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 보다 인생수업
#20231221
오전 9시 30분, 파워포인트 기초 수업에는 나와 60대 후반의 아버님 두 분이 계신다. 4시간씩 총 다섯 번, 20시간의 수업 동안 정해진 진도를 나가기에는 무리였다. 매 수업 시간마다 아버님들은 중간중간 강사님과 내게 세상 사는 이야기, 자식분들 이야기를 꺼내시며 수업을 툭툭 끊어 내셨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집중하여 교재에 나와 있는 예시를 따라 만들어 내신다. 양손 검지에 힘을 주고 일명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치시는 모습에서는 비장함까지도 느껴졌다.
아버님 두 분은 아직 회사에 다니시며 일선에서 열심히 생업에 종사하고 계시는데 그렇게 일하시는 와중에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파워포인트 기초 수업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다니던 대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셔서 마흔이 다 되어 다시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장을 겨우 받으셨던 이야기, 가방끈이 짧아 서러우셨다며 얼마 전 대학교에 입학하여 20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계신다는 이야기. 교수님보다 파워포인트를 더 잘 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 아버님들 사이에 앉아 당신들의 열심히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며 그때 그 시절의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해보기도 했다. 강사님께서 텍스트 병합이며, 애니메이션 효과며 교재의 진도대로 열심히 설명을 해보고자 하셨지만 또 다시 아버님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수업은 맥없이 끊기고 말았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연한 거? 찌-인한 거?” 하고 물으시고는 대답도 듣지 않으시고 학원 자판기로 가셔서 커피 두 잔을 뽑아 건네셨다. “자! 새댁! 연한 거랑 찐한 거! 골라 보이소!” 늘 친근한 말투로 나를 새댁이라고 부르시는 아버님께서 마지막 수업이라고 커피를 사주셨다. 원래 마지막 수업에는 맛있는 거 나눠 먹으며 책걸이를 해야 한다며.. 그 대신 커피라도 한 잔 마시라고 하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셨다.
20시간의 수업 시간 동안 교재를 따라 여러 가지 파워포인트 사용법을 익히고 실력을 쌓아갔지만 그보다 아버님들의 인생 이야기, 따뜻한 마음이 더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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