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받아도 괜찮은 액수

그날 밤, 내가 송금한 것은 '신뢰'였다

by 리치

딸아이를 어학연수 보내고, 나는 경제적으로 독립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네일숍을 차렸다.

이미 노안이 시작된 나이에 기술을 새로 배우는 건 무리라 생각해 운영만 맡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네일숍은 문을 닫았고, 나는 다시 남편의 수입에 기대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의 나는 ‘독립’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접어 넣어두었다.

내가 입점했던 곳은 서울 중심가의 새 쇼핑몰이었다.
나란히 네 개의 네일숍이 들어와 있었고, 내 바로 옆 가게 원장은 내 딸보다 여섯 살 많은 젊은 원장이었다.

그녀는 기술이 뛰어났고 직접 시술을 하며 소수 인원으로 단단하게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남편의 수입이 있었던 나는 비교적 여유 있는 운영을 했고,

그녀는 세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고 알코올 중독자 아빠 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녀의 성장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더 마음이 쓰였다.

직원들 간식을 챙길 때면 옆 가게 직원들 것까지 함께 사두곤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어린 나이에 스스로 서 있는 모습이 기특했고 왠지 모르게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쇼핑몰은 분양 실패로 문을 닫았고 우리의 네일숍도 함께 정리되었다.


그녀는 다른 곳에 다시 가게를 냈고 몇 년간 안부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20일 전 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원장님… 저 경희예요.”

이름도,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의 떨림은 이상하게도 반가웠다.

열 살짜리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는 그녀는 내 카톡 프로필을 가끔 들여다보며 잘 지내고 계신가 생각했단다.

짧은 안부가 오간 뒤 그녀의 목소리는 급해졌다.

남편이 건축일을 하다 부도를 맞았고 급하게 돈을 메꿔야 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월말에 월급 들어오면 꼭 갚을게요.”

그녀는 흐느꼈다.

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더 묻지도 못했고 결혼생활이 어떠냐고 물을 틈도 없었다.
그녀는 또 다른 전화를 해야 할 사람처럼 조급해 보였다.

전화를 끊고 못 받아도 괜찮을 만큼의 액수를 송금했다.

보내는 순간부터 그 돈은 빌려주는 돈이 아니라 그녀 아이들 세뱃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조금 더 보내지 못한 미안함과 동시에

그녀의 전화가 오랜만의 반가움이 아니라 절박함의 목록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작은 의심.

그 작은 의심이 나를 더 씁쓸하게 했다.


20일 만에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원장님, 신랑 월급 들어왔어요.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그 한마디에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세한 그림자가 사라졌다.

안부를 조금 더 나누다 나는 말했다.


“살다 보면 위기가 올 때도 있으니까 너무 좌절하지 말고 힘내.
그리고… 내게 갚을 돈, 아이들 세뱃돈이라 생각해. 보내지 않아도 돼.”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막상 제가 어려워지니 도와줄 사람이 없더라고요 "

“나도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이라 그 절박함을 알아. 예전처럼 여유가 없어서 많이 못 도와준 게 미안하네.”

그녀는 언젠가 꼭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송금 버튼을 누르던 순간부터 이미 돌려받지 않을 마음을 정해두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15년 만에 걸려온 전화가 간혹 들려오는 불신의 전화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끝내 약속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살다 보면 돈보다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아직도 사람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 사실이 오늘은 조금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더불어 , 내가 운영했던 네일숍은 실패가 아닌, 돈보다 귀한 '사람'이라는 자산을 남겼다고 위안을 해본다.



#네일숍#부도#불신#세뱃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