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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마녀 Aug 26. 2020

남편을 은퇴시켜야만 하는 여자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에도 다 퍼주는 남편을 둔 아내의 속사정

  남편과 단둘이 작은 중국집을 하고 있다. 남편은 주방을 책임지고 있고 나는 홀을 담당하고 있다. 철저하게 일을 나눠 효율적으로 둘이서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가게는 결혼하고 나서 세 번째로 자리 잡은 가게이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남편은 이미 중국집을 하고 있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남편은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들어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1980년대 중반, 어린 나이였음에도 돈을 벌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서울에 올라온 남편은 오갈 데가 없었다. 그 당시 우연히 돈을 벌게 된 곳이 중국집이었다. 숙식 해결도 되고 급여도 받을 수 있던 곳. 사회에 나가기에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급여가 말 그대로 쥐꼬리만 했다. 하루에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월급을 받으면 저축을 했다. 그렇게 번 돈을 본인이 아닌 가족을 위해서 썼다. 

  

"완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데?"
“돈이야 뭐 또 벌면 되니까.. 허허!”     


  남편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남달랐다. 안 먹고 안 입고 고생해서 모은 돈 나를 위해 쓰고 싶은 게 사람인데 남편은 가족을 위해 그러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아픈 동생 수술비하라고 몇 개월 동안 모으고 모은 돈을 집에 보내주기도 했고 입대할 나이가 되어 훈련소에 가기 전에는 그때 당시 400만 원 정도 모아놓은 통장을 누나에게 맡기고 가기도 했다. 훈련소에 가 있는 동안 집에 혹시 돈이 필요하면 이 돈으로 해결하라며... 


  4주 훈련을 마치고 나오니 통장에 돈이 없었다고 한다. 누나가 본인의 치아를 새로 해 넣는데 썼다며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남편의 가족사랑은 참 유별났다. 타지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일을 하며 열심히 살던 남편은 우연히 한 대학 앞에서 24시간 동안 운영하는 중국집의 야간 파트를 동업의 형식으로 인수하게 됐다. 


  남편은 그 누구보다도 열과 성을 다해 일을 했다. 직원들보다 더 먼저 출근하고 다른 이들보다 제일 늦게 퇴근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편의 머릿속엔 오로지 가게 생각뿐이었다. 진정한 워커홀릭이 따로 없었다. 야식집이었던 탓에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며 일을 하다 보니 남편은 어느 날 ‘이러다 사람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지역에서 야간이 아닌 주간에 하는 보통의 중국집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환경을 바꾸기로 한다. 야간 중국집을 하면서 번 돈으로 노원구에 본인 가게를 정식으로 차린다.


  부모님의 도움 전혀 안 받고 본인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것이다. 가게를 공사하던 중간에 급전이 필요해서 아버지께 300만 원을 빌렸지만 이자까지 제대로 쳐서 몇 달 만에 갚았다. 


  이곳에서도 남들보다 빨리 출근해 직원들 다 퇴근시키고 나서 2시간여를 고객들에게 전단지를 뿌려가며 그렇게 일을 했다. 1년 뒤 가게를 바로 밑 남동생에게 헐값에 넘기고 서울 시내에서 조그맣게 또다시 가게를 차린다. 이 시기에 남편은 나를 만났고 우리는 결혼을 했다.


  아이가 셋이 되도록 본인 양말 하나 안 사 입던 남편. 이제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본인이 받는 용돈까지 탈탈 털어 아이를 위해 내놓는다. 그토록 좋아하는 낚시는 돈 아까워 못하면서 말이다. 이러니 내가 빨리 남편을 은퇴시키려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자기 자신보다 가족들을 더 먼저 생각하는 이 남자가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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