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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May 13. 2024

말 잘 하는 초등  아이, 왜 글은 못 쓰죠?

세상에서 가장 쉬운 초등독서 로드맵(21)

“글쓰기가 싫은 게 아니라 힘들어요!”



여기까지 읽었다면 ‘책을 읽으면 독서록을 써서 느낌과 생각을 남겨야 제대로 읽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남죠. ‘내 아이가 독서록을 어떻게 써야 잘 쓰고, 꾸준히 쓸 수 있지?’ 하는 글쓰기 방법인데요, 이제부터 아이들이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려 줄게요. 그러려면 아이들이 글쓰기를 왜 싫어하는지부터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말은 잘 하는데 글을 왜 이렇게 못 쓰지?


앞선 글에서 초등 저학년 때에 연필을 바르게 쥐고 쓰는 습관을 익히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어요. 학업성적에 있어서는 초중고교 모두 서술형 문제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어릴 때 일찍 글자를 바르고 예쁘게 쓰는 습관을 익힌다면 평가자로부터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초등 저학년이 연필을 바르게 쥐고 쓰는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에게 받아쓰기와 일기, 독서록 등을 숙제로 내주는 등 쓰는 활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등 저학년이 학교에서 글을 쓸 때는 대부분 큼지막한 정사각형 격자로 된 공책을 쓰는데요, 넓은 공간에 한 글자 한 글자 또박 또박 바르게 써 가면서 학습과 동시에 글을 쓰는 올바른 순서와 알맞은 모양으로 바른 글씨를 쓰는 연습을 충분히 익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막 글을 배우는 시기라서 글을 쓸 내용도 많지 않아서 사각 격자 공책이 큰 도움이 됩니다. 독서록를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 1학년 때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격자 독서록 공책에 독서록을 쓰고, 2학년 때에는 주로 격자 독서록 공책에 독서록을 쓰는데요,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글쓰기가 초등 중학년이 되면 사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pixabay



부모의 세대와는 다르게 요즘 초등학생들은 연필을 쥐고 글을 쓰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싫어하는 세대입니다. 우선 아이들이 평소에 연필로 직접 글씨를 쓰는 것보다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자판을 통해 글을 입력하는 게 더 익숙하거든요. 그래서 연필로 글을 쓰는 것을 꺼려 하다 보니 악필이 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해야 할 초등 중학년인 초등 3~4학년이 되면 그런 모습이 더 두드러지는데요, 숙제를 한다고 해도 마지못해 쓰는 글이다 보니 내용도 부실하고, 글씨체도 엉망입니다. 읽은 책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쓰는 독서록은 더욱 그렇습니다. 


제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되어 책을 매주 한두 권씩 꾸준히 읽는 것 같고, 책을 읽은 뒤에 저와 함께 책 읽은 느낌을 나누는 것을 보면 책을 잘 읽은 것 같은데 막상 독서록을 쓴 걸 보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습니다. 내용도 부실하기 짝이 없고 문법도 맞지 않는가 하면 성의 없이 쓴 문장으로 가득했습니다. 

아이에게 이처럼 ‘부실한 독서록’에 대해 뭔가 말하면 기껏 애를 써서 독서록을 썼는데 지적을 받으면 혹시라도 “나, 독서록 안 쓸래.” 라고 말할까봐 대신 아이가 독서록을 쓸 때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정확히 한 달, 그러니까 제 아이가 네 편의 독서록을 쓰는 것을 보고 나서 저는 내 아이가 왜 그렇게 부실하게 독서록을 쓰는지,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글쓰기를 왜 그렇게 싫어한다고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글을 쓰는 과정에 있었어요.



@pixabay



초등 중학년에게 연필로 글쓰기는 그야말로 고역


아이가 3학년이던 5월 어느 일요일 저녁 주말 동안 계속 해서 미루고 있는 독서록 숙제 앞에서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물었어요. 


“독서록 쓰기가 그렇게 싫어?”

“응, 아주 많이.”

“어떤 점이 그렇게 싫은데?”

“음....”


생각을 하는 듯 눈동자를 위로 뜨고 잠시 고민하던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어요. 


“책을 읽고 나서 쓰고 싶은 말이 있긴 한데, 연필로 글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귀찮아서 대충 줄여서 쓰거든. 숙제라서 억지로 참아가면서 꾸역꾸역 쓰고 있는데...내가 이러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전혀 생각조자 하지 못했던 아이의 대답에 저는 몹시 당황했어요. 그리고 초등 저학년까지는 짧고 서툴지만 독서록을 쓰던 아이가 3학년이 되면서부터 독서록을 쓸 때 마다 쓰고 지우기를 거듭하며 짜증을 내던 장면이 순간 휙 하고 지나갔어요. 


‘앗 차!’ 


어쩌면 ‘아이들이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 글 쓰는 게 싫어서 안 쓰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지금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당사자인 아이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아이를 바라보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느꼈습니다. 그 후로 전 아이의 관점에서 ‘책읽기와 독서록 쓰기’를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그 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ixabay



소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태어났다’고 평가받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아날로그 방식, 즉 연필로 글을 쓴다는 건 그 자체로 너무나 낯설고 힘든 일이더군요 초등 저학년 때에는 연필로 글쓰기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학습 차원에서 힘들어도 익혀야 한다지만 학습양도 많아지고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해야 할 초등 중학년인 3~4학년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저학년 때 보다 글밥이 훨씬 더 많아지고 두꺼워진 책을 읽으면 당연히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과 느낌도 많고 덩달아 독서록에 글을 써야 할 내용도 많아지는 거에요. 문제는 여기에 있었어요.



