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준이는 눈을 잘 감는다.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할 때도 눈을 감고, 부끄러워도 눈을 감고, 혼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눈을 감는다. 자폐인들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내가 본 재준이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밥을 잘 먹어서 칭찬을 받았을 때. 그럴 때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눈을 꼭 감아버린다. 마치 숨바꼭질을 할 때 어린아이가 얼굴만 이불속에 숨기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럴 때면 재준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렇게 눈을 감아도 재준이가 잘 보이는데?’라고 말하며 놀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는다. 엄마라면 아이가 숨기고 싶은 일에 눈을 감아줘야 하니까. 내가 재준이를 놀리지 않는 것은 재준이와 같이 눈을 감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잠깐 시간이 지나고, 눈을 감았다 뜨고 나면 재준이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열심히 밥을 먹는다. 무표정으로 말이다.
이렇게 눈을 꼭 감는다.
재준이가 기분이 아주 좋을 때,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릴 때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면 재준이는 허공의 한 곳을 쳐다보며 뿌듯한 표정으로 씨익 한 번 웃은 후, 눈을 감는다. 몇 초 동안 그렇게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속해서 그림을 그린다. 어떻게 그렇게 바로 무표정이 될 수 있는지, 서운할 정도로 표정이 차분해 진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자폐인들은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고 ‘일부로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생각을 한 적도 있다.
또 재준이는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도 눈을 감아버린다. 재준이는 화가 났을 때, 일부러 앞에 있는 물을 쏟거나 물건을 쳐서 엎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행동을 하고 나서 곧바로 양 손으로 눈을 가리고 로봇의 배터리가 꺼진 것처럼 모든 행동을 멈춰버린다. 인간이 로봇으로 변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것 같지만, 마음을 부여잡고 일단 혼을 낸다. 내가 혼을 내면 다시 배터리가 충전된 로봇으로 돌아와 “하면 안돼, 하면 안돼.”같은 반향어를 하며 반성을 하지만, 역시나 눈은 계속 감고 있다. 가장 눈을 오래 감는 때는 아마 혼이 날 때 인 것 같다.
'마음 읽기'가 가능하다고 느낀다.
어쩔 때는 재준이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러니까 ‘마음 읽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준이가 실수로 다른 사람과 부딪혔을 때, 그 사람의 부딪힌 부분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준다. 마치 그 부분을 보호해 주려는 듯이 말이다. 물론 그때도 눈을 감거나 허공을 쳐다본다. 보호하려는 부분이나 사람은 절대 보지 않는다. 아직 표현이 서툰 재준이만의 사과 방법이다.
드물긴 하지만 가끔은 말로 감정을 표현할 때도 있다. 재준이가 다니는 특수학교는 우리 집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 날이 너무 더워 하굣길에 택시를 탔다. 차가 출발했는데 재준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시여.. 시여..”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직감했고, 기사님께 말씀드려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다시 택시에 탄 후 집에 가고 있는데, 재준이가 이번에는
"미아개..미아개.."
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눈을 감고 말이다. 미안하다니, 별일도 아닌데 신경이 쓰였나 보다. 좁은 택시 안에서 사과를 하는 모습이 너무 의기소침해 보여 마음이 쓰였다. 나는 일부로 더 씩씩하게
“뭐가 미안해. 엄마는 괜찮은데?”
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도 재준이는 눈을 꼭 감은 채 한동안
“미아개..미아개..”
라고 했다.
나는 재준이가 눈을 꼭 감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재준이가 아주 어릴 때, 내가 혼을 내도, 본인이 다쳐서 아파도, 내가 재준이 앞에서 울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하니 있던 때를 생각해 본다. 재준이는 그때도 다 느끼고 있었을까?
이제는 안다. 표현을 하지 못했던 그 어린 시절에도 분명히 재준이는 모두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혼을 내면 속상했을 테고, 부딪혀서 피가 나는 부분은 아팠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재준이를 보며 내가 울면 재준이도 같이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어린 재준이의 마음을 너무 몰라줬던 것 같아 마음이 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