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우
연습실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향했다. 2평짜리 연습실에 갇혀 수천 번 쳐야 할 악보들을 내려놓고, 대신 행정법과 행정학 교재를 들었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피아노 건반 대신 형광펜을 잡고, 연주회장 대신 독서실을 오가는 나는, 이제 '공시생'이라는 새로운 자아로 살아가고 있었다.
[공시생에 익숙해지다]
공시생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지적 호기심만으로 억지로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이름부터 흥미로웠던 행정법은 나에게 기본 강의만 100강이 넘는 엄청난 수업이었고, 법률 용어는 정리를 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행정학은 음악사 책을 보는 것처럼 미국 행정학의 학파들을 차례로 배우면서 파생된 이론들이 바흐의 푸가처럼 머릿속에서 엉켜 있었다.
국어는 다행히도 문법 공부만 하면 됐고, 한국사는 워낙 좋아하던 터라 낯선 과목들 속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영어가 생각지도 못한 배신을 했다. 독해는 다 맞춰도 영어 문법 5문제를 다 틀렸다.
"선생님, 문법만 계속 틀려요."
"문법책 있죠? 그거 외워요, 그냥."
선생님의 답은 간단했다. 그냥 외워. 문법책 한 권의 예시 문장을 통째로 외웠다. 강의 들을 시간도 없고, 어차피 문법 공부 해본 적도 없어서 악보를 외우던 습관, 학원에서 영어책을 외우던 습관대로 외웠다.
공시생도 하다 보면 느는 것인지 점점 요령이 생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시생에 익숙해져 갔다.
[나란히 쌓인 이질적인 세계]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교직 이수를 하는 피아노 전공 친구와 근처 대학교에서 같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둘이 학교 입구에서 만나 도서관까지 같이 걸어가거나, 먼저 도서관에 도착한 사람이 자리를 잡아주기도 했고, 점심때는 함께 밥을 먹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온기 때문인지, 그 식은땀 나게 했던 소음들이 이상하게도 좀 묻히는 느낌이었다.
나의 한 몸과 같았던 악보, 서양음악사, 화성학, 교육학. 이런 책들이 친구 옆에 나란히 쌓여 있고, 내 옆에는 여전히 낯선 행정 과목들이 쌓여 있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향해 가고 있었다. 친구가 화성학 책을 펼칠 때면, 나는 슬쩍 옆을 봤다. 도미넌트, 서브도미넌트, 감 7화음. 한때는 내 언어였던 것들이 이제는 낯선 외국어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친구가 쉬는 시간에 갑자기 물었다.
"너 후회 안 해? 피아노."
나는 행정법 교재를 덮으며 대답했다.
"안 해. 이미 넘어온 길이야."
친구는 한참을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친구는 실기 시험 준비도 해야 돼서 종종 레슨을 받으러 갔다. 장구, 가야금, 피아노, 성악을 다양하게 배웠던 것 같다. 친구가 레슨을 받으러 가는 날이면 유독 외로웠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다시 책을 펼쳤다.
피아노를 마음에 묻고 안 열려고 행정직 공무원을 선택했는데, 도서관을 나서는 친구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버린 길의 잔상이 보였다. 친구는 여전히 음악 속에 살고 있었고, 나는 이미 그 세계 밖에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우리는 각자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돌아온 절친, 연습실 레슨샘]
독일 베를린 음대로 떠났던 나의 절친이자 연습실 레슨 선생님이 독일로 간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가끔 보이스톡 할 때 걔가 바흐를 '바크'라고 하고 라흐마니노프를 '라크마니노프'라고 발음할 때마다 "징그럽다, 끊자. 못 들어주겠다"라고 끊었지만, 독일 유학 얘기, 연습실 얘기, 어쩌다 유럽에 있는 예고 친구들 만나서 같이 여행 갔다 온 얘기를 들으면서 부러워하기도 하고 재미있어하기도 했다.
어느 날, 이해 못 할 카톡이 와 있었다.
'나 지금 한국 간다. 공항 가서 다시 연락할 건데, 내일 시간 내라.'
아직 졸업도 안 했고 학기 중 아니었나? 이 놈이 왜 한국에 오지? 방학이었나? 간단히 자기 말만 하고 끝난 문자에 나는 시간을 비웠다.
다음 날, 집 근처로 친구가 생각보다 독일스럽지 않은, 어제 연습실에서 나온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카페로 들어가는 그놈을 따라 재잘거리면서 뒤를 따라갔다.
"방학이야? 왜 왔어? 언제 갈 거야? 며칠 있다가 갈 거야? 놀다 갈 거야? 밥 먹으러 갈까?"