@pixabay



저학년 때는 쓰는 글이 짧아서 글자를 틀리게 쓰면 지우개로 바로 바로 지우고 고치면서 몇 자 정도 쓸 수 있어요. 하지만 글자에 익숙해진 중학년 이상이 되면 틀린 글자 수는 줄어든 반면 내가 쓴 글을 새로 고쳐 써야 할 내용이 저학년 때 보다 훨씬 많아집니다. 맥락에 맞게 써야 하기 때문에 한두 문장을 지우거나 한 문단 전체를 고쳐야 하는 일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글을 쓰다가 지우개로 지우고 거기에 덧대어 또 다시 글을 쓰기가 귀찮고 어려웠던 거에요. 게다가 아이들 손은 정교하지 못해서 지우개로 지워도 깨끗하게 지워지지도 않고, 자칫 힘이라도 세게 주면 종이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새로운 페이지에 다시 써야 하죠.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 보면 아이들이 글쓰기가 귀찮아져서 글 내용에 충실하기보다는 ‘에이, 쓰고 싶은 건 많지만 이 정도에서 그만 쓰자’는 식으로 서둘러 독서록을 마무리해 버립니다. 결국 연필로 글쓰기가 힘들어서 아이가 충분히 만족할 만큼의 글을 쓰지 못하는 거죠.


@pixabay



지우개로 많이 지워야 좋은 글이 된다는 아이러니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저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아이의 독서록 숙제를 보면서 ‘이렇게 쓰기 싫어서 대충 쓰는 독서록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인 제가 내 아이에게 ‘독서록 쓰기가 그렇게 싫으면 그만둬라’ 하고 말할 수는 없었어요. ‘책을 읽고 배우고 느낀 소감’을 밝히는 독서록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저니까요. 


문제는 책읽기와 독서록 쓰기를 제대로 익혀야 할 시기는 초등학교 뿐이라는 거에요.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 책읽기조차 힘들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연필로 독서록 쓰기’자체를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일종의 딜레마에 빠졌어요. 이 시기는 아이가 연필로 독서록 쓰기를 잘 배워야 하는 시기인 반면 어느 정도 읽을 만한 수준의 독서록을 쓰려면 퇴고, 즉 아이가 그토록 귀찮아하는 글 고쳐쓰기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다. 글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썼다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작가라 할지라도 단 한 번에 훌륭한 글을 쓸 수는 없어요. 글쓰기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작가라면 누구든 글을 쓴 뒤에 고쳐 쓰고 또 고쳐 쓰면서 자신이 쓴 글을 다듬습니다. 


세계적인 소설가 헤밍웨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내 초고(처음 쓴 글)는 쓰레기다’라고 말한 바 있어요.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솜씨를 지닌 헤밍웨이조차도 자신이 쓴 처음 글은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엉성하기 짝이 없다고 고백한 거에요. 작가라면 누구나 ‘글을 얼마나 많이 고쳐 썼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는 말에 동의할 겁니다. 어쩌면 훌륭한 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다른 작가보다 더 많이 고쳐쓰기를 한 작가인지도 몰라요. 글을 고치면 고칠수록 문장이 훌륭해지거든요. 



사진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원고를 읽고 있다. / 출처 - 경향자료



작가들의 글 쓰는 과정은 대충 이렇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생각한 것을 놓칠새라 서둘러 글로 내려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글을 쓰다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써 놓은 글을 읽어보면서 어색한 부분은 고치고, 부족한 부분은 덧대기도 합니다. 이 지루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비로소 읽을 만한 글이 됩니다. 


작가들이 힘들어하고 좌절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고쳐쓰기’에요. ‘몇 번 고쳐 쓰면 된다’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힘들여 쓴 글을 더 좋은 글로 만들기 위해 새로 고쳐 쓰는 것만큼 고된 일이 또 없으니까요. ‘잘 쓴 글’은 정답이 없고 끝없이 고치고 또 고쳐야 하니까요. 


옛날 손으로 글을 쓴 작가들은(조정래 선생이나, 김훈 선생처럼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쓰는 작가들은 존재합니다. 이 분들은 몸으로 글을 쓴다고 해서 ‘육필작가’라고도 부르죠) 글을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개로 지우고 고쳐 쓰거나 글을 쓰던 원고지를 찢어버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나면 쓰다 만 원고지뭉치가 책상 바닥에 수북했다고 합니다. 타자기로 글을 쓰는 작가는 글을 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고용지를 찢고 새로운 종이를 타자기에 끼워넣고 다시 타이핑을 하거나 화이트 잉크로 덧대어 바르고 말린 후에 타이핑을 했어요. 작가들이 이럴진대 아이들이 연필로 독서록 쓰기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저는 그 때부터 아이가 좀 더 편하고 쉽게 독서록을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리고 그 방법은 의외로 쉽게 찾아 냈습니다. 효과는 놀라웠어요. 새로운 독서록 쓰기 방법에 익숙해질수록 독서록 쓰기에 대한 아이의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고, 한 페이지를 겨우 채우던 독서록은 두세 페이지를 훌쩍 넘을 만큼 늘어났어요. 물론 글솜씨도 놀라울 만큼 좋아졌죠. 이젠 써야 할 글이 너무 많아서 손가락이 아프다며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가 되었어요. 이 모든 것이 아이와 함께 고민하면서 찾아낸 ‘새로운 독서록 작성법’ 덕분이었어요.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기억하세요>>

내 아이도 글쓰기를 잘 하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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