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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보이 richboy Oct 10. 2022

평론가는 하렘의 환관과 같다

리뷰어에서 작가가 된 이유

난 리뷰어 출신이다. 

책읽기가 좋아서, 무작정, 닥치는대로, 시시때때, 시도 때도 없이 대학 1학년 때부터 몇 년 동안을 읽었다. 


그 때는 스폰지 같았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던 내가 책장을 넘기는 그 모습이 신기하고, 

활자를 읽는 것들이 영상이 되어 내 머리에 떠도는 것도 신기하고,

책을 읽고 있노라고 말하는 내 자신이 신기해서 읽었기에 마치 물을 흡수하는 스폰지처럼 읽어내는 모든 것들이 내 머릿속에 담기는 것 같았다. 


좀 지나니 그물이 생겼다. 

이 책을 읽자니 읽었던 저 책의 내용이 겹치고

저 책을 읽노라니 쪼오기 있는 조 책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제법 많이 읽으니 책이 말을 걸었다. 

그래서 일까, 

이 책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저 책에는 주억거렸다. 

어떤 책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고, 저떤 책은 고개를 내졌게 했다. 


그러자 말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런데 저책은 왜 저러냐고,

나도 공감한다, 아니 내 생각은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뜬금없이 떠들 수는 없었다. 

그때는 유튜브도 없었으니까.

컴퓨터를 켜고 책에 대한 글을 썼다. 

그때는 블로그가 대세였으니까.


책 수천 권에 대해 글로 이야기했다. 

주로 좋다고 말했다. 

글쓴 책보다 족히 세 배는 더 읽었는데 

별로 였던 책에 대해 굳이 글쓰면서까지 공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만큼 좋은 책은 많았고 

책을 읽은 시간 못지 않게 글을 쓰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문장을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


아일랜드 작가 브랜던 비언이 한 말인데,


남의 책을 말하기에 굳은살이 붙을 즈음 만났던 글이라 

내겐 '씨티헌터의 사에바 료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1톤짜리 망치'같은 

위력이었다. 

창작을 평하기가 새로운 창작인가, 즉 여전히 글을 쓰고 있지만

남의 책을 말하기가 과연 내 글인가 싶었다.

우왕좌왕했다고 느꼈다면 답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꼭 누가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변화를 감지하면 기회는 절로 생긴다(감지력도 능력이겠지만).

어느 날 교보문고에서 내게 '남의 책을 이야기한 글'로 책을 만들자는 제안이 왔따. 

거절할 이유가 1도 없었다. 오케이! 몇 번의 수정과 편집 끝에 

<질문을 던져라 책이 답한다>가 2010년에 태어났다. 


여류 시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는 

"책을 출간하는 사람은 마음먹고 팬티를 내린 채 대중 앞에서 나서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하렘의 환관이었던 사람이 졸지에 환관들 앞에서 팬티를 내린 채 서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닌가, 하렘에서 매일 그 짓하는 사람인가.


아무튼,


그 후 열 두 해 동안 


책 몇 권을 더 쓰면서 팬티내리기를 몇 번 동안 거듭하고 있다. 



얼마 전 <행복한 부자 학교 아드 푸투룸> 2권을 탈고하고 출판사에 보냈다. 

"그 동안 수고하셨으니 좀 쉬세요."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네, 그래야죠."

대답했지만, 몇 시간 후 난 제목 아래 3권을 타이핑했다. 

또 다시 대중 앞에, 하렘의 환관들 앞에 팬티내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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