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유의 의지; 사랑의 단상

by 잭Jack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사랑에 관한 80가지 담론을 다룬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워낙에 유명한 ‘나는 그사람이 아프다’와 ’기다림’도 너무 좋았지만, 아래 몇개의 담론을 소개하고 싶다.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안되는 대목들이 많아서, 한문장 한문장을 꼭꼭 씹어먹기 좋았다. 무겁지만 들고 다닐 가치가 있는 소중한 책. 아마 명상록과 함께 나의 바이블이 되어주지 않을까? 머릿속의 가려운 곳들을 명쾌히 긁어주는 문장들에 희열과 큰한 통증을 느낀다.


근사해 43

근사해란, 그것은 유일하기 때문에 내 욕망이야라는 뜻이다.

근사해란 피로, 즉 언어의 피로의 조그만 흔적이다. 근사한 것은 근사하다. 또는 당신이 근사하기 때문에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랑의 언어의 막을 내리는 것은 바로 그것을 설정한 매혹이다. 왜냐하면 매혹을 묘사한다는 것은 결국, “난 매혹되었어”라는 말을 초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루기 힘든 것 48

진실과 거짓, 성공과 실패를 떠나 나는 그냥 받아들이며 긍정한다.

사랑에는 두 종류의 긍정이 있다.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즉각적인 긍정.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말한다. 그 뒤를 잇는 긴 터널. 나의 첫번째 긍정은 의혹으로 찢겨지고, 사랑의 가치는 끊임없이 평가절하될 위험에 처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제거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번에 내가 긍정하는 것은 긍정 자체이지, 그 우발적인 요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첫번째 만남을 그 다름 속에서 긍정하고, 그것의 반복이 아닌 회귀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사랑을 사랑하는 것 61

나는 그이/그녀를 잃어버려서 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기 사랑에 의해 취소된 그 사람이 있다. 이 취소로부터 나는 하나의 확실한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 부재하기 때문에 더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을 욕망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렇지만 또 그 사람이 이처럼 작아지고 축소되어, 그 자신이 야기한 감정에서조차 제외되는 것을 보면서 이내 괴로워한다.


기다림 70

기다림은 하나의 주문이다. 나는 움직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랑의 관계가 진정된 오랜 후에도,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환각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때로 전화가 늦어지면 여전히 괴로워하고, 또 누가 전화를 하든간에 그 훼방꾼에게서 나는 내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나는 절단된 다리에서 계속 아픔을 느끼는 불구자이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중국의 선비가 기녀를 사랑하였다. 기녀는 선비에게 “선비님께서 만약 제 집 정원 창문 아래 의자에 앉아 백일 밤을 기다리며 지새운다면, 그때 저는 선비님 사람이 되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흔아홉번째 되던 날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팔에 끼고 그곳을 떠났다.


검은 안경 76

나는 이중의 담론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 사람이 그 고유의 구조적 성향으로 인해 나의 간청을 필요로 한다면, 내 정념의 서정적 진술에 문자 그대로의 표현에 자신을 내맡기는 게 나를 정당화하는 일이 아닐까? 지나침, 광기, 그것이 내 진실이며 힘이 아닐까? 그리고 이 진실, 이 힘이 결국에 가서는 그를 감동시키는게 아닐까?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정념의 기호들이 그를 질식시킬지도 몰라라고 나는 중얼거린다. 바로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감춰야만 하는 게 아닐까?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가 잘되기를 바랄 의무가 있고,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 자신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고, 함정이다. 나는 성인이 되거나 괴물이 되도록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성인은 될 수 없고, 괴물이 되기는 원치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얼버무린다. 나는 내 정념을 조금만 보여준다.

내가 당신에게 뭔가 감추는 중이라는 걸 좀 아세요.

내 언어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나, 내 몸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내가 내 언어로 감추는 것을 몸은 말해 버린다. 내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든간에, 그 사람은 내 목소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내 몸은 고집 센 아이이며, 내 언어는 예의바른 어른이다.

