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버려질때
얕은 잠에서 뒤척이다 깼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거실로 나가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상하리만치 서늘한 공기.
방에 불을 켜니, 갑순이가 멀뚱히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아직 이른 새벽이었다.
식은땀은 뺨을 타고 턱 끝을 지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정을 한 뒤 찬물로 샤워를 했다.
밤새 이상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건조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길을 잃은 듯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걸었다.
“꼬마야, 엄마는 어디 있니?”
“….”
대꾸는 없었다. 그저 날 똑바로 바라보기만 했다.
“길 잃은 거야? 엄마나 아빠 휴대폰 번호 알아? 아저씨가 전화해줄게.”
다시 말을 걸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대로 나를 바라봤다.
혹시 몸 어딘가에 보호자 연락처가 있을까 싶어, 옷을 살펴봤다.
아이의 노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꿈돌이 유치원 송준혁’
내가 어릴 적 다녔던 유치원 이름이었다. 이름도… 내 이름과 같았다.
아이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그 아이는, 어릴 적 나였다.
“너… 누구야?”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깼다.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꿈이란 건, 그냥 수면 중 무의식의 잔상일 뿐이라고 들은 게 기억났다.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아냈다.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역시, 빈속에 마신 탄산은 속을 바늘로 긁는 것처럼 따가웠다.
식탁 위에 놓인 약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약 없이 잠들지 못한 지도 어느덧 8년이 넘었다.
약을 삼키고 나면 10분도 안 돼 잠들었다.
뒤척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드는—마치 TV에서 최면사가 “레드썬!” 하고 외치는 그 느낌.
짧지만 깊은 잠이었다.
약에 의존하게 된 이후로, 꿈을 꾸는 일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괜히 예민해진 게 아닐까, 나는 그냥 관심의 버튼을 off 시켰다.
버릇처럼 휴대폰을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지인들이 올려놓은 사진들을 훑어봤다.
맛있는 음식, 여행지, 고급 명품들…
“다들 팔자가 좋구만…”
이런 생각은 나에게 독이다.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추락하게 된다.
명품 옷, 고급 차 없어도 그만이다.
초라하지만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아늑한 공간이 있고,
내가 지켜야 할 갑순이가 있으니까.
그걸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시간을 보내다 창밖을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카톡에 저장된 사람들의 목록을 훑어봤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지인들의 프로필 사진은 온통 자기 자식들 사진이었다.
“쩝… 나는 우리 딸 갑순이 사진으로…”
갑순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프로필 상태메시지에는 “내가 사는 이유”라고 적어뒀다.
다소 유치할 수 있지만… 맞는 말이니까.
어제도, 그저께도, 그그저께도—
경기도 시골까지 내려가 축제니 뭐니 하며 나보다 큰 스피커들을 설치하고,
공연이 끝난 뒤엔 또 그 장비들을 해체하느라 척추가 비틀어지는 느낌이었다.
딱, 트위스트를 추는 것처럼.
달력을 보니,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아침을 대충 토스트로 때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2주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뭐, 그냥 똑같죠. 일하고 쉬고… 가끔 지인들이랑 연락은 하는데, 좀 피하는 편이고요. 뭐, 그렇네요.”
“왜 자꾸 지인들을 피하게 될까요?”
“글쎄요… 그냥 그렇게 되네요. 하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피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게 지속되면 스스로 고립될 수 있어요. 그건 결국,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고요.”
고립.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스스로 고립을 택해 왔다.
정신과 선생님 앞에서는 모든 걸 털어놔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못한 것들이 훨씬 더 많다.
요즘 뉴스에서는 훈훈한 기사를 찾기가 어렵다.
갈등과 혐오만 가득한 현실이 싫어, 피하고만 싶었다.
일이 아닌 이상 사람을 만나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었다.
매달 버는 돈은 매달 생활비로 흘러나가고,
나이는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겼다.
현실적으로 ‘비전’이라는 단어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음악 작업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런 상황에 기적같은 기회가 찾아와
해피엔딩이 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도 그걸 안다.
하지만 그 사실에 계속 빠져들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지고,
결국 마음까지 잠식당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현실을 피한다.
휘빙하듯, 빗겨가듯,
그냥 그렇게.
