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해도 된다

NO라 말하지 못하는 직장인에게

by 리치레몬


제목을 쓰면서 스스로도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거절해도 된다'라니. 이런 말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불의를 참지 않으며 비합리적인 일에는 자신의 생각을 조목조목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똑부러진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본디 싫으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물러터진 성격일 뿐더러 - 결혼 후 남편이 나에 대해 가장 답답했던 점이라고 한다 - 좋은 게 좋다고 둥글둥글하게 사는 것을 지향했던 편이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하다면 만사 오케이일 것이나, 겉으로는 그렇게 말해놓고 속으로는 자신의 말과 대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돌아서서 부글부글 끓었던 경우가 많다. 타고난 성향이 남을 신경쓰며 나를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에 더하여, 본격적인 사회 생활인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그러한 삶의 스탠스는 쭉 지속되었다.


신입사원, 여성, 후배라는 상대적 약자 포지션이었다는 지난 시절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연차가 쌓이면서 고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후배에서 한참 윗 선배가 되면서 직장 생활이 좀더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달라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선배와 후배의 말과 기분에 신경쓰고, 이렇게 하면 누가 싫어할까, 저렇게 하면 어떤 사람에게 불리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눈치보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떤 중요한 이슈가 생겼을 때 내 의견을 정확히 말해야 하는 때가 점점 많아졌다. 이제는 팀 리더의 입장에서 모든 업무를 바라보고, 후배들에게 방향과 지침을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가 됐다. 팀 입장에서 의견을 내지 않으면 나의 팀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는 더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업무에 있어서 성과지향적인 사람이기에,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이건 못합니다'라거나 '이건 이래서 불가능합니다'라는 얘기를 거의 한 적이 없다. 그런 태도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 것은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가서 한 일은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도 좋은 결말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체험적 교훈 덕분이다.


꼭 내가 해도 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들기에 효율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없으며, 더불어 억지로 한 일 또한 그 퀄리티가 뛰어날 수 없기에, 핵심 과제와 덤으로 한 과제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거절해도 된다'라는 글을 쓰게된 것 같다. (긁적긁적)






나처럼 할 말을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 더불어 할 말을 하지 못해 속 끓었던 과거의 나와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은 나를 위해 최근 몇 년간 습득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거절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승낙이 어려운 상황과 이유를 예의바른 태도로 설명하고 가능한 대안을 얘기하며 거절하면, 상대방은 그리 기분나빠 하지 않는다. 설사 기분나빠 하더라도 최소한 억지로 끌려가 그 일을 하게 됐을 때보다는 나은 상황이 된다.


2.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했다면 좋겠다는 바람은 헛된 망상이다.

- 나를 좋아할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좋아하고, 나를 싫어할 사람 또한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싫어한다. 굳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려 너무 애쓰지 말자.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을만한 적당한 정도면 충분하다. 사실 누가 좋고 싫고와 관계없이 내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인 것이 직장인 라이프이다.


3. 마음도 건강한 나를 위해, 더불어 좋은 영향을 받을 주변 사람들과 직장을 위해

-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지나치게 긴장하고 조이는 생활을 오랫동안 감당하면 내 마음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감하게 NO라고 얘기해보자. 경험이 쌓이면 자신감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하는 동료들도 알게 모르게 느끼게 된다.






실질적으로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바로 직장 동료이다. 일이 힘든 건 참아도, 사람이 힘든 건 못 참는다는 얘기도 많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대처하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내 마음을 돌보면 그래도 훨씬 나아지는 것이 바로 직장 생활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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