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공시생은 어떻게 하는건가요?
"딸아, 아빠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임용고시든, 공무원 시험이든 쳐보지 않겠니. 나랏밥을 먹자."
[나랏밥을 먹자]
졸업 후, 나는 영어학원에서 Rian으로 살며 영어라는 보험을 열심히 들고 있었다.
주말에 학원을 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아빠가 나를 불렀다.
"잠깐 앉아봐. 아빠는 네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게 좋은데, 언제까지 영어 공부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겠니?"
언젠가는 부모님께 들을 얘기라 생각했지만 막상 들으니 덤덤했다.
영어라는 보험을 열심히 들고 있었지만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음악 전공한 사람이 대기업에 갈 수 있나? 공기업은? 외국계 기업은 뭘로 지원한다는 말인가? 스타인웨이, 벡슈타인, 야마하 피아노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채용 공고를 본 적도 있었고, 문화회관 채용 공고도 본 적이 있었다.
정말이지 누가 나에게 길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영어 공부만 할 수는 없다는 걸 막연히 알고 있긴 했다. 나에게 결정의 시간은 내 생각보다 조금 일찍 왔을 뿐이다.
나랏밥이라... 임용고시라...
임용고시는 실기시험이 있었고 빛을 잃은 피아노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피아노를 그만둔 것에 후회는 없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마음을 너무 주면 헤어질 때 미련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고 했던가. 너무 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어질 수 없던 사랑. 피아노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끝내 풀지 못한 채 덮어버린, 평생 검사받고 싶지 않은 숙제였고 영혼에 너무 깊게 새겨져서 마음속에서 차마 꺼낼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피아노를 그만두고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끊었다. 국민 가수, 지오디가 나의 마지막 아이돌이었다. 그 뒤로는 K-pop조차 들은 적이 없을 정도로 클래식을 사랑했다. 그런 클래식도 피아노와 함께 내 마음에 묻었다. 마음의 방에 피아노와 클래식을 모두 넣어 열쇠로 문을 잠그고, 다시는 열지 않으려고 열쇠를 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임용고시라... 마음이 착잡했다. 때마침 임용고시, 피아노를 안 쳐도 되는 핑계거리가 생겼다.
최근 몇 년째 음악 교사의 채용률이 내가 사는 광역시에 1명이라는 걸 봤기 때문이다.
오... 이건 너무 세잖아. 이걸 어떻게 해?
그리고 Rian으로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임용고시 과목에는 영어가 없다는 거? 이런 이유로 임용고시는 안 친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내가 고집 센 아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아셔서 그런지 별말씀을 안 하셨고, 그럼 어떤 걸 할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공무원이라... 아빠처럼 공무원을 한다고? 그럼 영어도 좀 쓸 수 있으려나? 막 외국으로 파견도 가고?
무엇보다도 엄마 친구 딸이 문화회관에서 피아니스트를 초빙해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무원이 그런 것도 한다고?
"공무원 시험을 칠게요!"
사람은 살면서 몇 번의 터닝포인트가 생긴다고 했던가. 이렇게 나는 맨땅의 헤딩, 어려운 길,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길을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다. 행정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단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문화회관에서 피아니스트를 초빙할 수도 있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과, '피아노를 계속 내 마음에 묻을 수 있겠지?' 하는 회피적 간절함이 만들어낸 선택이었다.
[공시가 뭔지도 모르는 공시생]
예술고를 나오고 음대를 나와서 공무원 시험을 치는 사람은 내 주위에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내 친구들은 전부 음악을 하는데,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공무원 공부를 해서 얘기를 듣거나 공부에 관해 물어볼 수는 전혀 없었다. 인터넷을 찾고, 영어학원의 행정학과 친구들에게 물어서 인터넷 강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아... 인강을 듣나 보지?
머리를 굴렸다. '인강이 더 저렴하지? 인강은 노량진에 있는 선생님이 가르친 걸 녹화한 거지? 유명한 사람이 가르치니까 잘 가르치겠지?' 그럼 나도 인강을 들어본다.
문제집은 왜 기출도 따로 있고 이론서도 따로 있고, 뭐 이렇게 많은지. 과목은 심지어 선택 과목이란다.
과학, 사회, 수학... 어차피 이런 거는 학교에서 안 배웠으니까 아빠가 행정법, 행정학을 들어보라고 했다.
