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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Dec 26. 2023

암환자를 위해 암환자가 쓴 책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 서문 소개

1년 만에 다시 찾은 대학병원.


대장암 3기 발병 이후 6년째, 정기검진을 온다.

 한동안 입원도 하고, 6년간 몇 개월 마다 들린 곳이지만, 병원은 늘 낯설다. 


묘하게 오늘 검진일은 6년 전 내가 수술을 받은 날이다. 검진을 받는 내내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시간을 힘겹게 기록한 책과 함께.


책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는 수술 이후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내가 쓴 책이다. 


한동안은 녹음만 하다가, 항암제 약발이 사라진 후 손에 감각이 되돌아온 뒤엔 어렵게 타이핑을 하며 썼다.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숨길 것도 아닌 투병 스토리. 


치료에 전념할 일인데, 굳이 책을 쓴 이유는 '나처럼 힘든 환자들'을 위해 썼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내가 쓴 책 <아프지만 책을 읽었습니다>의 서문으로 대신할까 한다. 

주위에 나와 같이 힘들어하는 환자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기를...





<서문>



‘거짓말처럼 난, 암환자가 되었다.’


 이 한 문장이 나를 여기까 지 데리고 왔다. 암환자가 된 그날 밤, 난 잠들지 못했다. 한동안 뒤척이던 아내의 숨이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실로 나온 나는 방향을 모르고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얼마를 어떻게 살든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이후 의 모든 순간을, 감정을 기억하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특별한 순간은 모두 글로 남기고 싶은 글쟁이의 못된 버릇 때문인지 모른다. 그 렇게 시작된 이 글들은 오늘까지 나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암환자가 되는 건 예고가 없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찾아왔 다. 암이란 놈은 내가 뒤늦게 확인해서 알았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내 몸속에서 똬리를 틀고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암 발병을 알았을 때 난 심하게 절망했다. 암이 발병한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자 나의 무책임성에 좌절할 만큼 부끄 러웠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인생이라는 무대의 뒤편으로 내던져버렸다. 요즘은 흔한 말이 되어버린 ‘자.가.격.리’를 해버 린 것이다. 암환자가 된 뒤 줄곧 나를 괴롭힌 건 바로 ‘외로움’ 이었다. 암환자가 된다는 건 죽을 때까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하며 ‘철저하게 혼자’가 됨을 뜻한다. 이런 암환자의 고독은, 겪어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모르는 ‘절대고독’이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온전히 병자만이 느끼는 고통 속 고독,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사회 속 고독,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고독은, 온전히 나 만의 것이다. 환자복을 입는 순간, 고독감이 훅~ 하고 내게 들어왔다. 그것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인생이 밝았을 때 

세계는 친구로 가득했다.


지금 안개가 자욱하니 

이제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피할 수도 없이

살며시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떼어놓는 

이 어둠을 모르는 자는

정말로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산다는 것은 고독이다. 

아무도 다른 이를 알지 못한다. 

모두가 외톨이다.



췌장암을 앓던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 의 차를 운전해 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돈을 벌어줄 사람 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 대신 아파줄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고통을 어루만지고 다스릴 자는 나밖에 없다. 

하지만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면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나는 책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벌건 대낮이든 신새벽이든 외롭고 고통스럽고 힘겨울 때마다 읽은 책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줬다. 독서는 죽음의 벼랑앞에 홀로 서 있는 외로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자의 외로움을 꿋꿋이 견뎌내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병을 안 후 읽은 책은, 그냥 책이 아니었다. 내게 남은 삶을 더 알차게 만들어줄 지도와 나침반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웃었다, 이해했다, 사과하고 용서했다.


