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규칙 위반자

억눌린 감정은 결국 스스로를 깨고 나온다.

by 부엄쓰c



그날 이후 보관소의 공기는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다.

모두가 표정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서로를 살폈지만, 방 안엔 미세한 균열이 천천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나는 휴게 공간의 구석에 앉아 있었다. 소은은 창가에서 말없이 앉아 먼 곳을 바라보았고, 재현은 책상 앞에서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재현이 갑자기 책상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소리가 방 안에 날카롭게 울렸다.


“더 이상 못 참겠어. 왜 계속 이렇게 숨기고만 살아야 해?”


모두의 시선이 재현에게 쏠렸다. 그의 눈빛은 혼란과 분노로 가득했다.


소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기는 그런 곳이잖아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차분히 마주하는 곳...”


재현은 거칠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마주하는 게 아니라 억지로 참고만 있는 거겠지. 그런다고 뭐가 나아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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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은 입술을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긴장 속에서 침묵했다.


그때 방 안으로 서윤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냉담한 표정으로 재현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맞아. 사실 여기서 하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결국 네 감정은 그대로 남아 너를 괴롭힐 뿐이지.”


서윤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균열을 더 깊게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선우가 급히 들어와 서윤을 향해 말했다.


“서윤 씨, 그만하세요. 이곳은 감정을 마주하는 곳이지 부추기는 곳이 아닙니다.”


서윤은 비웃듯 선우를 바라봤다.


“그래요?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은 여전히 아파하고 있는 거죠? 솔직히 말해봐요. 당신이 진짜 이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선우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이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직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서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이상적인 말뿐이죠. 결국 여기서 감정은 해결되지 않아요. 숨겨두거나 억누르거나, 그것밖엔 없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냉담했지만, 방 안에 있던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느끼던 두려움을 정확히 집어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조용히 물었다.


“그럼, 우리가 여기서 정말 해야 할 일은 뭐죠?”


서윤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서늘했다.


“그 감정을 인정하지 마. 네가 그 감정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차라리 잊거나 파괴하는 게 나아.”


서윤의 말은 선우가 가르쳐준 모든 것과 정면으로 대립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재현 역시 혼란 속에서 고개를 숙였다.


선우는 조용히 우리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감정을 없애거나 부정하는 순간, 그 감정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더 큰 상처를 만듭니다. 마주하기 힘들더라도, 결국 마주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방 안의 침묵은 무거웠다.

서윤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 한번 잘 해봐요. 하지만 결국 당신들도 알게 될 겁니다. 마주하기엔 너무 아프고 힘든 감정이 있다는 걸.”


서윤은 그 말을 남긴 채 방을 나섰다.

방 안엔 깊은 침묵만 남았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마음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서윤의 말도, 선우의 말도 모두 틀린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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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순간, 내 안에서 작고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어.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 작은 목소리를 붙잡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내 안의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이곳에 온 진짜 이유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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