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갑순이

제 7화 나의 곁에 갑순이

by 리치만


어색하게 끝나버린 진경이와의 만남은, 잠깐의 핑크빛 에피소드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평소와 같이 편의점에 출근해서 똑같은 루틴으로 생활했지만, 아침 6시의 진경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쉬는 날인 금요일과 토요일엔 나와 갑순이만 산책을 하게 되었고, 산책로도 더 이상 이수역이 아닌 사당동 안에서만 걷게 됐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복잡하기만 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편의점에 출근하고 주말이 되었다. 매주 주말마다 받는 피아노 레슨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커피와 도넛을 먹으며 갑순이에게는 최애 간식인 시저를 줬다.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예전에 같은 팀으로 음악을 같이 했던 푸름이 형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이, 송씨 표류기.”


영화 <김씨 표류기>를 너무 좋아해 돌려보던 나를 푸름이 형은 그렇게 불렀다. 나쁘지 않은 별명이었다.


“네 형, 웬일이세요?”


“전화 한 통이 없어서 전화해봤다, 자슥아.”


“크크크. 형은 여전히 바쁘세요?”


“나야 뭐 그렇지.”


“저도 뭐, 여전히 표류하면서 잘 지내고 있죠!”


“카톡 프사에 있던 강아지는 잘 키우고 있고?”


“그럼요. 이 녀석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하하.”


푸름이 형은 음악을 그만두고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음악을 하면서 알게 된 인연들 중 절반은 그만두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 중 절반은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이번 생은 망했다’를 인정하면서 계속 음악을 하겠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다음 생을 기대하며 계속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아참, 너 쇼미 보냐?”


“쇼미는 잘 안 보는데요. 왜요?”


“거기 성민이 나왔다.”


“네? 성민이 형이요? 거기 나갈 깜냥이 되려나?”


“크크크. 아무튼 한 번 봐봐. 보면 놀랄 거다.”


전화를 끊고, Mnet 홈페이지에서 결제를 한 후 재방송을 시청했다.


쇼미 예선 장면이었다. 그곳에 성민이 형이 화면에 잡혔다. 심사는 가리온의 메타였다.


“후이익~ ㅁ;)/&:₩-@인생~~&@@끼긱긱”


“네, 됐습니다.”


가리온의 메타는 냉정하게 “됐다고요”라고 말한 후 돌아가려다 다시 성민이 형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랩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쇼미 예선 탈락은 그의 흑역사가 되었겠지만, 그 영상은 개그이자 보는 사람에게까지 부끄러움을 강요하는 하나의 테러 같았다.


아… 왜 내가 부끄럽지? 성민이 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괜찮았을까… 왜 랩을 하다 말고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스크래치 성대모사를 했을까? 저 아이디어는 어디서 디깅했을까? 무엇보다, 예의 바르기로 유명한 가리온의 메타가 저렇게 말한 거라면…


갑순이를 봤다.

갑순이는… 그저 나에게 시저를 또 달라는 눈빛만 보낼 뿐, 쇼미의 개그 영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눔 가시내~ 시저 계속 먹으면 안 좋다니까!”


얼마 후, 쇼미의 테러리스트 성민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이, 뭐하냐?”


“난 편돌이로 연명 중이지.”


“알바하냐?”


“알바하지. 그럼 놀고 있을까? 뭔 일임?”


“야, 너 엠피시 그거 얼마 줬냐?”


“엠피시는 왜?”


“나도 그거 하나 살까 해서.”


“이제 그런 거 쓰는 시대는 지났는데 이제서?”


“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샀을 땐 300초반이었는데 지금은 가격 훅 떨어졌을걸? 이제 드럼머신 잘 안 쓰니까.”


예전에 내가 엠피시 쓰는 걸 볼 때마다 무시하던 형인데, 갑자기 사고 싶다고 하니 이상했다. 물론 엠피시는 명기임엔 틀림없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요즘엔 다들 샘플러도 DAW로 해결하니까.


통화 중, 굳이 쇼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아픈 과거 끄집어내서 뭐하나… 나는 편의점에 틀어박혀 저런 시도조차 못 하고 있는걸. 어쩌면 나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민이 형은 자기가 잘 모르니, 중고거래하는 데 같이 가달라고 했다. 하긴, 컴퓨터 타자도 못 치고, 리즌도 어디서 크랙 받아놓고 프로그램 설치도 못 하던 컴맹이었으니까.


귀찮았지만 같이 가줬다. 푸름이 형과 음악하면서 같이 살기도 했었고, 알게 모르게 도움도 받았던 적도 있었으니까.


수원까지 가서 중고거래를 했다. 전원을 올리고 이것저것 살펴봤다. 하자는 없었고 외관도 A급이었다. 성민이 형은 그대로 중고로 구입했다.


간단한 메뉴얼도 알려주고, 예전에 내가 보던 한글 메뉴얼도 프린트해서 줬다.


