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친구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매일 철학자를 만난다.
지난 해 부터 시작한 일인데,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이 시대의 대표적인 젊은 철학자로 잘 알려진 '라이언 홀리데이'가 그이 이다. 몇 해 전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애를 키우는 건 득도의 경지라야 해!'라는 책으로 만난 책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라이언의 책 <데일리 대드> 였다.
통독으로 1회독을 한 후 너무나 아쉬워서 매일 오전 일을 시작하기 전 온라인에 필사를 하고 글을 필사하면서 든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적었더랬다. 그 책의 내용은 어린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라이언이기에 자녀교육에 필요한 철학..이라고 하기에는 좀 뭐한, 정신무장 같은 것을 짧은 명문들을 소개하면서 적었는데, 나는 그것을 읽고 또 내 생각을 덧대어 온라인에 거의 매일 올려었다.
처음엔 '다 늙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맘도 들었지만, 한꼭지 글을 쓰고 나면 흩어졌던 집중력이 한데 모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는 시험공부를 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는데, 젊은 철학자의 글도 좋았지만, 수천년의 역사를 지닌 명문들이야말로 두고 두고 읽을 만한 것들이었다. 이 젊은 철학자는 자신을 두고 '스토아 철학자'라고 했다. 쇠털 같이 많은 날들 속을 살면서 오늘은 힘들고 괴롭지만 결국에는 이것들을 겪은 덕분에 나질 것이라는 생각이 이 철학의 핵심 정도 되겠다.
누가 뭐라 할 리 없는 나이를 살다 보면 '잔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런 잔소리를 '같잖은 치'들에게 듣고 싶지는 않은데, 천년을 넘게 이어온 금언들은 머리와 가슴에 새길만 하다. 무엇보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적잖은' 오늘날을 사는 내게, 그것들이 꼭 이 시대에 있는 것은 아니며, 나와 다른 인간들과 부대끼다 보면 겪게 되는 일상다반사임을 알게 되는데, 그걸 깨닫고 나면 하루를 살아내기가 좀 낫더라는 게 내 경험담이다. 이를테면, '이런 일은 나만 겪는 게 아니던데, 뭐. 옛날에도 그런 애들 많았대!' 라는 식이랄까?
여튼, 이렇듯 라이언을 통해 알게 된 스토아 철학에 흥미가 생겨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오늘 또 한 권을 들였다. 이번에는 스토아 철학이 수영을 만난 셈인데, 제목이 참으로 시원하다. <세네카씨, 오늘 수영장 물 온도는 좀 어때요?> 이다.
'배움은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인데, 600일 넘게 수영을 배운 저자가 자신의 관심사인 스토아 철학에 덧대어 세상을 바라본 책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인생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고 끝없는 길을 홀로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에 공감하고 있는데, 삶이란 게 저마다 '딱 죽지 않을 만큼' 엄청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주위에 많은 것 같지만 결국은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 점에서 이 책이 말하는 대로 수영은 인생을 닮았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죽을똥 살똥 되어야 수영을 그만 두는데, 정작 그 때는 몸이 풀려서 수영을 할 만 때라는 아이러니가 더해지기는 하지만, 수영장에서 수영 배우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까. '그렇기에 스토아 철학이 수영과 맥이 닿는가 보다.' 하는 생각에 냉큼 집어 들었다.
남이 스포츠를 익히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읽는 재미 끝에 '툭'하고 떨어지는 느낌 한덩어리는 다음 장을 또 다시 찾게 한다. '시험이 끝나면 수영이나 배워 볼까?' 하는 때 늦은 호기가 발동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출판사가 전하는 이 책의 소개글을 덧붙인다. 읽어보고 나처럼 땡기걸랑 읽어보기를. 아니, 꼭 읽기를. 뭔가 재미난 거, 아니 무엇이라도 얼른 도전하고 싶게 만드니까 말이다. -richboy
난생처음 수영을 배우며 몸으로 부딪쳐 깨우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을 담은 철학에세이다. 왜 수영장에서 철학을 생각했을까? 어째서 스토아 철학이었을까?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운동 삼아 시작한 수영. 그러나 첫 수업에서 저자는 묘한 감각에 휩싸인다. ‘마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듯하다.’ 우선 숨 쉬는 법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호흡은 수영에 있어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물속에서 제대로 호흡하지 못하면 물을 잘못 들이켜 고통을 겪게 되고, 자칫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영장에 있는 동안에는 온 신경을 오롯이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일’ ‘팔로 물을 젓고 발장구를 치는 일’에 기울여야 했다. 다른 생각은 감히 틈탈 수 없었다. 바로 그 고요한 진공 속으로 스토아 철학이 스며들었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통제하고 내면을 평정하게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덕목으로 여긴다. 어쩔 수 없는 외부 사건을 걱정하며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자기 의지와 선택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강조한다. 비단 수영뿐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가슴이 철렁해질 정도로 차가운 냉탕과 온몸이 익어버릴 듯 뜨거운 열탕을 하루에도 수차례 오가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그만큼 감정도 크게 널뛴다. 쉬이 분노하고 좌절하고 낙담한다. 그런 우리가 수영장에서 스토아 철학자를 만난다고 상상해보자. 입수 전 준비운동을 하며 그에게 말을 건다. “오늘 수영장 물 온도는 좀 어때요?” 한여름 수영장은 당장 뛰어들고 싶게 시원한 반면, 한겨울 수영장 물은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차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자라면 뭐라고 말할까?
