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쓰게 된 우리의 어사화

피아노 전공생들, 공무원이 되다.

by 리안박

낙방에 낙방을 거듭하면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삶을 살던 어느 날, 이상한 문자를 받았다.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 추가합격자 공고가 사이버국가고시센터에 게재되었으니 확인 바랍니다."

[지금 합격을 했다는 뜻이죠...?]

뭐라는 거지? 합격했다고도 아니고? 확인을 하라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오는 길에 이상한 문자를 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수전증인가 싶을 정도로 덜덜 떨리는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이게 무슨 뜻인가 싶어 '추가+공고' 이런 식으로 검색을 했다. 아무래도... 내가 필기시험에 합격한 모양이다.

"아빠, 나 이상한 문자를 받았는데 내가 필기시험에 합격한 거 같아."

아무도 받을 거라고 예상도 못 한 문자였다. 2020년 국가직 시험은 코로나로 지방직보다 뒤로 미뤄졌고, 지방직 시험에 최종 합격한 사람은 국가직 면접을 칠 이유가 없어서 이례적으로 추가 합격이 많았다.

아빠한테 전화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나의 전우, 연습실 레슨샘에게도 전화를 했다.

"야, 나 시험 합격했나 봐!"

"떨어졌다며? 놀리냐?"

평소처럼 재잘대며 추가 합격이 있었다는 걸 설명했다. 누구보다도 나의 합격을 먼저 알려주고 싶은 친구였다. 그리고 혹시 나의 합격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할까 해서 "정신 차리고 공부해라." 잔소리를 했다.

그놈은 "내가 뭐 애냐"하고 잔소리에 답하며 진심으로 나의 합격을 축하해 주었다.

관운일까... 이제는 합격할 실력이었을까... 사실 추가 합격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애초에 합격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는데 얼떨떨하게 시험에 합격했다. 예술고 입학시험에는 내가 울었던가? 이번에는 반대로 부모님이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나를 꼭 안아주셨다. 국가직 우정행정은 지방직 시험과 과목이 같아서 보험 드는 느낌으로 시험을 쳤는데, 국가직 우정행정 필기시험에 합격을 했다. 이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집에 와도 여전히 떨고 있는 손으로 컴퓨터를 켜서 합격을 확인하고 면접시험 일정을 등록했다.

[드디어 면접을 나도 갈 수 있다!!]

국가직 면접을 보러 부모님과 함께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과천 분원으로 갔다. 면접 시간이 아침이라 하루 전날부모님과 함께 가서 하루를 보냈다. 국가직 면접은 30분으로 5분 발표와 자기 기술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5분 발표는 당일 발표되는 과제를 10분 동안 정리해서 5분 동안 프레젠테이션하는 것이었다. 자기 기술서는 하고 싶은 직무나 그 직무에 일하기 위해 평소 노력한 일을 쓰고, 주어진 문제 상황에 대해 해결 방안을 간단하게 쓰는 것이었다. 면접은 2대 1로 30분간 이루어졌다.

영어 학원에서 워낙에 프레젠테이션을 많이 해서 면접은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6분짜리 시나리오를 외워서 영어로 발표를 하는데 한국말을 못 할까. 필기가 안 돼서 그렇지 면접은 자신 있다고를 외치면서 당당하게 면접장에 들어간 나는 10분 동안 정리한 자료를 외워서 5분간 쉬지 않고 발표했다. 자기 기술서도 개요식으로 잘 썼다고 면접관님께 칭찬도 받으니, 그동안 몇 년간 몇 번을 낙방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나의 낙방이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에 들어갔다.

[나라 사랑, 동기 사랑을 Zoom부터 실천한 나의 인연들]

2021년 1월, 드디어 신규 교육을 받았다. Zoom으로... 한 달 가까이 이어진 교육을 실시간 화상 교육으로 받았다. 나의 동기들은 정말 다양한 지역에 살았다. 충청청, 부산청, 경북청, 서울청, 강원청 등등. 처음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동기들과 줌으로 인사를 하는데 정말 컴퓨터를 끄고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 선생님들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던지 손도 흔들어 보라 하고 말도 시키고 채팅창에 자꾸 질문에 대한 답도 쓰라고 하셨다.

줌으로 우리는 단체 수업도 받았고 조별 수업도 했고, 심지어 조별 과제도 했고 조별 과제 경쟁도 했다. 선생님이 9명으로 된 조의 조장을 우리끼리 정하라고 조끼리 방을 따로 만들어 주셨다. 머리를 굴렸다. 조별 과제가 우체국과 관련된 홍보 영상을 만드는 거였는데,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내가 영상을 못 만들고, 피피티는 해본 적이 없고, 시나리오는 만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뭐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일단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이니까, 그래, 조장은 내가 한다. 모니터에 어쩔 수 없이 갇혀 고개를 푹 숙이고 화면에는 서로 시커먼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조장은 제가 하겠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조장을 내가 했다. 머리를 잘 쓴 것 같았다. 차례로 전공을 물어봤다. 영상학과 출신, 공대 출신, 경영학과 출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영상학과 출신 사람에게 영상을 부탁하고, 공대는 시나리오를 짜보겠다 하여 시나리오를 짜고, 경영학과는 피피티를 만들고, 나머지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로 했다.

