playlist를 재생했다. 문득, 라흐마니노프가 생각났다.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면서 클래식 음악도 함께 마음속 깊은 방에 넣고 열쇠를 잃어버려 다시는 찾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그 방이 생각났다. 음악을 그만둔 지 10년이 지났을까, 단 한 번도 클래식을 듣지 않았다. 나의 영혼에 유일하게 깊은 감동을 주던 음악이었고 나는 연주회장에서 클래식을 들으면 심장이 뛰었다. 둥, 둥, 둥, 둥. 지휘자의 박자에 맞춰서 나의 심장이 함께 뛰던 음악. 어쩌면 음악을 포기한 나를 내가 놓지 못해 그 방에 음악을 한 나도 함께 넣었을 수도 있다.
첫 어사화를 받으러 가던 날, 마음속에서 그 방의 열쇠를 찾아 지하철에서 10년 만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틀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그만둘 때까지 제일 많이 들었던 라흐마니노프. 그 곡을 들으니, 처음 들었을 때처럼 심장이 뛰었다.
라흐마니노프를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틀어준 '샤인'이라는 영화 덕분이었다. 데이비드 헬프곳이라는 연주자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하면서 겪었던 경험, 그 미친 몰입과 집중력을 내가 피아노 치면서 항상 동경했고 언젠가 이 곡을 꼭 연주하고 싶었다.
43분간 협주곡을 들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나의 절친이자, 연습실 레슨샘이자, 함께 공시를 함께한 친구가 떠올랐다. "첫 출근이다." 내가 답장을 보냈고, 걔는 "사고 치지 말고 잘하고 와라"라고 답했다. 그 짧은 답장에서도 걔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느덧 지하철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하철역과 이어진 총괄국 가는 길에 셀카도 찍었다. 조선시대 과거에 장원급제한 게 아니니 나에겐 말도 없고 꽹과리도 없지만, 라흐마니노프 선율과 함께하는 나의 어사화를 받으러 가는 모든 길이 기념해 두고 싶은 나의 첫 발자국들이었다.
총괄국 국장님과 악수를 하고 혼자 관내국으로 가는 길, 길이 낯설어서 지도 앱을 펴고 이리저리 지도를 돌려가면서 나의 첫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될 그곳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발령받은 리안입니다]
아빠가 지방직 공무원으로 퇴직을 하셨기 때문에 아빠한테 들었던, 나의 지방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일을 총괄국 인사과에 물어봐서 얘가 이상한 애가 아닐까 하는 걱정을 관내국에서 하고 있었다고 나중에 사수한테 들었다. 구청에서 임용장을 받으러 오는 신규를 행정복지센터에서 직접 데리고 각자의 행정복지센터로 가는 문화가 있는데 나의 첫 직장에는 그런 게 없었던 듯하다.
"저를 누가 데리러 오시나요?"
나는 첫 공무원이 되고 공주님 대접을 받으려 한 이상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관내국에 가니 국장님, 사수, 계리직 주무관님 2분이 계셨다. 사수와 계리직 언니는 나랑 또래라 적응하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간단한 인사 후 업무에 바로 투입되었다. 그나마 시스템이 많이 어렵지 않은 우편에서 먼저 일하게 되었다. 우편을 접수하고 가격을 매기고 라벨을 붙여서 등기인지, 일반인지 구별하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업무였다.
하루를 사수가 지켜주는 틈에서 무사히 보내고 나의 첫 공무원 생활의 하루가 지나갔다.
[바다냄새와 비둘기가 기다리는 설레는 출근길!!!]
전에는 안경을 쓰고 대충 후드티를 입고 도서관에 갔다면, 이제 매일 예쁜 색색의 정장을 입고 렌즈를 끼고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나를 감싸는 지하철 안에서 우아하게 앉아서 출근을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코를 찌르는 바다냄새가 났다. 바다 냄새와 내가 너무도 싫어하는 비둘기들이 나를 맞아주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나는 이제 출근하는 공무원이니까. 밤에는 번화가로 변하는 그 길은 비둘기들이 점령하고 상가도 다 문을 닫았지만, 그 북적이지 않은 길이 행복했다
막내답게 아침에 일찍 도착해서 선배들의 컴퓨터 전원을 미리 다 켜야 될 거 같았다. 누가 시키진 않았지만 제일 먼저 우체국에 도착했다. 컴퓨터를 다 켜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내가 사는 광역시 최고 번화가답게 우체국 앞에 쌓인 엄청난 쓰레기와 담배꽁초들을 보았다. 아침에 우체국에 오는 고객들이 이런 걸 보면 좋을 거 같진 않았다. 쓰레기와 빗자루를 찾아서 청소를 시작했다. 먹다 남은 음료수와 페트병을 분리수거하고 담배꽁초를 빗자루로 쓸고 있을 때 국장님이 청소하고 있는 나를 보셨다.