투병의 괴로움을 아들 을 보며 잊었고, 발병의 우울함은 친구와 주위 사람들을 통해 해소했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까? 그리 고 어떻게 죽을까?’ 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처음 이 책을 써볼까 했을 때 ‘암환자가 그게 벼슬도 아니고 훈장도 아닌데 무슨 책이냐’는 생각도 했다. 아내도 처음엔 극구 말렸다. ‘유명인도 아닌 사람이 암에 걸린 사실을 뭐 하려고 굳이 알리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병에 걸리지 않았고 친지가 병에 걸려서 나을 때 즈음 그걸 글로 알리려 한다면 나역시 말렸을지도 모른다. 병은, 특히 암은 지극히 사적이고, 비 밀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자랑 거리는 아니지 않는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게다가 돈 많은 부 자들이 돈을 버느라 자신이 돈 번 이야기를 쓸 수 없듯이 암환자들은 병과 싸우느라, 자신을 지키느라 말할 여지가 없다. 다행히 항암을 마쳤다 하더라도 항암 동안 쏟아부은 기력을 회복하느라 누군가에게 자신의 병을 이야기할 여지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내가 환자가 되어 절실히 느낀 점은 ‘암환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었다. 병과 매일 싸우며 버티기도 힘든데, 암환자로 보내는 생활은 더욱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저렇게 용케 잘 견뎌내며 지냈던 나날을 기록해 그 경험을 공 유하고 싶었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암환자가 투병하고 있는 하루하루 도 소중한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재 수가 있든 없든, 그 아픈 정도가 심하든 덜하든 상관없이 암이 라는 두려운 병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이 끝 난 건 아니란 점을 내 생활을 통해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병상에 누워 일어날 수 있든 없든, 먹을 수 있든 없든, 걸을 수 있든 없든 간에…, 환자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인생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나는 현재 항암치료 이후 3개월마다 추적검 사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 쉽게 말해 여전히 전이와 재발의 가능성을 갖고 매일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아프면 돈도 명예도 부질없다. 욕심도 욕정도 허망하다. 모두 해 떨어면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모래밭의 성 같은 것이다. 마지막을 경험해 봐서 하는 말인데, 최소한 “아, 돈이나 더 벌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절 대 들지 않았다. 부자라고 열 끼를 먹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는다 해도 내 몸뚱이는 내일이면 씻어야 냄새가 안 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난 행복한 사람인 거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메멘토 모리(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 

이 둘의 상관관계는 메멘토 모리를 먼저 알아야 카르페 디엠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즉 죽음을 기억해야 오늘이 소 중해진다. 사람들은 마치 불멸할 것처럼 오늘의 순간을 허비 하며 살지만, 10분 후 미래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아니던 가. 비록 암환자가 되었더라도 제 수명을 다해서 살다 죽을 수 도 있고, 세상에 넘쳐나는 사건사고로 멀쩡하던 젊은이가 내일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죽을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암환자에게 ‘회복’이란 암에 걸리기 전과 같은 건강한 상태 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 몸에 암이 발병한 이상 내 삶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난 몸으로 알 것 같다. 그렇지 만 난 그 현실에 슬퍼하기보다는 ‘내 속에 살고 있는 암을 기억’하며 더 잘 살아낼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발병 전 보다 훨씬 더 알차고 유의미하게 살아낼 생각이다. 내일과 미래를 위해 살기보다 마치 오늘만 살고 마는 사람처럼 지금 시 간, 당장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만끽하며 채워나갈 작정이다. 매일을 ‘오늘만 살고 마는 사람’처럼 새롭게 태어난 듯 살 것이다.


나는 암환자들의 고독에 한 뼘의 어깨를 내어줄 친구가 되 고 싶어 이 글을 썼다. 

시간이 날 때마다, 기억이 날 때마다 시 간의 조각들을, 생각의 비늘들을 수기로, 녹음으로 담아서 다시 글로 써내렸다. 깊은 한숨을 쉬고, 애써 입술을 깨물며 흐 느끼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항암주사 때문에 어깨와 팔이 거의 굳은 상태에서도, 손저림으로 감각이 없는 상태에 서도 생각을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읽고 기록한 덕분에 힘든 투병과 항암을 이겼는지도 모른다.


투병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통증이다. 그런데 투병 생활 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바로 투병 중 매 순간 새롭게 겪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 점에서 이 글이 환자에게는 동병상련의 공감을, 가족과 지인 에게는 환자의 마음을 대신하는 조언이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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