우리 조는 줌으로 5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서 발표도 하고, 다른 조보다 인센티브를 많이 받으려고 수업에 최선을 다해서 참여했다. 누구 하나 쑥스러워하거나 안 하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결국 신규 교육에서 1등을 했고, 선물로 커피 쿠폰을 받았다.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라 했던가. 나의 첫 동기이자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는 동기였던 이들은, 내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4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보내고, 전부 다른 지방에 사는 동기들이 나의 결혼식에도 왔으며, 지금도 매일 쉬지 않고 카톡을 보내는 사이고, 여행도 같이 가는 사이다.

경북청 동기 놈은 빨간색의 피를 상징하는지 뭔지... 섬뜩한 메시지를 써서 새해마다 우체국 달력을 사무실로 보내준다. 명절에는 명절이라 선물을 보내주고, 가끔 소개팅하다 들렀다고 부산에 와서 얼굴도 보여주고 간다. 서울청 동기, 매일 쉬지 않고 연락하는 나의 핏불테리어는 가만히 있어도 근육이 있고 먹성도 좋고, 둘 다 쇼핑 중독에 빠져 서로의 링크를 끊임없이 탐닉하고 회사 생활도 나누며 이제는 하루라도 연락을 안 하면 안 되는 사이, 절친이 되었다. 그리고 충청청 언니는 아기 셋을 키우고 육아 휴직을 하고 있는데 소소한 일상과 안부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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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대전청 동기, 전국의 막걸리얘기를 하다가 밤막걸리를 좋아한다고 수줍게 고백해서 애칭이 밤막으로 된 우리 밤막이, 금철인데 말을 너무 예쁘게 해서 금순이가 된 우리 금순이. 모두가 소중한 나의 첫 동기들이다. 줌으로 시작된 교육은 나에게 노트북 화면 밖으로 진짜 평생 가는 동기, 친구를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내가 지방직으로 떠나도 여전히 내 옆에 '동기 사랑, 나랑 사랑'을 외치며 있어준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든 기쁜 일이든 같이 화내고 같이 웃어주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끈끈하게 동기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연습실 레슨샘의 합격 소식과 끝나지 않는 나의 공부]

내가 교육을 듣고 그다음 달에, 나의 전우, 연습실 레슨샘에게 전화가 왔다. 시험 소식일 거라 덩달아 긴장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급격히 떨어진 채용 인원 수와 지원자가 몰려서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소식에 그 친구가 합격하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도했다.

"야, 나 합격했다."

그동안 꿈을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고 하는 우리 둘을 이제야 하늘이 도와주는 느낌이었다.

걔의 합격 소식에 나는 나의 시험 날처럼 긴장했던 마음이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야... 진짜... 너무 고생했다. 정말 너무 고생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놈의 이름을 평소엔 부르지 않는데, 이날은 이름을 불러주었다.

고생했다, 친구야. 진짜 우리 고생했다.

어릴 때부터 같은 꿈을 꾸다 다른 꿈도 같이 꾸었던 친구의 합격에 기뻤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가 이뤄낸 아무도 가지 않았던 그 길, 너무나도 낯설어 방황도 많이 했던 그 길의 끝에 이뤄낸 우리의 새로운 꿈이 자랑스러웠고 우리가 자랑스러웠다.

처음부터 지방직 공무원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놓지 못했다. 2021년 지방직 시험이 6월에 있었기 때문에 교육이 끝난 후 다시 도서관으로 떠났다. 발령도 안 났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은 충분했다. 자신감이 생긴 건지, 이제는 떨어져도 우체국에서 일하면 된다는 안전한 마음이 생긴 건지, 도서관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것 같지도 않았다.

동기들은 하나둘 발령을 받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 편하게 나라에서 나를 불러줄 날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렇게 6월이 왔고, 처음으로 긴장하지 않고 시험을 쳤다. '뭐, 떨어지면 우체국 가면 돼. 나는 공무원이야'라는 마음이 여유를 주었을까? 시험을 다치고도 마음이 편했고 혹시 하는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가채점을 했다.

아... 이 정도면 지방직도 당연히 합격하겠다,라는 확신의 점수를 처음 받았다.

인생이 풀리는 시기도 있고 안 풀리는 시기도 있다고 했던가. 내가 느끼는 나의 인생은 예술고를 입학한 뒤로 단 한 번도 풀리는 것 같지 않았고, 매년 무엇을 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내가 피아노를 친 걸 진심으로 매일 후회했고, 피아노를 그만둔 뒤로 클래식도 끊었다. 그랬던 나를 하늘이 도와줘서 시험을 수월하게 치고 좋은 성적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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