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다. 신년에 펼친 다이어리는 85페이지를 넘어간다. 어떤 날은 안 썼고, 또 어떤 날은 세네 장을 썼다. 기록전문가로 불리는 김익환 작가가 기록은 꺼내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신신당부했기에, 두 달간의 관심사를 모아봤다.
롱블랙
새해부터 롱블랙을 구독하고 있다. 월 4900원에 날마다 질 좋은 글을 배달해 주는 서비스다. 뭐 실망스러운 날도 있지만,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인사이트 있는 글이 올라오기에 만족스럽다. 롱블랙에서 스크랩한 문장을 몇 가지 공유해 본다.
계속 달려야 할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대형 트럭 가득히 있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작은 이유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단련하는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갈망할 기회가 필요하다.
운명은 삶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운명의 힘으로 대항할 수 없는 것은 숙명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마음이며, 인생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없앤 페이퍼들은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 남아있다.(...) 최고의 보상은 소설을 쓰는 동안 바뀐 당신이다. 당신은 이미 그 보상을 받았으며, 이제 아무도 그것을 빼앗을 수도 보탤 수도 없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는 늘 제가 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관중석에 앉아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 디마지오
소중하게 만드신 자료 잘 숙지하였습니다.
러브레터보다도 더 설레었던 인사말이다. 담당임원분께 메일로 자료를 보내드렸는데, 저렇게 답장이 왔다. 보내드렸던 자료를 다시 열어봤다. 맞네. 나 진짜 소중하게 만들었네. 어떻게 아셨지. 누구에게나 보내는 상투적인 문구일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종일 행복했다.
종종 내가 꺼내 쓰는 말들이 있다. 고맙습니다, 안전 운전하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엄청 멋져요! 음식이 참 맛있어요, 조명이 따뜻해요, 안목이 좋으시네요, 엄청 신경 쓰신 것 같아요. 사실 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대화법
앞서 말했듯,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상대에게 한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마음을 준다. 내 속도로, 화법으로, 방식으로.
친한 대리님은 늘 대화를 잘하려면,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면, 상대의 화법에 맞게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가 돌려 말한다면 나도 돌려 말하고, 거리를 두면 그만큼 나도 거리를 두고, 표현에 인색하다면 나도 아끼는 식이다. 당시에는 이해도 적용도 잘 안 됐다. 사실 좀 유치하다고도 생각했다. 상대의 성의나 마음을 재는 것 같잖아.
요새 들어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대화를 실패했을 때 마음 한편이 시큰한 느낌이 무섭다. 으악. 정말 싫네. 다시 말하지만 마음이 아프단 말은 진짜다. 역시 대리님은 현명하다.
뛰고 걷고 오르고
산책은 여전히 즐겁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산책만 한 게 없다. 엉덩이가 뻐근해질 때까지 무작정 걷고 뛴다. 그날 밤은 잠도 잘 온다. 요새는 계단도 오른다. 지하 1층부터 26층까지 오르는데 8분 55초가 걸렸다. 손과 발이 바쁠 때에 마음이 제일 편안하다.
내 머리는 구글 데이터센터만큼이나 24시간 팽팽 돌고 있어서, 냉각수가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서 손을 바쁘게 움직이던지, 용건이 있는 양 발을 바쁘게 움직이던지. 그래야 잡생각이 없어진다. 어릴 때 읽었던 좀머 씨 이야기 속 좀머 씨가 나 같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결말은 충격적이었지만)
Let them, Let me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놓아주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그중에서도 타인의 말과 행동에 신경 쓰기를 멈추고, 외부의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말자.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Let them theory다.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은 전부 같은 고민을 하고 사나 보다.
나 역시 올해 들어 애쓰지 않기로 마음의 방향을 결정하고, 여러 부분에서 편해졌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또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에너지를 더 이상 쏟지 않으려 노력하고, 내 감정과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와, 언제나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변화에 걸리는 시간에 대한 인내심을,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다른 어려움을 가진 자들에 대한 너그러움을, 그리고 매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이다. 나도 오래도록 빌려 쓸 말이다.