그런 이유로 성민이 형은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엠피시를 사용하려면 이제는 용산에서나 구할 수 있는 1.44MB 플로피 디스켓도 필요했고, 사용법도 한 번에 익히기엔 알아야 할 게 많았으니까.


어떤 날은 내가 없는데도 혼자 들어가겠다고 하기도 했다. 조금 찝찝했지만 그냥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진경이가 찾아오지 않은 어색한 새벽 6시가 한 달이 되어 갈 즈음이었다.


예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허지훈 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송 기사, 잘 지내?”


“송기사는 무슨… 형은 뭐, 그 잘난 데서 잘 지내슈?”


지훈이 형과는 항상 퇴근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소주도 한잔하는 사이였다.


“응, 나 거기 그만뒀어.”


“크크크. 잘했수. 거긴 뭐 군대여 뭐여. 거기다 배울 것도 없고… 잘 그만뒀어.”


“다름 아니라, 내가 지금은 PA 쪽으로 갔거든.”


“앉아서 하는 노가다에서, 이제 몸으로 뛰는 노가다로 가셨다?”


“하하. 여기가 몸은 고돼도 마음은 편하더라고.”


“몸이 고생하면, 머릿속은 또 편해야지. 그럼그럼.”


“PA다 보니까 일손이 부족해서 말인데, 가끔 나와서 일 좀 해볼래?”


“아… 난 지금 최저시급에 무척 만족하며 살고 있어서.”


“뭐 하는데?”


“편의점 당직하사.”


“야간에 알바해?”


“야간 알바라니? 이왕이면 당직하사라는 멋진 단어 쓰십시오.”


“여기서 일하면 거기보단 나을 거야. 정직원은 아니고, 그냥 프리랜서 개념으로 생각하면 쉬울 거다.”


통화 중, 갑순이를 봤다.

편의점에 하루 잡혀 있는 시간이 10시간, 주 5일…


“하루에 몇 시간 일하지?”


“렌탈 시간이 평균 7시간 정도.”


이걸 하면 갑순이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계산이 떨어졌다. 다만 프리랜서라고 하니 수입이 들쑥날쑥할 것 같아 걱정도 됐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편의점 사장님이 방배점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계약 2년이 되면 폐점할 거라고 미리 알려줬다. 계약 만료까지 몇 달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 때문에 자기 동네에서 불편할 것 같은 진경이도 걱정됐다.


오래 고민할 필요 없었다. 실패하면 거지, 성공하면 본전 아니겠나?


“허 기사… 프리랜서 진행시켜.”


나는 편의점 사장님에게 퇴사를 말했고, 일주일 정도 더 일한 후 그만뒀다. 편의점에서 마지막 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진경이가 택시에서 내리던 곳도 서성거려봤지만, 끝내 모습을 볼 순 없었다.


“마지막 인사도 못하네…”


카톡을 보내볼까도 했지만… 그냥 멈추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는 말없이 방배동에서 집까지 걸어갔다.


PA 회사로 출근하면서 갑순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예상보다 많아졌다.

내가 하는 일은 외부 공연 전에 스피커나 라이브 콘솔을 옮기거나, 대형 스피커를 세팅하는 일이었다.

정말 노가다처럼 몸은 고단했지만, 일이 단순해서 오히려 좋았다.

외부 공연이 낮에 있을 때도 있었지만, 저녁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퇴근이나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진 않았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성민이 형은 자주 들락거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오지 않더라…


출근하지 않던 어느 날, 한가롭게 밖에서 아는 사람을 잠깐 만나고 집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비트나 하나 찍어볼까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갑순이가 낑낑대며 다가와서 의자에 올려놓고, 엠피시로 비트 찍는 척하는 설정샷을 한 장 찍었다.

“오! 우리 갑순이 개Beat!”


몇몇 카톡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니 재미있다며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이 왔다.


“오랜만에 엠피시 좀 두들겨볼까?”


전원을 켜고 드럼 소스를 어사인하는 과정에서 에러 메시지가 떴다.

‘메모리가 부족합니다.’라는 메시지였다.

이상했다.


“내껀 풀램인데…?”


엠피시 관련 다음 카페 QnA 게시판에 질문을 올렸다.

기본 드럼 몇 개 어사인하는데 메모리 부족 메시지가 뜬다니까, 기본 메모리 상태일 거라는 답변이 달렸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 악기만 몇 년을 썼고, 룹을 통으로 어사인할 때도 많았지만,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드나드는 사람은 성민이 형밖에 없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질 않는다.

카톡을 보내봤다. 보낸 메시지 옆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다.


문득 얼마 전 성민이 형과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바쁘냐?”

“바쁘지, 일하는데… 왜?”

“야, 엠피시 파는 사람 오늘 찾아갔다.”

“왜?”

“이거 메모리가 고장 나서… 산 지 한 달 안 됐으니 메모리 값 달라고 하려고.”

“그걸 또 받아냈어?”

“받아내야지. 산 지 한 달도 안 돼서 고장났는데.”