아... 행정법, 행정학이라는 게 뭔가 멋져 보이는데?
점수를 어떻게 하면 잘 받는지, 과목은 뭐가 있는지 연구 하나 없이 그냥 행정법, 행정학을 선택했다. 공시생인데 정말 공시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공시생이었다.
처음 엄청난 양의 문제집이 집으로 배송된 날, 설렜다. 징글징글하게 보던 악보가 아니라 흰 종이 위에 낯선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힌 걸 보고 지적 호기심과 그 이름들에 매료되었다.
행정... 학이라니, 행정... 법이라니! 법!!! 이라니!!!!!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한국사도 공부하네? 영어도 하네? 국어도 하네?
공부가 매우 재밌을 것 같았다.
[2평 성벽 밖, 숨 막히는 침묵들]
이제 공부라는 걸 해본다고 생각하니 매우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중학교 때 이후로는 가본 적도 없는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당연히 공부는 도서관에서 해야지. 제일 이름이 멋진 행정... 법! 을 가방 안에 소중히 넣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갔다.
넓은 책상, 칸막이가 조금 나와 있는 책상의 열람실. 가운데 앉기는 좀 부담스러울 것 같으니까 구석 창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맞은편에 나와 같은 공시생인 듯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도서관은 나만의 세계였던 2평 연습실과는 다른 곳이었다. 넓은 곳에 빼곡히 앉아 있는 사람들.
혼자 2평 연습실에서 피아노와 나만 있는 단절된 곳에 살던 나는, 이곳에 적응하지를 못했다.
사람이 내 옆에 가까이 앉는 게 낯설었고, 넓은 홀 같은 도서관에서 마구 울리는 책 넘기는 소리, 발자국 소리, 전화벨 소리, 키보드 자판 소리, 마우스 소리가 뒤섞여 내 주위를 감쌌다.
2평, 나의 성이 그리웠다. 식은땀이 나는 것 같기도 했고, 주위 눈치만 보다 그곳을 뛰쳐나왔다.
다음으로 독서실에 도전했다. 독서실도 중학교 때 이후로 가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공부는 독서실에서 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독서실에 갔다. 도서관보다 더 사람과 가까이 앉게 되었고, 독서실 책상 중간에 앉으니 옆사람의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어두운 독서실에 뿌옇게 빛나는 스탠드 등 너머로 종이 위에 사각거리는 펜 소리가 들렸다. 마치 피아니시모로 피아노를 긁는 듯한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렸다. 책 넘기는 소리, 어쩌다 들리는 의자 소리, 옷이 사각거리는 소리. 도서관보다 더 조용한 침묵이 나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2평이지만 온전히 피아노와 나만 있던 세계, 나만의 성이 그렇게 넓고 아늑한 곳이었나?라는 생각을 또 했다.
결국, 거기도 뛰쳐나왔고, 되도록 집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시생이 되고 친구들은 유학생이 되었다]
졸업을 하고 유학 준비를 끝낸 친구들이 하나둘, 한국을 떠났다. 항상 자상한 나의 지휘자 친구는 클라리넷 전공이었는데 고등학교때부터 꿈이 지휘자라 하더니지휘 공부를 하러 독일로 떠났다. 성악하던 친구들은 이탈리아로 떠났으며, 첼로 하던 예쁜 절친은 파리, 미국 등 다양한 나라로 떠났다. 나를 그렇게 레슨해주던 절친, 연습실 레슨 샘, 그놈도 독일 베를린 음대에 합격해서 한국을 떠난다고 했다.
학창 시절 내내 붙어 다니다 오빠처럼 챙겨주기도 하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한 친구가 떠난다 하니 마음이 허전했다.
"야. 카톡 하면 무조건 답장해. 보이스톡도 무조건 받고. 가서 연습도 좀 하고... 연습 좀 열심히 해라."
다정하게 말하면 무너질 것 같아, 일부러 날 선 말들을 던졌다.
친구들이 한국을 떠날 때, 나는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꼈다. 나도 유학을 가고 싶었다. 학교는 달라도 우리는 약속 없이 큰 연주회에서 만났고, 늘 함께였다. 그런 친구들이 꿈을 좇아 하나둘 떠났다.
나는 홀로 남았다.
처음의 설렘은 어디 가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행정법과 행정학, '학교에서 이걸 배웠나?' 싶은 국어, 그나마 익숙한 한국사와 영어를 집에 처박혀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