병원에서 약을 받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가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지나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들처럼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게 아니라,
돛이 없는 배처럼
망망대해를 떠밀려다니는 건 아닐까.
어찌 되었건, 피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그러다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해도…
지금은 그냥, 싫은 것들을 피하고 싶었다.
생각이 복잡할 땐 걷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갑순이에게 어깨끈을 매어주고 다시 밖으로 나섰다.
갑순이는 산책을 무척 좋아한다. 여느 강아지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맞은편에서 산책 나오는 다른 강아지가 보이면 무조건 먼저 달려가 인사를 건넨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우리 갑순이는 정말 성격이 밝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일을 나가고,
출근이 규칙적이지는 않았지만, 생활엔 큰 불편은 없었다.
뭐라도 자기 개발이라도 해볼까 싶었다.
영어를 해볼까? 손재주가 나름 있어서 무언가 만드는 걸 해볼까?
하지만 뭘 추진하려고 해도, 생각만 맴돌다가 결국 하지 않게 된다.
내가 의지가 부족한 건지, 그냥 게을러진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여고생 한 명이 다가왔다.
교복을 너무 줄여 입어, 마치 술집 접대부 옷 같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멋 부리고 싶은 고등학생들에게 ‘교복 리폼’은 필수 이긴 했다.
그 아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어른 돼서 지금 모습 보면… 엄청 부끄러울걸요?”
물론, 그냥 마음속으로만 그랬다.
잔소리 같은 게 머릿속에서 나오는 걸 보니…
나도 어느새 아재가 되어가나 보다.
근처 편의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세븐일레븐이 보였다.
“교회랑 편의점 중에 뭐가 더 많을까…”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캔콜라 하나와 담배를 샀다.
편의점 안에는 직장인처럼 보이는 세 명이 깔깔대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을까, 묻고 싶었지만 그냥 나왔다.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이라는 게 내 손과 발을 묶는 느낌이었다.
익숙한 동네 골목길조차 이제는 그냥… 싫어졌다.
일이 끝나면 불이나케 집에 돌아와 갑순이와 산책을 해야 했지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누워있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기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런 나의 나태함 때문에, 갑순이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뒹굴거리면, 갑순이도 조용히 옆에 와서 따라 눕는다.
“갑순아… 오늘은 산책할까?”
‘산책’이라는 단어를 들은 갑순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미안한 마음에 어깨끈을 다시 매주고, 밖으로 나섰다.
적당히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티비를 켜봤다.
하지만 어느 채널을 돌려봐도, 볼 만한 게 없었다.
의미 없이 계속 채널을 돌리다 결국 꺼버렸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라도 들어볼까 하며, 멜론에 저장된 노래들을 재생해봤지만
5초도 안 돼서 넘기고, 또 넘기고…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잠에 들기 위해, 평소처럼 약봉지 하나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입에 털어 넣으려는 그 순간—
현타가 몰려왔다.
아니, 직격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먹으면 뭐해… 내일도, 다음 달도, 내년에도… 난 계속 이걸 먹고 있을 텐데.”
손에 쥐고 있던 약들을 탁, 던져버렸다.
“이제 저거… 안 먹어.”
아침이 되었다.
밤새 뜬눈으로 지샜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갑순이가 옆에 있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니, 나를 올려다봤다.
“아가…”
크고 맑은 눈망울이 반짝였다.
세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우리 갑순이 눈이 더 예뻤다.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피로에 눈꺼풀도 파르르 떨렸다.
고작 하루 잠을 못 잤을 뿐인데…
몸을 일으켜 세면실에서 씻은 뒤, 출근을 했다.
퇴근하자마자 곧장 집으로 와서, 다시 씻고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일이 없는 날에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럴수록 갑순이에게 미안했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늦은 새벽, 티비를 켰다.
케이블 채널에선 영화나 예능 재방송을 틀어주고 있었다.
재미있게 보다가도, TV 속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했다.
가끔은 숨도 가빠졌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게 두려워졌다.
그게 TV 속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준혁아, 뭐하냐?”
“나? 그냥 집에 있는데…”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야이새끼야!”
믿도 끝도 없이, 갑자기 화를 내는 일이 많아졌다.
