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갈게

왕복 티켓을 가지고도 불편한 마음

by 밥김미

출국 전날 밤, 캐리어를 닫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올까?' 어쩌면 이곳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두 번째 신혼집을 천천히 둘러봤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는 텅 빈 집이었다. 싱크대를 주문하고 남편은 며칠 동안 톱가루를 휘날리며 싱크대를 만들었다. 바닥에 앉아 휴대용 인덕션으로 요리를 하고,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했다. 한국에서 화물로 보낸 가구들은 3개월 후에 도착예정이었다. 에어매트리스 위에서 자는 동안 작은 움직임에도 바닥과 매트리스가 부딪히며 튜브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뭐든 시작은 어려운 법이라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를 실감할수록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은 점차 사라졌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사러 간 날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자 땀이 삐질삐질 났다. 긴장하면서도 한 손에는 휴대폰을 꽉 쥐고 있었다. 구글번역기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가전 구매 미션을 해냈다.

이 동네에서 한국인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처음에는 외롭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 남편은 출근을 하고, 나는 한 시간 동안 기차를 타서 베를린에 갔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한국어로 말을 하니 속이 뚫리는 듯했다. 역시나 한국인은 한국어로 수다를 떨어야 했던 건가. 사실 그 모임 덕분에 한국에 대한 향수를 조금씩 덜 수 있었다.

8개월 만에 받은 비자는 노동이 허가된 비자였다. 잡 센터에 가서 구직을 했지만 매번 독일어라는 벽이 있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들 앞에서 점점 무기력해졌다. 텅 빈집이 채워가듯 마음도 좋은 기억으로 채워갔으면 좋았을 텐데.


침실 창가 너머로 건너편 빌라의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마저 없었다면 아주 진한 어두움뿐이었을 테다. 살짝 열어둔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잔잔하게 요동치는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 안, 이젠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 그의 눈빛이 슬퍼 보였다. 남편의 얼굴을 바라볼수록 이상하게 자꾸 그리웠다. 손을 꼭 잡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으로 독일이 점점 멀어져 갔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아쉬움보다는 한국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붕 뜨기 시작했다. 기내식으로는 비빔밥을 먹었다. 사람, 언어, 음식 등 많은 것들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긴장하고 살던 근육도 내 마음이 편해진 걸 눈치챘을까. 몸이 나른해지고 혼자서도 씩씩했다. 사실 독일에서 지낸 동네보다 한국인들로 가득한 비행기 안이 마음만은 더 편안했다.


밥이 늦게 온 것이 미안했는지 승무원이 간식을 가져다줬다. 한 손에 과자봉지를 들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골랐다. 영화를 보니 13시간의 비행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어느새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어로 빼곡한 전광판을 보니 우리가 9000km 떨어져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