그사람의 어리둥절해하는 시선 앞에서 별안간 울음이 터져나와 오랫동안 감시해 왔던 언어의 노력을 무산시켜 버린다. 나는 무너진다.


마음 92

당신은 내가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며,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사랑한다. 또는 세상 사람들과 나는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불행하게도 이 분리된 것,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내 정신에 관심이 없으며 당신은 내 마음에 관심이 없다.

내가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다. 그리하여 이 선물이 다시 내게로 되돌려질 때마다, 베르테르처럼 내가 원치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내게 빌려준 정신을 제거하고 나면 나로부터 남는 것은 마음뿐이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97

내가 진지하게 그 사람의 불행에 동일시하는 순간, 내가 그 불행에서 읽는 것은 그것이 나 없이 일어났으며, 이렇듯 스스로 불행해진 그가 나를 버리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와는 무관한 이유로 해서 그 사람이 그토록 괴로워한다면, 그건 내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고통이 내 밖에서 이루어지는 한, 그것은 나를 취소하는 거나 다름없다.


어떻게 할까? 104

만약 그 사람이 무심코 이런저런 시간에 그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곳의 전화번호를 주었다면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전화를 해야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바로 이 허용이니까.) 표면적으로는 어떤 결과도 가지지 않을/않는 것이 하찮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나에게는 새로운 것, 방해하는 것은 모두 사실의 범주가 아닌, 해석해야만 하는 기호로 받아들여진다.

때때로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심사숙고하다 보면 기진맥진해진다. 나는 어떤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수단일 뿐 사랑의 시간은 충동과 행동을 나란히 늘어놓지도, 일치시키지도 않는다. 나는 속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광기는 절제된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


헌사 121

글쓰기는 그 사람을 숨막히게 한다. 그는 글쓰기에서 선물을 인지하기는커녕 자제력, 힘, 쾌락, 고독의 긍정을 읽는다. 바로 거기에 헌사의 잔인한 패러독스가 연유한다. 나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당신을 숨막히게 하는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어 한다라는. (나라는 사람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글쓰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예외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연의 일치요, 최고선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을 위해 쓴다고 믿었던 것을 나는 당신에게 줄 수 없다. 사랑의 헌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152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게 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


유령의 배 158

사랑의 대상이 그 무엇이 되든간에 사라지든가 혹은 우정의 차원으로 넘어가든가 어쨌든 나는 그가 사라지는 모습조차 보지 못한다. 끝이 난 사랑은 마치 깜빡이기를 멈춘 우주선마냥 저 멀리 다른 세계로 멀어져 간다. 어떤 소요처럼 시끄럽게 울리다 갑자기 잠잠해지는 그사람.

나는 항상 행동한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내 절망이 어떠하든, 나는 사랑이 언젠가는 나를 충족시켜 주리라는 듯, 최고선이 가능하다는 듯 행동하기를 고집한다. 그러므로 충족되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자살하지도 않는 내게 있어 사랑의 방황은 숙명적이다.

나는 방황하는(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리하여 그것은 나로 하여금 강박적인 말의 충동에 사로잡히게 하여,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사랑해요‘란 말을 지껄이게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타나 그 말을 거두어 다시 내게로 돌려줄 때까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불가능한 대답을 수행할 수는 없으며(감당할 수 없는 완결성), 그래서 방황은 계속된다.

내 삶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사랑의 실패는 흡사하다.


상상계로부터의 유형 164

현실의 장례에서는 바로 현실의 시련이 나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나는 두 개의 대립되는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 즉, 그 사람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해야 하고, 또 그가 죽었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

이미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실패하면 괴롭고, 성공하면 슬프다.


선택받은 나날들 181

축제란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의 약속된 현존으로부터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어떤 엄청난 즐거움의 총체요, 향연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축제가 되는 일이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알 수 없는 것 205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또는 그 사람을 정의하려고 하는 대신 나는 내 자신에게도 시선을 돌린다.