최근 읽었던 책에서 마음에 남은 문장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이 일어났다. -새의 선물
지나간 불행으로 슬퍼하는 건, 더 큰 불행을 초래하는 것. -오셀로
네가 외적인 일들로 고통받는다면, 너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일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네 자신의 판단이다. 즉시 그 판단을 멈춰 고통을 없앨 힘이 네 안에 있다. -명상록
기록이 주는 진짜 효용은 기억이 아니라 집중이다. -거인의 노트
악마와 춤을 추면 악마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한다. (숏츠에서 본듯)
사람을 안 만나니 책을 너무 많이 읽는다. 다른 취미를 찾아보는 중이다.
포옹
문득 궁금하다. 다들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는지. 일단 나는 사랑받고 싶다. 어젯밤 침대에 기대어 중국어가 왜 재밌는지 열심히 설명하는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하자 아빠가 벌떡 일어나 폭 안아줬다. 순간 눈물이 울컥 났다.(생리 전 아니다. 오해 마시라.) 이야기를 마치자 아빠가 문 앞에서 한 번을 더 안아줬다. 아빠 고마워! 세상에 아빠만큼 망설이지 않고 나를 폭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종종 꾸는 꿈이 있다. 몇 개가 있는데 하나는 땅바닥에 누워 미피 서랍장을 올려다보는 꿈이고, 또 하나는 내 방이 온통 숲으로 가득 차는 꿈인데 이건 너무나 악몽이라 꾸고 싶지 않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꿈은 늑대가 나를 품어주는 꿈이다. 내가 작은 하얀 알에 들어있고, 어둡고 차가운 흙 속에 얕게 묻혀 있다. 그런데 춥지 않다. 고개를 들어보면 아주 따뜻하고 보송한 하얀 털을 가진, 엄청 커다란 늑대가 알을 포근히 품어주고 있다. 동화책 속 한 장면으로 줌 아웃이 되는데, 꿀 때마다 행복하고 묘하게 슬퍼서 이 꿈을 생각하면 눈물이 조금 맺힌다. 그 하얀 늑대는 다른 꿈에도 종종 나온다. 사실 은색일 수도 있다. 반짝거려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막다른 골목에서 갑자기 나타나 한밤 중에도 털을 반짝이며 나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나는 운명을 믿어서, 나와 영원히 사랑에 빠질 남자는 저 늑대가 아닐까 상상하곤 한다.(왜인지 모르겠지만 흰색 아우디나 제네시스를 타고 다닐 것 같다.) 그 사람과 아주 따뜻한 포옹을 해보면 저 늑대가 나를 품어주던 느낌이 날 것만 같다.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들에 대해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내가 한 말은 아니고, 어린 왕자의 한 대목이다. 종종 커플들을 보면 묘하게 입매가 닮아있는 걸 볼 수 있다. 그걸 두고 하관 운명설이라고 부른다. 일리가 있는 말인가 싶어 찾아보니 사랑하는 사람과 있다 보면 상대의 표정을 세심히 관찰하고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된다나 뭐라나.
하관까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에는 공감한다. 앞 대목의 상대 맞춤형 대화법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겠지. 또 우리는 서로를 길들이면서 닮아간다. 사랑하는 이들은 서로를 각자의 방식으로 길들이니까. 내가 꼭 일본의 초등학생 같다던 사람과 있을 때의 나는 정말 아이가 되었다. 상대는 칭찬으로 나의 아이 같은 면을 발굴해 냈고, 나는 그 시선에 부응하고 싶었다.
물론, 다른 식으로 길들여지는 경우가 더 많다. 무반응, 아니면 지적 같은 거. 안타깝게도 나는 지적을 받으면 심장이 쪼그라든다. (계속 쪼그라들면 결국 푸룬처럼 바싹 말라버릴까 무섭다.) 여자는 직감이 발달해 남자보다 비언어적 표현을 잘 캐치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눈에서 미처 목구멍을 지나지 못한 말을 읽어버린다. 눈 맞춤을 피해야 한다. 이 역시 길들여짐이다.
