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갑순이

제5화. 큰 거 안 바랜다. 서른 해만 같이 살자.

by 리치만

꼬마 갑순이와 함께 본격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반려견에 대한 지식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먹여야 할 음식과 먹이면 안 되는 음식들,

품종 특성과 성격까지 알아두어야 했다.


대전 집에서 지내는 수진이는 수영이가 알아서

케어해줬지만, 갑순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했기에, 그 무게가 컸다.


우선, 집 근처 동물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도보 5분 거리에 병원이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인자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고,

그 병원에는 다리 하나가 없는 진돗개 한 마리가

조용히 입원해 있었다.

유기견이라 들었다. 치료 후 키우는 중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오셔서 심장사상충 약만 먹이면 됩니다.”


병원에 갑순이를 등록하고 나니, 직원들도, 병원에 온 다른 견주들도 갑순이를 보며 “귀엽다”, “어머, 요크셔예요?” 하며 말을 건넸다.

이름을 말하면 어김없이 “그럼 갑돌이는 어디 갔어요?”라는 유쾌한 농담이 따라왔다.


갑순이와 함께 살며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엔 집에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늦게까지 카페에 있거나

지인과 술을 마시며 귀가를 미루곤 했다.

지금은 그 반대다. 볼일을 마치면 “어서 갑순이에게 가야지”하며 집으로 달려간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설 때면

갑순이는 작게 낑낑대며 문 앞까지 나와 운다.


“갑순아… 미안… 아빠가 돈을 벌어야 너랑 살 수 있어…”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며,

잠깐 담배를 피울 때면 휴대폰 속 갑순이 사진을 꺼내 본다.

그러다 해가 뜨면 기분이 좋아진다.

곧 갑순이를 볼 수 있으니까.


며칠, 몇 달 전 이별이나 퇴사로 인한 상처는 이제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내 삶은 점점 회복 되는듯 했다.


봄이 물러나려 할 무렵, 갑순이에게 은빛 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요크셔테리어는 어릴 땐 검은 털로 태어나 자라면서 은빛으로 바뀐다.

병원에서 미용까지 말끔히 마치고 나온 갑순이는

누가 봐도 요크셔테리어의 우아한 외모를 갖췄다.


나는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보냈다.

답장이 왔다.

“수진이 닮았다...”

정말로 닮았다. 하지만 내 눈엔 **갑순이가 훨씬 예뻐 보였다.**



그날도 병원에 갔다.

2010년 부터 다니고 있는 신경정신과 병원.


“강아지랑 같이 살다 보니 웃는 일도 많아졌어요. 많이 위안이 돼요.”


“그거 정말 좋아요. 지금 상태 너무 좋습니다. 이번엔 약을 조금 줄여볼까요?”


“…음, 조금만 더 있다가요. 준비되면 말씀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2주 뒤에 봬요.”




갑순이가 오고 나서, 나는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원장님도 알아봤고, 나 자신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약을 줄일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는 끊게 되겠지만, 그건 조금 더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


꼬마 갑순이는 어느덧 어엿한 성견이 되었다.

몸집은 자랐지만, 밝고 명랑한 성격은 여전했다.

그 웃는 얼굴만 봐도,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 새끼…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거냐…”


밤에 일을 나갔다가 아침에 돌아오는 생활에도, 갑순이는 이젠 잘 적응했다.

일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면, 안방에서 쏜살같이 달려나와

꼬리가 안 보일 정도로 흔들며 폴짝폴짝 뛴다.


어깨끈을 손에 들기만 해도,

산책 나가는 걸 알아채고, 기쁜 울음소리를 낸다.


산책을 나가면, 갑순이는 언제나 내 옆을 걷는다.

앞서 가지도, 뒤쳐지지도 않고, 꼭 내 보폭에 맞춰 걷는다.

걷다가도 자꾸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 눈빛에서 ”사랑해요“라는 말이 느껴진다.


갑순이는 어느덧 껌딱지처럼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내가 누워 있으면, 꼭 머리맡으로 와서 자리를 차지한다.

이러는 게 좋으면서도… 가끔은 조금 귀찮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나를 좋아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매일 감동스럽고, 또 고맙다.


여름과 가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갑순이와 함께한 시간은 그저 따뜻하고, 순하고, 고마웠다.

어느덧 겨울이 왔고, 연말이 지났다.


그리고 1월 3일.


1월 3일은 갑순이의 생일이다.

정확히 1년 전, 이 세상에 태어난 날.

그리고 나는, 그 아이의 삶에 들어가기 위해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날.


기념으로 시저와 소시지를 사왔다.

시저를 작은 케이크처럼 쌓고, 진심을 담아 생일을 축하해줬다.


갑순이는 그게 자기 생일인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간식이 한가득 놓여 있는 걸 보고선,

그냥 좋아서 껑충껑충 뛰며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말했다.


“갑순아. 태어난 지 1년 된 거 축하해.

아프지 말고… 우리 앞으로 딱 30년만 같이 살자.

큰 거 안 바란다.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