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내게 하루에 10개의 행운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등굣길에 종종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을 마주치곤 했다. 그 어르신에게 매일 내게 할당된 10개의 행운 중 3개를 나눠드렸다. 엉뚱한 공상이었지만 그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는 어린 마음이었다.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챙겨다 드리기도 했고, 안 읽는 책들은 몰래 가방에 챙겨두었다가 리어카에 싣고 오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저 먼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보다 쪽방촌의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욱신대고 불편했다.
성인이 되고 월급을 받기 시작한 2020년 겨울, 독거노인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한 달에 5만 원. 결연 후원이었기에 내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낼 수 있는 금액으로 정했다.
얼마 뒤 회사로 우편이 도착했다. “후원자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라는 형식적인 문구와 함께 결연을 맺게 된 어르신의 프로필이 담겨있었다. 내가 후원하게 된 어르신은 쪽방촌에 살고 계신 83세 할아버지였다.
내게 5만 원은 어떤 의미 일까? 아무 생각 없이 친구와 먹는 한 끼 식사값, 가디건 하나 가격도 되지 않는다. 5만 원이 없다고 내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까?아주 조금의 불편함, 아니 그마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은 돈이다.
그럼 반대로 어르신들에게 5만 원은 어떤 의미일까. 쌀이 10킬로, 휴지 30롤, 계란 2판을 사고도 쪽방의 관리비를 낼 수 있는 돈이다.
내 나름의 기부 방식은 늘 내는 정기 후원과 함께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특별 후원금이다. 내 생일이나 엄마의 생일을 기념한다. 성과급을 받거나 큰돈이 들어오면 그 행복을 함께 나누고자 얼마를 기부하기도 한다. 적고 보니 십일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부를 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고자 함이다.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모른 척 지나치기는 내 마음이 불편해서, 순전히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항상 기가 막힌 타이밍에 후원처에서 오는 감사 편지를 받았다. 반년에 한 번 오는 우편인데, 어쩐지 항상 내가 지치고 힘든 날에 우편이 도착했다. “보내주신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후원자님의 삶에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넘치게 행복한 사람은 늘 주변에 행복을 나눠주려 두리번 대고 있다. 엄청 돈이 많은 사람도 부럽고, 직업이 좋은 사람도 부럽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부러운 건 이런 행복이 넘치는 사람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관용’과 ‘나눔’. 너무 아득바득 살고 싶지 않다. 주변에 적당히 베풀고, 별 일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넘어가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흔쾌히 돕고 싶다.
사실, 나누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찬다. 작은 선물을 주거나, 편지를 쓰거나, 별 것 아닌 날을 기념하기를 좋아한다. 전 직장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파티해요 파티!”를 외쳤다. 선물을 준비할 때에도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편지를 써도 편지를 전달하기까지 마음이 두근댄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기부도 이런 작은 파티나 선물과 같다. 혹시 또 누가 알까? 누군가는 내게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수없이 보내고 있을지!
일단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오늘 내 행운 중 3개를 보냈으니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