이 책은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평정을 수영장에서 몸으로 체득하여 삶의 감각으로 되새겨가는 여정을 담았다. 스토아 철학을 수영과 접목하여 삶을 바라보는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철학이 아니라 ‘철학으로 사는 법’ ‘철학을 살아내는 삶’을 말하는 책이다. 반드시 수영이 아니라도 학업, 직장 생활, 인간관계 등 읽는 이의 일상에 바로 연결할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삶은 명확성과 결단력, 반복되는 훈련이 더해질 때 비로소 단순해진다. 그리고 단순함 속에서 우리는 평온과 가까워진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잠시 물속으로 들어가보라.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려보라. 아직,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할 수 있다.”
한겨울 새벽 수영은 언제나 고되다. 몸을 감싼 이불은 따뜻하고 폭신하여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떠올리며 천근만근 같은 몸을 일으킨다.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태어난 존재인가?”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하루, 너무도 피곤하여 ‘오늘은 수영장 가지 말까? 내일 가면 되잖아’ 갈등하는 마음을 세네카의 말로 다잡는다. “아무것도 미루지 말고, 매일 삶과 싸워라.” 수영장에 가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탈수기 다 썼어?” 초면에 반말하는 사람, 직원에게 갑질하는 사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참담하고, 배은망덕하고, 무례하고, 충성스럽지 않고, 거짓되고, 이기적인 사람을 오늘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나를 해치거나 악한 일에 연루시킬 수 없다. 따라서 나도 그들에게 증오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왜 철학책을 읽는가? 아무리 살아봐도 어렵고 매 순간 고민이 연속되는 삶을 좀 더 지혜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항상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온갖 핑계를 떨쳐내고 목표를 향해 꿋꿋이 걸어가는 비결이 뭘까?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지혜롭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를 위해서는 매일 스스로를 치열하게 단련해야 한다. 마치 물 위를 유유히 떠 가는 듯하지만 수면 아래서는 쉼 없이 발장구를 치고 있다는 호수 위 백조처럼. 저자는 수영을 잘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600일간 수영장 안팎에서 매일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휴가철 찾은 바닷가. 처음으로 물 위에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느낀 행복과 충만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회상한다. 결국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평정은 매일 삶을 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의 수영 실력은 서서히 좋아지고 깨달음도 깊어진다. 그 끝에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중간중간 힘과 의욕을 북돋아주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명언은 덤이다. 당장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생활 밀착형 철학’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철학’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대한민국 출판계의 지난 쇼펜하우어 열풍을 생각한다. 인생의 본질을 고통이라 본 쇼펜하우어 철학의 직설적인 현실 인식이 도리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사고 위로를 주었던 까닭이라고, 여러 사람이 분석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살면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스토아 철학은 주어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해보라고 제안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지금 실천할 수 있는 덕을 행하라고 권한다. 그로써 평정을 달성하라는 것이다. 수영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지금 당장 수영을 잘하고 싶다고 발을 동동 굴러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번 더 연습하는 것뿐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저 사람 또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내면의 평정을 지키는 것이다. 단호하면서도 단단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이 쇼펜하우어 열풍 이후 우리에게 남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배울수록 수영은 살아가는 일을 많이 닮았다. 또한 수영장은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을 배우기에 수영장만큼 좋은 공간도 드물다.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복잡하게 얽혀들던 생각이 멈춘다.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다가도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운해진다. 그 산뜻한 감각이 좋아서 수영을 계속하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영장은 “삶의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끊임없이 연결된 채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영만큼 “철저히 단절되는 경험”도 드물 것이다. “수영은 내 안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스토아 철학은 나를 다시 세우는 훈련이다. 삶은 명확성과 결단력, 반복되는 훈련이 더해질 때 비로소 단순해진다. 그리고 단순함 속에서 우리는 평온과 가까워진다.”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수영을 배우고 싶어진다. 적어도 수영을 배우듯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잠시 물속으로 들어가보라.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려보라. 아직, 우리는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