“대단하네…”

“낙원상가에 미디스테이션까지 같이 가서 메모리 교체했다. 진짜 고장이냐고 확인도 하더라. 그래서 보여주고 카드로 긁더라.”


미디스테이션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엠피시 수리 및 튜닝이 가능한 곳이다.

전화를 걸었다.


“혹시 최근에 엠피시 메모리 교체하면서 카드로 계산한 사람 있었나요?”

“아시잖아요. 여긴 다 현찰 박치기예요.”


낙원상가든, 동대문에서 옷을 사든… 세금이 붙는다는 이유로 무조건 현찰 계산하는 ‘관례 아닌 관례’가 있었다.

카드로 긁었다는 말에 왜 나는 눈치를 못 챘을까?


그렇다면… 성민이 형이 내 엠피시에서 메모리를 빼갔단 말인가? 굳이?


나는 푸름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성민이 새끼랑 연락돼요?”


잔뜩 화가 나 있는 내 목소리에 푸름이 형은 약간 당황한 듯했다.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눌러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준혁아, 일단 섣부른 판단하지 말고, 내가 연락해볼게.”


30분쯤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준혁아… 하… 지금 집이냐?”

“네, 성민이 새끼 연락 받아요?”

“이 새끼가 받겠냐?”


확신이 들었다.


“일단 집에 있어. 나 지금 간다.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안 바쁘지?”


푸름이 형은 소주 두 병과 족발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하… 일단 한잔하자. 갑순아 안뇽~!”


우리는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마시며 한 병을 비워냈다.


“형… 이게 뭐죠?”

“그러게나 말이다.”

“참나… 어이가 없네요.”

“한잔 더 해라.”


단순히 내 것을 훔쳐간 것에 화가 난 게 아니었다.

화가에겐 붓이 전부이고, 축구선수에겐 축구화가 전부이듯…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내가 파이프 날라가며 번 돈으로 처음 산 악기였다.

그 악기에 손을 댄다는 건… 분명히 선을 넘은 짓이었다.


머릿속에선 온갖 잔인한 방식으로 복수하는 상상만 들끓었다.

성민이 새끼 팔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한번 화가 나서 눈이 돌아가면 앞뒤 분간 못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푸름이 형이 한걸음에 달려와준 것 같았다.


소주 두 병을 비우고, 맥주도 더 사와서 마시기 시작했다.


“준혁아, 너도 알잖냐. 성민이 저 새끼 지밖에 모르는 거. 니가 아끼는 거 건드린 건 진짜 선 넘은 거 맞다.

에휴… 우리 각자 길 가자고 갈라설 때도, 그 새끼 우리가 다 집 비운 사이에 가구며 그릇이며 다 싸갔잖아. 기억 안 나?”


“하… 그때 진짜 세면실에 있던 수세미까지 싸간 거 보고 헛웃음만 났죠.”


“너는 모를 수도 있는데… 성민이 저거, 고등학교 땐가 자기 집 망해서 야반도주 한 적 있다더라.”

“그 얘긴 알죠.”

“불쌍한 새끼니까 그냥 봐주자.”

“이 족같은 새끼…”

“같이 살 때도 돈 없다면서 생활비도 안 내던 새끼였잖아. 괘씸한 거 다 알지… 근데 뭐 어쩌겠냐.”


성민이 형은 실제로 가족과 야반도주를 했었다고 자주 얘기하곤 했다.

처음엔 안쓰러운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도 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지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딱이었다.


“니 생각대로 성민이 어떻게 했다고 치자. 그럼 너 큰 벌 받아. 너 그렇게 되면, 저 꽃순이? 누가 돌봐? 어? 어?”

“갑순이! 이 양반이 취했나…”


우리는 점점 취해갔고, 혀가 꼬인 말로 옛날 얘기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갑순이를 바라봤다.

술안주를 탐내길래 시져 하나 까줬더니, 얌전히 먹고 있었다.


“니가 쟤 태어날 때 받았다며… 좋게 좋게 생각하자.”


엠피시에 의미를 부여한 건 걷어내면 그뿐이었다.


“야야, 내가 그 메모리 사줄게. 얼마야? 얼마면 돼?”

“됐어요. 아저씨, 대리 불러줄 테니까 얼른 가세요.”

“준혁아… 나 여기서 자고 갈란다.”

“형수님한테 또 시달릴라고?”

“응. 안 그래도 그저께 싸웠다.”

“괜히 온 게 아니었네…”


그렇게, 그냥 참기로 했다.


나는 이베이에서 엠피시에 들어가는 메모리를 구입했고, 한 달 만에 도착한 메모리를 꽂은 후 샘플들을 어사인해봤다.

잘 돌아갔다. 잘 돌아가니 됐었다.


푸름이 형 말대로… 갑순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냥 넘기기로 했다.


얼마 뒤, 푸름이 형이 내게 URL 하나를 카톡으로 보냈다.

성민이 형이 낸 싱글의 유튜브 링크였다.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10초쯤 재생됐을 무렵—

나는 부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