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좋아하세요…

2025 독서 회고

by 잭Jack



매혹의 영역으로 자꾸 나를 데려가고,
좋은 감각을 가진 이들을 따라 해 보세요.


신년을 함께 시작한 '인생의 해상도' 속 말이 저를 끊임없이 서점에서 헤메이게 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좋은 작가의 감각이 고팠습니다. 다행히도 조용한 카페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속에 잘 빠져들기에 알지도 못한 새에 25권을 꼬박 읽었네요.


독서 회고이니 만큼 올해의 책을 꼽아봅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ㅣ무라카미 하루키

언제 들어도 좋은 말ㅣ이석원

사랑의 단상ㅣ롤랑 바르트

인생학교;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법ㅣ알랭 드 보통

모순ㅣ양귀자

명상록ㅣ아우렐리우스

(시)고요한 세상ㅣ제프리 맥다니엘


축하드립니다.


네, 보시다시피 여전히 편독이 심한, 교보의 회전문을 들어서면서부터 굵직한 J 한 글자만을 찾아 돌진하는 저입니다. 그래도 소설포비아를 딛고 25살의 끝자락에 '모순'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년에는 기필코 소설과 고전의 매혹에 넘어가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본을 손에 넣었습니다.


조용히 필사해 두었던 것들 중 공유하고-사실은 제가 자주 꺼내보고 -싶은 문장들을 욕심 있게 긁어왔습니다. 저도 대부분의 책을 고를 때에 롱블랙에서 접한 짧은 문장들로 책을 열게 되었기에, 제가 모은 이 문장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닿길 바라봅니다.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 ㅣ진민영

ㆍ잃어버린 것의 뒤편에는 언제나 얻게 될 새로운 수확이 있다.

ㆍ허물이 있다면 버리기를 두려워 말라.

ㆍ생각을 버리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잊으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한다면, 잊으려 하기보다는 직면하는 편이 더 현명한 접근이다.


인생학교;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법 ㅣ알랭 드 보통

ㆍ고통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모르겠지만, No는 그냥 No다.

ㆍ우리는 때때로 서로 욕망이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성적 교제를 향한 우리의 절박하고 뜨거운 갈망에 대해 전혀 질겁하지 않고, 아주 극단적인 색정조차 눈곱만큼도 혐오하지 않는 사람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마주치더라도 우리가 먼저 행동에 나서야 할 때가 있다. 혼란과 주저함에 갈등하는 순간을 거치더라도 그 기회를 잡아 결국은 섹스가 그 복잡한 매력을 드러내도록 모험을 시도해 봐야 한다.

ㆍ성인기의 사랑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어린 시절에 사랑받았던 느낌을 기억하기보다는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는데 무엇을 감수했는지, 다시 말해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에 맞먹는 노력을 쏟아야만 파트너가 은밀하게 불안을 느낄 때 그것을 감지하고 원인을 해결함으로써 더 행복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ㆍ성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흥미와 상식을 넓혀가기도 한다.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더 친해지기 위해 18세기 스웨덴 가구의 섬세한 장식에 매료되거나 장거리 사이클을 배우기도 한다.


거인의 노트ㅣ김익한

ㆍ내 삶을 기록함으로써 타성에 젖어 일하거나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발전시킬 새로운 전략을 시도할 수 있다.

ㆍ삶의 중심이 되는 일을 계속 생각하라. 그리고 의미 부여를 통해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하라.

ㆍ한 가지 주제에 대해 끝까지 생각하는 힘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ㆍ기록이 주는 효용은 기억이 아니라 집중이다.

ㆍ생각이란 명료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은 흐리멍텅할 때가 많다. 상반되는 생각이 머릿속에 동시에 들어있기도 한다. 생각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합리적인 것을 골라라. 기록은 언제나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온전한 사랑의 이해ㅣ다니엘

ㆍ살아있는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선택하면 책임이 따르기에 선택을 하지 않은 선택을 하기 쉽다. 본래 인간에게 가장 달콤한 쾌락은 ‘가능성만 무한한 상태‘이다. 이 상태를 선택하지 않는 선택, 즉 자기기만적인 태도로 계속 유지할 수 있다.

ㆍ인간관계에서는 나와 너의 완벽을 좇는 태도보다 완벽하지 않음도 받아들이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런 과정에 의미를 느끼고 더 나아가 즐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완벽한 사람이며,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타인은 내가 절대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마음을 견지해야 한다. 성숙한 개인으로서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이해하여 품어주고, 이해할 수 없다면 단호하게 끊어라. 그게 나와 다른 사람인 상대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건전하게 공감하는 방법이다.