"아이고, 주무관님, 너무 착한데 이건 내가 할게요. 들어가서 업무도 익히고 일도 배우세요."
음... 내가 아직 일을 잘 못 해서 하시는 말씀인가... 하면서 멋쩍어서 들어가서 사수와 일을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영화에도 나오는 시장 바로 옆 우체국이었다. 대부분의 고객이 상인들이었고 외국인도 많았다. 우편 업무 중 제일 어려운 건 EMS, 해외 택배였다. 나라별로 배송 불가능한 품목이 따로 있었고, 공통적으로 배송이 불가한 품목이 따로 있었고, 항상 고객들이 어떤 물품을 배송하는지 확인하고 안내를 잘해야 했다. 이건 거의 사수와 국장님이 하시고 나는 간단한 우편 접수 위주로 일을 했다.
[마, 사수는 이러라고 있는 거다]
나의 인생 첫 사수는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고, 나와 동갑인 친구였다. 아침 제일 먼저 출근해서 우체국 앞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나를 보고 "마, 니 생각보다 공주님 아니네, 나랑 동갑이라더라? 그리고 너무 애쓰지 마라. 왜 일찍 왔냐, 집도 멀더만, 잠이나 더 자고 와라. 아 그리고 우체국 왜 왔냐? 피아노 했다며, 그냥 딴 거 해라." 툴툴대는데, 츤데레 그 자체였다.
새내기 공무원의 매력은 역시 사고 뭉치지. 나도 엄청난 사고뭉치였다. 근처가 유명한 시장이었기 때문에 10개는 기본이고 50개 이상 되는 택배를 접수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일을 한 지 며칠이 지났을까. 근처 카페 사장님이 우체국을 찾아오셨다.
"해운대로 갈 택배가 울산으로 잘못 간 거 같아요. 확인을 좀 해주세요."
당황해서 어버버... 사수를 애타게 찾아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울먹거리면서 쳐다보고 있는데 사수가 수습을 시작했다. 어떤 게 잘못됐는지 여쭤보고 사고의 원인을 파악했다. 내가 여러 개의 라벨을 붙이면서 라벨을 잘못 붙여 택배가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사수가 죄송하다고 나 대신 사장님께 사과를 했다. 사장님이 화가 풀릴 때까지 여러 번 사과를 하고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택배를 최대한 빨리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얼굴이 빨개져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있으니까 사수가 한마디했다.
"야. 그럴 수 있다. 뭐 이런 거 가지고 울려고 해. 괜찮다."
"내가 잘못했는데... 미안."
"이런 거 수습하라고 선배가 있는 거다. 내가 할 일이다. 괜찮다."
솔직히, 엄청 감동받았다. 수습하라고 선배가 있는 거라니... 말이 너무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아닌가. 뭐 이런 멋진 놈이 있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업무는 우편 접수 말고 마감까지 하는 거였다. 은행처럼 시재를 맞춰야 되는데 돈이 나가고 들어오고를 다 정확히 맞춰서 잔고 시재가 처음 금고를 열었을 때와 같은 값이 되게 해야 했다. 이게 안 맞으면 집에 못 갔다. 처음에는 손이 느려 매일 한 시간 무료 초과 근무를 했다. 사수가 "아... 내가 니 옆에 있어야 되는 건 맞지만 숫자 계산을 왜 이렇게 못 하냐... 집에 좀 가자 제발..." 하면서 하나하나 숫자를 다 확인해 주었다. 이것도 선배가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라 했다.
선배는 후배의 실수를 대신 짊어지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기꺼이 그 짐을 나누는 것이 당연한 의리라는 것을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