커피를 주문하고 언제나처럼 커피 쟁반을 제대로 못 잡는 나 대신, 무심한 듯 내 앞에 커피 두 잔을 내려놓았다. 커피를 홀짝거리는 나에게 그놈이 말했다.
"나 공무원 공부할 건데, 어떻게 하는지 좀 가르쳐 줘라."
커피가 들어가다 목구멍에서 다시 역류하다 입천장이 덴 느낌이 들었다.
"뭘 한다고?"
"뭐 들었냐. 공부한다고, 너처럼. 나 아예 귀국했다."
앞에 앉아서 할 말을 끝내고 조용히 나의 답변을 기다리는 그놈의 눈치를 보면서, 한참 동안 커피를 마시는 척하면서 생각을 했다. 다시 독일을 안 가고 귀국했으면 피아노 공부를 그만둔 건데, 왜 갑자기 그만뒀지?라는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독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교수님한테 혼이라도 난 건지, 라크마니노프와 바크에 적응 잘한 거 아니었는지, 그 모든 걸 전부 묻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놈의 얼굴은 까칠했고, 걔한테서 처음 보는 유난히 슬픈 눈동자가 낯설지 않았다. 그 눈에서 내 마음속에 여전히 닫혀 있는 그 방이 생각났다. 피아노와 클래식 음악을 전부 넣고 두꺼운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를 마음속 깊이 던져 버려 이제는 찾지도 못하는 그 방이 생각났다. 어쩌면 나보다 더 어릴 때부터 꿈꿨을지도 모를 피아니스트의 길을 그만둔 나의 베프, 나의 절친이 지금 내 앞에 앉아 나처럼 공무원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나는 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놈이 얘기 안 해서 굳이 묻지 않았다. 그 얘길 하면 다시 상처가 될까 봐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커피잔이 다 비워질 때까지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친구의 눈치를 봤다.
"그... 인터넷 강의가 있거든? 거기 들어가서 강의 신청하고 책도 강의 맞춰서 사면 돼. 과목은 5개고, 선생님은 누구누구가 좋아. 강의가 잘되어 있어서 생각보다 재밌어.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인터넷 사이트, 선생님 정보, 책 등을 알려주었고 공항에서 바로 왔다 해서 배고플까 봐 걱정이 됐다.
밥 먹으러 가자는 나의 말에, 뭘 좀 먹으며 공부해라, 얼굴이 그게 뭐냐, 입술이 다 터서 꼴이 그게 뭐냐, 입술에 립밤이라도 좀 발라라, 잠을 좀 자라. 잔소리를 한바탕 퍼붓고 공부에 방해된다고 밥도 안 먹고 집으로 가 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전우가 되었다.
[연습실에서 노량진으로, 연습실에서 도서관으로]
친구도 처음에는 나처럼 행정직 공부를 했다. 하다가 포기했다. 자기는 도저히 영어 공부와 한국사와 국어 문법도 못 하겠고, 행정법은 할 만한데 행정학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TV에 나오는 마약 수사대처럼 그런 공무원이 하고 싶다고 했다.
"마약 수사대? 영화 찍냐? 진짜 웃기네."
우리는 마약 수사대가 멋있는데 정확히 어디서 마약 수사대를 할 수 있는지 몰랐다. 우리가 아는 건 행정직밖에 없었고, 다른 직렬이 그렇게 많이 있는지도 몰랐다.
"나 법원직 시험 칠래. 법원직이라는 게 있는데 과목은 많은 대신 평균은 행정직보다 조금 낮은 거 같아. 그리고 법 과목만 열심히 하면 국어, 영어, 한국사 점수가 엄청 높지 않아도 된대."
스터디 카페에서 옆 사람이 법원직 공부를 하길래 물어보고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고 했다.
"노량진 간다."
노량진으로 공부를 하러 친구가 떠났다. 공부를 혼자 못 하겠고 인강은 독학 같아서 싫다고, 자기는 노량진을 가야겠다고 했다. 그놈이 노량진으로 간 뒤, 우리는 공시생이 하는 기상 스터디를 같이했고, 공부 시간도 공유했고, 노량진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진짜 공시생이 되어 갔다.
2년 6개월. 공무원 시험 준비라는 전쟁터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챙겨주는 전우였다. 피아노 건반을 떠난 두 사람이, 각자의 이유로 닫아둔 그 방을 언급하지 않은 채, 새로운 길 위에서 다시 만났다. 음악이 주던 설렘과 고통을 이제 기출문제와 법조문이 대신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꿈을 포기한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다른 꿈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 다시,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전우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