ㆍ누군가와 사랑을 하다 보면 상대의 부족한 점이 보인다. 물론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지만, 시정을 요구해야 할 때가 있고 시정 요구를 받은 상대방도 요청이 합리적이라면 응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상대의 변화와 성장을 인내심 있게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ㆍ감정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보다 일관되게 무뚝뚝한 사람이 장기적 관계에 훨씬 적합하다. 일관된 태도, 특히 감정에 있어 일관된 반응은 개인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일관되었다‘는 말은 ‘예측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ㆍ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최선의 나다.

ㆍ사랑이란 너를 알아가기 위해 시작했다가 결국 나를 알게 되는 내면의 여행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이 너 때문인 줄 알았지만 결국 내 탓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관조할 수 있는 능력, 그냥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관조할 줄 알아야 오히려 우리 곁에 머무르며 대상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ㆍ당신은 사랑에 빠진 대상과 어떤 관계도 정의하지 않으면서도, 불안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오래 함께할 수 있는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데 연인 사이를 규정하지 않고도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게 쉽게 가능하다면 본능을 거스를 수 있는 신의 권능을 가진 사람이다.

ㆍ지식을 습득한다는 행위는 대상 혹은 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도구를 얻는다는 것과 같다.

ㆍ어떤 대상에 대해 과한 기대와 환상을 품는 행위는 미숙함의 상징이다. 역으로 어떤 것에 전문적이고 능숙할수록 대상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는 법이다.


연애론ㅣ스탕달

ㆍ지금 이 순간, 누구든 순간적으로 이성을 보고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해한다면 정열적인 연애에 빠진 것이다. 부끄러움, 그것은 지금 자신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숨길 수 없는 확실한 증거이다.

ㆍ남녀가 사랑을 하는데 연애의 기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자신의 감정을 그때그때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ㆍ결국 이 모든 질투는 당신의 열정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만 있다면 연적은 곧 무기를 잃게 된다.

ㆍ순진함의 가장 큰 특권은 아무의 눈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의 말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ㆍ사랑은 감미로운 꽃이지만 무서운 낭떠러지 끝에서 그 꽃을 따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을 할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 뿐만 아니라 쉴 새 없이 여자들에게 버림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절망의 가능성이 따라다니고 인생에 공허함이 남는다 해도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ㆍ사랑은 마음의 요구로 시작하지만 마음의 요구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허황된 것들을 버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는 삶이란 무엇일까? 지금도 채운다는 말 앞에는 ‘가득‘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붙이려 한다. 나를 괴롭히는 불안을 피해 다니거나 방치한 채 두려워 말고, 직접 잡아채서 마주하기. 그리고 내 손으로 잘 접어 마음 밖에 버리기. 그 자리를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채우기.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지켜나가기. 규제함으로써 자유로워지기.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잃어버린 것들의 뒤편에 있을 배움을 외면하지 않기. 나아갈 길을 생각하기.


간소한 삶에 관한 작은 책을 읽고 썼던 다짐입니다. 여전히 저는 무엇이든 ‘가득’ 채우고야 마는 사람이네요. 독서 회고를 하겠다면서 긁어온 문장들마저 추리고 추려도 이만큼인걸 보세요. 올해는 마땅한 도피처가 없어서 숨을 곳을, 또 답을 찾아 자꾸만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성실히 읽고, 쓰고, 걸었습니다. 그 덕에 회사, 친구, 연인과의 이별을 잘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던가요. 작가가 자신을 온전히 내놓고 이야기하면, 글에는 점성이 생깁니다. 끈적하게 독자를 붙잡는 힘이 느껴져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기 글을 믿고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부단히 연마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노력하는 만큼 글을 잘 쓸 수 있다.’ 치부마저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에세이를 쓰는 작가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지만 내 짝으로는 영 탐탁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회사라고 다를까요. 부모님 속이 뒤집어질지언정 하루도 더 다니기 싫은 곳이 있죠. 마찬가지로 내내 자리를 지키는 베스트셀러라는데, 죽어라 안 읽히는 책이 있습니다. 작가가 이 말을 하고야 말겠구나 싶다가 기어코 그 말을 해버리면 그 책을 더 읽기가 싫어집니다. 제가 열심히 따라온 길 끝에 작가의 생떼같은 문장이 기다리고 있을 때에 허무가 싫어서요.


네, 여기까지가 편독에 대한 저의 생떼같은 핑계입니다. 내년에는 더 성숙한 태도로, 좋은 문장을 사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독서 회고는 한 편 더 올리려고 합니다. 욕심이 그득한 탓에 5권밖에 담지를 못했거든요. 평온한 토요일 밤, 마음에 닿는 문장이 하나쯤은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모두들, 안녕!


작가의 이전글비소유의 의지; 사랑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