난 널 사랑해 223

첫번째 고백을 하고 난 후의 ‘난 널 사랑해‘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난 널 사랑해’에는 여러가지 사교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난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아요.” ”왜 그런말을 하는 거죠?“ 등등. 그러나 진짜 거절은 ‘대답 없음‘이란 말이다. 나는 청원자로서뿐만 아니라 말하는 주체로서도 부인되기 때문에 더 확실히 취소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질문할 권리마저도 빼앗겨 버린 나는 영원히 죽은 거나 다름없다.


‘난 널 사랑해‘… ‘저도 그래요‘ ‘저도 그래요‘는 완전한 대답이 아니다. 난 널 사랑해는 능동적인 것이다. 그것은 다른 힘들에 맞서 자신을 힘으로 긍정한다.


사랑의 편지 240

당신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건 당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에 드는 것을 쓰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며 그녀가 제시하는 것은 다만 하나의 전략적 교신일 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의 편지란 어떤 전략적인 가치도 갖지 아니하며, 다만 표현적인 것에 불과하다. 내가 그사람과 더불어 시도하는 것은 하나의 관계이지 교신이 아니다. 욕망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편지 또한 회답을 기다린다.


의사소통의 부당함을 용납하는 자, 화답을 받지 않고도 가볍게 다정하게 계속 말하는 자, 그런 자야말로 어머니의 위대한 자제력을 갖게 될 것이다.


대답 없음 255

딱 들어맞지 않는 것은 이내 지나친 것이 되어 버린다. 나의 말은 정확히 말해 쓰레기가 아닌 재고품이다. 제때에 소비되지 않아 남아도는 것.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혔다 260

그러나 때로 다른 밤을 체험하기도 한다. 홀로 명상에 잠겨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조용히 생각해 본다. 모든 해석을 유보하고, 무의미의 밤 속으로 들어간다. 어둠은 계속 진동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소득의 밤, 정교하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소비의 밤이다. 나는 여기 사랑의 어두운 내부 안에 그저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다.

나는 사랑의 막다른 길을 결정, 지배, 결별, 봉헌 등, 간단히 말해 몸짓에 의해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밤을 다른 밤으로 대체하려 할 뿐이다.


왜? 280

왜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으세요?

사랑이 완벽하게 만든 이 나를(그렇게도 많이 주고, 또 그렇게도 행복하게 만들어 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의 모험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는 그 끈질긴 질문,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요?혹은 왜 당신은 나를 버렸나요?

그러나 곧 이 질문은 왜 나를 조금만 사랑하나요?란 질문으로 바뀐다. 나는 지나침 또는 충분치 않은 것의 체제하에 살고 있기에 일치를 열망하며, 전부가 아닌 것은 내게 모두 인색해 보인다. 혹은 나는 유명론자이기에, 나를 사랑한다고 왜 당신은 말하지 않으세요?라고 말한다.

사실인즉 엄청난 역설이긴 하지만, 나는 결코 내가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내가 욕망하는 것을 환각한다. 그리하여 어느 날인가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다.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실은 사랑받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이다.


절제된 도취 347

사랑하는 사람의 한결같은 생각은 “그 사람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내게 줄 의무가 있다”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겁이 난 나는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 생각을 되씹으며, 이제부터는 그 사람의 아무것도 더이상 소유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런데 만약 이 비소유의 의지가 어떤 전략적인 생각이라면? 만약 내가 그 사람을 포기하는 척하면서 여전히 그를 정복하려 한다면? 그를 보다 확실하게 소유하기 위해서 내가 사라진다면?

(마지막 함정, 나는 모든 소유의 의지를 포기하면서 내가 남기게 될 나의 그 멋있는 이미지에 열광하며 황홀해한다.)

비소유의 의지를 소유하지 않으며, 오는 것을 오도록 내버려두며, 가는 것을 가도록 내버려두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물리치지 아니하며, 받되 보존하지 않으며, 만들되 제 것으로 하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는 사랑해요라는 말이 떠오르지만, 나는 그 말을 입 안에 가두어 발화하지 않는다. 나는 더이상 나의 그 사람이 아닌, 또는 아직은 나의 그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침묵 속에 말한다.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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