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꼬순내 진동한 털복숭이 젤리
갑순이와 나는 어느새 익숙한 일상 루틴이 생겼다.
밤 10시부터 오전 8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도착하면
8시 40분쯤. 집에 들어서자마자 샤워를 하고,
그다음은 항상 갑순이와 아침 산책이다.
1년이 넘도록 그렇게 다니다 보니, 우리 동네에도
갑순이를 알아보고 예뻐해 주는 분들이 생겼다.
그중 한 분이 바로 춘기 어르신이다. 연세는 지긋하지만 무척 정정하시고,
미술 교사로 일하다 퇴임하신 분이다.
자신도 비글을 10년 넘게 키우고 계셔서 그런지, 갑순이를 유난히 예뻐하신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어이 준혁이~”
갑순이는 어르신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든다. 꼬리는 거의 프로펠러 수준으로 돌아간다.
“어이구~ 갑순이는 볼 때마다 뭐가 이리 신날까, 허허~”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산책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내가 지내는 동네 CU편의점 앞을 지나치게 된다. 거기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시는 여사님이 계신데, 그분도 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다. 우리 갑순이를 정말 예뻐해 주신다. 편의점에서 파는 간식을 사서 나눠주기도 하신다.
“아휴 아주머니, 괜찮아요~”
“아니에요~ 갑순이가 예뻐서 그래요. 이거 우리 앵꽁이도 주려고 산 건데, 반 나누는 건데 뭘~”
그런 마음이 참 고맙다.
편의점에서는 종종 그날 찍은 갑순이 사진을 보며 웃는다.
누가 보면 편의점 일을 너무 안 하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손님이 많지 않다. 사장님도 자주 죽상을 하고 계실 정도다.
그래도 단골은 있다.
매일 새벽 6시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와 ‘맛밤’을 사가는 여자 손님. 처음엔 인사만 나눴는데, 어느 날 내가 갑순이 사진을 보고 있을 때 그녀가 말을 걸었다.
“어? 강아지 키우세요?”
“네, 이제 1년 됐는데… 눈을 뗄 수가 없네요. 하하.”
“어머, 저는 포메 키워요.”
“정말요? 강아지 사진 보여주실 수 있어요?”
그녀는 포메라니안 사진을 보여줬다. 장난꾸러기 같은 귀여운 얼굴이었다.
“오~ 너무 예쁘네요!”
“근데 엄마가 강아지 알러지가 있어서 털을 다 밀었어요.”
“아… 포메는 긴 털이 매력인데…”
“그러니까요. 흑흑… 저도 키우시는 강아지 사진도 보여주세요!”
나는 갑순이의 아기 때부터 최근까지 사진을 쭉 보여줬다.
순한 눈망울을 보고 그녀가 한껏 미소를 지었다.
익숙한 반응이다. 갑순이를 본 사람들은 늘 그렇게 미소 짓는다.
“와, 너무 귀엽네요! 근데 애기가 어릴 땐 까맸네요?”
“네~ 요크셔테리어는 원래 어릴 땐 까맣다가, 크면서 털 색이 바뀌어요.”
“아~ 그렇구나. 신기하네요.”
그렇게 길게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사실 이 손님을 볼 때마다 묘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유진이다. 외모는 다르지만, 풍기는 느낌이나 말투가 너무 비슷해서 처음엔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나는 편의점에 출근할 때 두 번 버스를 갈아탄다. 이수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이수역에서 다시 서래마을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탄다. 어느 날, 마을버스에서 그 손님을 봤다. 인사를 하려다, 그녀가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말았다. 사실 나도 피곤했고, 어차피 내일 아침에 또 보겠지 싶었다.
그녀는 한쪽 어깨에 하드케이스를 메고 있었다.
‘저건… 비올라 아니면 바이올린일 텐데…’
큰 관심은 갖지 않았다.
편의점에 도착해서는 책도 보고 공부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유로운 편의점 알바의 장점이다.
그리고 다시 새벽 6시. 그녀가 편의점에 들어왔다.
맛밤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왔고, 지난번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제 마을버스에서 봤었는데요.”
“아 정말요? 난 왜 못 봤지?”
“버스 안이라서 인사하기 좀 그래서요.”
“그냥 인사하시지~”
“근데, 그때 하드케이스 메고 계시던데… 혹시 악기예요?”
“아~ 네, 바이올린이요.”
“오, 음악하시는 분이세요? 클래식?”
“네. 어릴 때부터 계속 했던 거라…”
“신기하네요. 클래식 하는 분은 처음 봐요.”
“근데 저번에 화성학 책 보고 계시던데요.”
“아, 하하. 저도 뭐 음악 쪽이긴 한데… 대중음악이죠. 하하.”
“아~ 머리도 기르시고, 예술인 같긴 하셨어요.”
“아이구, 예술은요~ 그쪽이랑은 거리가 멉니다요~ 하하.”
1년 넘게 얼굴만 익히던 사람과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밤새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술에 취해 시비를 거는 사람, 큰 소리로 진상 부리는 사람…
그래도 이 편의점은 조용한 편이라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만약 바글바글한 곳이었다면, 몇 달도 안 되어 관두었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김진경.
참 예쁜 이름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운동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클래식 음악을 하며 새벽 운동까지 병행한다니, 철저한 자기관리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서른하나.
이제는 냉정하게 내 삶을 돌아볼 때다.
군 제대 후, 음악을 하겠다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파이프 나르는 노가다부터 인형탈 쓰고 춤추는 알바까지…
그렇게 모은 돈으로 2005년 7월, MPC2000XL을 구입했다.
힙합의 선구자 Tiger JK가 쓴다는 정보를 듣고, 같은 모델로 샀다.