스스로도, 내가 이상해졌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깊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내 머릿속 모든 레지스트리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완전히, 말끔하게.
포맷.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극도로 예민해진 나는 점점 피폐해져 갔다.
허지훈 대리에게 적당히 핑계를 댄 채, 나가는 날도 예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나의 날카로움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어졌고…
결국, 완전히 고립되었다.
나는 술에 기대기 시작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가뭄처럼 금이 간 마음에, 단비라도 뿌리듯이. 편의점에서 술을 사 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병을 들이켰다.
그리고 침대로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일어나며 갑순이를 불렀다.
“갑순아.”
…아무 소리도 없었다.
평소 같으면 우다다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야 했는데, 정적만 감돌았다.
악기와 장비가 있는 작은 방 문을 열어봤지만, 그 안에도 없었다.
옷걸이 밑, 침대 밑도 뒤졌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을 향한 시야에, 문이 살짝 열린 틈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
어젯밤, 술을 사서 들어올 때…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틈으로, 갑순이가 나가버린 것이다.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찾을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갑순이가 평소 가던 산책길을 뒤져봐도, 아무 흔적도 없었다.
“어디야… 어디 간 거야… 갑순아…”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얼굴을 적셨다.
속은 타들어 갔고, 가슴은 죄어왔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어떤 건지, 이때 처음 알았다.
술을 마시고 잠들어버린 사이…
도대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길을 잃은 강아지는 구조돼 보호소로 옮겨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안락사가 된다고—
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 같았다.
휴대폰을 꺼내 112에 신고를 했고,
갑순이 사진으로 ‘강사모’ 카페에도 글을 올렸다.
당근마켓에도 올렸다.
혹시라도 누가 봐줄까, 댓글창을 새로고침하고 또 새로고침했다.
평소 찾지도 않던 하느님께 기도도 했다.
“제발… 제발…”
혼이 빠진 나는, 무작정 집으로 향하다가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어.”
“그래서 갑순이가 떠난 거야. 내가 이런 놈이라서…”
몸을 일으켜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를 켜고 카페에 올린 글을 다시 확인하고, 당근 알림을 새로고침하고, 머리를 쥐뜯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댓글 하나.
“해당 지역의 유기동물 지정 병원에 문의해보세요.”
그 한 줄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검색창에 ‘유기동물 지정병원 사당동’을 입력해 찾은 병원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오늘 들어온 유기견 있나요? 요크셔테리어고… 암컷입니다.”
“네, 오늘 오후 4시쯤 요키 한 마리 들어왔어요.”
“네?! 혹시 사진 받아볼 수 있을까요? 저… 제가 키우던 강아지인데…”
털이 조금 길고, 단미를 하지 않아 꼬리가 긴 요키.
미용한지 얼마 안 돼서 얼굴 쪽 털이 약간 덜 자란 상태.
나는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병원 직원은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했고,
문자로 전송된 사진엔…
내 딸, 내 전부. 갑순이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감사를 반복하며 눈물이 쏟아졌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사진만 보고 또 봤다.
그 짧은 시간도 너무 길게 느껴졌다.
신고해준 누군가 덕분에, 갑순이는 안전하게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병원 직원은 조심스럽게 내장칩에 대해 물었다.
“내장칩은 안 하셨나요?”
“네… 건강에 무리가 갈까 봐 꺼렸는데…”
“아주 작은 거라 괜찮아요. 오히려 긴급 상황엔 꼭 필요하죠.”
나는 바로 내장칩 시술을 요청했고,
갑순이를 품에 안고 병원을 나섰다.
택시 안에서 갑순이를 보며 말했다.
“갑순아…
아빠가 너무 미안하다. 다신 안 그럴게. 절대 다시는…”
며칠 뒤, 의사인 사촌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들—약을 끊은 일, 감정 폭발, 돌발적인 분노까지—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형은 정신과 전문의는 아니지만,
알고 지내는 의사 선생님이 있다며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상담을 받고,
‘폐쇄병동에 단기간 입원’하는 것을 권유받았다.
나는 받아들였다.
피폐해진 나 자신을… 더는 버틸 수 없었기에.
무엇보다도—
갑순이를, 다시 잃고 싶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