예전의 나는 참 솔직했다. 서운하면 울었고, 미우면 심술을 부렸고, 고마우면 방방 뛰었다. 예전엔 그랬는데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어쩔 줄을 몰라하다 결국에는 어쩌지 않아 버린다. 이 글도 임시저장에 잡혀 들어갈 것 같다. 아니야. 오늘은 그냥 올려야겠다.
소원
생일 케이크에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을 빌었는지가 궁금해 꼭 물어본다. 눈 꼭 감고 간절히 바랄 한 가지. 궁금하잖아! 최근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들었다. 가족의 안녕이나 로또 당첨 따위의 것들과 비교하기 미안할 만큼 간절해 보였다. 그렇구나. 영 이상한 마음을 고쳐 먹고 나도 함께 그 소원을 빌기로 한다. 하늘은 내 말을 더 잘 들어주거든.
내 소원은 뭐였지? 기억나는 소원이랄 게 없다. 눈을 꼭 감고 소망한 지가 꽤 오래다. 생일까지 간절히 바랄 일이 생길까? 간절하기로 따지자면 래미안 퍼스티지 44평형 이런 건데, 이런 걸 소원이라고 빌어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호구 화법 탈출하기
Never be so kind, you forget to be clever.
Never be so clever, you forget to be kind.
사회생활을 하면 내 바운더리를 시험당하는 일이 많다. 작은 무례를 견디면 더 큰 무례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누가 말했다. 내게 범해지는 모욕은, 더 큰 모욕을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라고. 지금껏 어리니까, 내가 모르니까 하고 넘겼던 일들이 쌓이고 쌓여 이젠 못 봐줄 지경이다. 그래서 말하는 방법부터 고쳐먹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살짝, 뭔가', '~같아요' 이런 확신 없는 말부터 하지 않아야겠다. 이것도 Let them, Let me.
글
글을 쓰려고 글을 쓰는 건지, 생각을 정리하려고 글을 쓰는 건지, 생각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건지, 아니면 그냥 쓰는 건지. 아니면 전부 다인지 몰라서 또 글을 쓴다. 몇 년째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글을 쓰는데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은 잘 모르겠다. 인풋을 때려 넣는데 비해, 아웃풋은 영 시원찮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몰랐던 나를 자주 만난다. 백지 앞에서의 나는 이것도 저것도 좋은 두루뭉술한 누구이지만, 두어 시간 글을 적어낸 후에는 이러저러한 생각을 가진 내가 되어 있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책상에 앉았다는 건, 머리가 복잡해 터지기 직전이거나 너무 차분해서 불안하거나 글 쓰는 법을 까먹을까 걱정이 될 때다. 마지막 문단을 쓰는 지금은 뒷통수와 이마가 차갑게 식었고, 시간은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고, 언니는 언제 잘 지를 세 번째 묻고 있다. 아마추어여도 글을 쓰는 방식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별다르지 않다. 초고를 쓰고 개고하고 음독하여 퇴고하고 다 잘라낸다. 이 과정에서 내 것이 아닌 생각을, 또 나를 설명하려고 붙여둔 쓸데 없는 말들도 잘라낸다.
슬프게도, 아니면 다행히도 이해받기를 포기하려고 노력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내 생각은 물론이고 내가 무얼 먹었다거나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다거나 하는 것들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되려 왜 그것을 먹었냐라던가, 왜 그런 일이 생기게 두었냐 하는 사람들만 있다.(나 좀 Let them 해주시라) 내가 블로그에 가장 공 들여 쓰는 것은 일상 포스팅인데 반해, 유입되는 주 독자는 쌈밥의 쌈을 케일로 할지 깻잎으로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인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나만의 일이 아니라 슬플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여기 앉아 나의 인터뷰어이자 인터뷰이로서 최선을 다 해봤다. 요새 자주 듣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에 마무리를 맡겨본다.
검정치마의 Plain Jane이다. 들어보세요. Good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