10년 가까이 래퍼가 되기 위해 애썼지만, 현실은 시급 5,000원의 알바생.
하지만 이 길을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아니스트 누나가 있었다.
“이제는 랩보다 프로듀싱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누나는 지인이었기에, 화성학과 작곡법까지 곁들여서 알려주었다.
지인 찬스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아티스트’나 ‘예술가’ 같은 단어가 부담스럽다.
그냥 음악 좋아하고, 음악 하는 사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쩌면 실력이 부족한 내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시급 5,000원의 현실,
그리고 갑순이라는 책임.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해졌다.
갑순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암튼 그렇게 진경 씨와 조금씩 가까워졌고, 어느새 자연스럽게 번호도 교환하게 됐다.
우리 집에서 이수역까지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이수역에서 내가 일하는 서래마을까지도 걸어서 20분 남짓.
그래서 우린 중간 지점인 이수역에서 만나 강아지 산책을 함께 하곤 했다.
그렇게 진경 씨는 나를 “오빠”라고 부르게 되었고, 나도 그녀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게 됐다.
유진이와 헤어진 지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내가 외로웠던 건지, 유진이가 그리웠던 건지, 아니면 진경이가 정말 좋은 건지…
사실, 나도 정확히는 몰랐다.
이른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진경이와 가까워졌고,
나는 내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더 가까워지는 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새벽 6시쯤, 평소처럼 맛밤을 사러 온 진경이는
작은 비닐봉투 하나를 내게 건넸다.
안에는 그녀가 직접 만든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
우리는 종종 함께 강아지 산책을 하거나, 이수역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갑순이와 진경이네 강아지 ‘우유’도 금세 친해졌다.
만약 우리가 특별한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런 일은 대개 동화책에서나 가능한 얘기고,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시간은 흘러 여름의 초입, 6월 초였다.
밤 10시에 맞춰 편의점으로 출근한 나는 인수인계를 받고, 가게 안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11시를 갓 넘긴 시각, 진경이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경이는 곱게 접은 작은 편지 봉투를 내게 건넸다.
봉투를 뜯지 않아도 내용은 대충 짐작이 됐다.
진경이의 표정은 맑고 해맑았지만, 나는 이미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결정을 내려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분명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진경이는 딸기우유 하나를 계산하고는 편의점 문을 나섰다.
문 밖 유리 너머에서 그녀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유리창에 반사된 형광등 불빛 사이로,
진경이의 모습이 한순간 무척 아득하게 느껴졌다.
편지 속 내용은 길지 않았고 간단한 메세지만이 몇자 적혀 있었다
“오빠 우리 정말 많이 가까워 진거 같다. 그런데 오빠는 너무 쑥맥 같아.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았으면 좋겠당~”
무슨 말인지 나는 너무나도 잘알았다. 저 편지를 읽고, 당장 전활 걸어서 고백을 하는 그런 한편의 영화 같은것이 허락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카톡을 남겼다.
“금요일 저녁에 볼까?”
진경은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보냈다.
금요일이 되었다. 오전에 퇴근을 한 후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싯고 옷을 갈아입었다. 약속 장소로 갔다.
“여기야”
해맑게 웃는 얼굴로 진경은 내가 앉은 테이블로 와 앉았다.
“진경아. 저기…”
진경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말을 꺼내려는 내 표정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어렴풋이 감을 잡은 것 같았다.
“니가 준 편지… 고맙게 잘 받았어. 그리고 많이 생각해봤어.”
진경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엔 기대와 걱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너랑 같이 강아지 산책시키고 영화도 보고… 그런 시간들 진짜 좋았어.”
말을 멈췄다.
진경이는 조용히 미소 지으려 애쓰는 얼굴이었다.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근데 말이야, 진경아. 이런 말 식상하겠지만… 넌 아까워, 나한테는.”
진경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그래도 끝까지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내 미래 하나 제대로 책임 못 지고 살아. 내 삶에 너를 끌어들이는 건, 그냥… 미안한 일이 될 것 같아.
난 너한테, 좋은 사람이 되어줄 자신이 없어.”
그 말을 듣고, 진경은 물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깐 숨을 고른 뒤 물을 마셨다.
“…그럼, 어떤 사람이 나랑 어울리는데?”
그 말이 유난히 조용하게 들렸다.
그 조용함이 더 뼈아팠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난 동화 같은 이야기 안 믿어.”
“오빠랑 내가 잘되는 게… 동화 같은 일이야?”
“…레게랑 클래식은 안 어울리잖아…”
진경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보았다.
“…나 요즘 약 먹고 겨우 버티거든.
불안정한 사람이야.
너랑 시간이 길어질수록, 네가 초라하게 될거야...”
그제야 진경은 고개를 숙였다.
끝까지 울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0분 정도 더 있다가 나도 밖을 나섰다. 집에 들어오니, 아무것도 모르는 갑순이가 나를 반겼다.
“갑순아… 오늘은 무척 아빠가 슬프다…”
내 말을 알아들을리 없었다. 갑순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주황빛 노을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날엔 비라도 내리면, 좋을거 같았는데, 노을이 너무 예쁜것도 내게는 너무 잔인한 하늘 같이 느껴졌다.
다시 집에 들어와서 악기와 장비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큐베이스를 켜고 가상악기를 띄운 다음 그냥 마음 가는데로, 건반을 눌러댓다…
갑순이가 의자 밑에서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갑순이를 그대로 끌어안고 무릎에 앉혔다. 내가 우울해 하는 것을 아는거 마냥, 낑낑 대기 시작했다..
무릎위에 앉은 갑순이는 앞발을 들어 내 입술을 핥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위로해주는거 마냥 말이다…
“요 쫀득한 젤리좀 보소…”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내 곁에 있을수 있는 존재는 갑순이 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슬픈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