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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코 Feb 07. 2024

자취방을 찾아온 뜻밖의 손님

독거 청년의 일일 #2




집 꾸미기의 기쁨과 슬픔


이사를 하고 한 달쯤 지나자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었고 침대와 책상, 냉장고만 덜렁 있던 집에 물건들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돈을 태우던 시점이라 매일같이 택배를 받았고, 퇴근하고 박스를 뜯어보는 일이 일상의 큰 낙이었다.


텅 빈 공간에 좋아하는 물건을 하나씩 들이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물론 그때 당시엔 인테리어에 큰 관심은 없었기에 공간을 꾸민다기보단 자취 필수 아이템을 취향대로 고르는 것에 불과했다. 오늘의 집을 하루에도 열댓 번씩 들어가 이 집에 딱 맞는 아이템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칫솔 걸이조차도 여러 개의 후보를 두고 고민한 뒤 결제했다. 자금과 평수의 압박으로 모든 걸 구매할 순 없었지만, 내 나름대로 집을 꾸며가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렇게 선택한 각각의 취향은 서로 엉성하게 들어맞았다. 물건을 신중하게 고른 것에 비해 통일감이 없었고 작은 방 안에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인테리어 콘셉트가 달라졌다. 독립 2년 차가 되었을 때 자취방은 제2차 인테리어 부흥기를 맞았고, 그때 구매했던 아이템 덕에 지금은 내 취향이 조화롭게 반영된 집을 갖게 되었다. 공간은 좁아졌지민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제대로 들어차게 된 것이다.


집을 꾸미는 일에 서툴렀던 독립 한 달 차에 구매한 많은 물건들이 베란다에 처박히거나 당근 마켓에 팔려갔다. 하나 그런 시행착오가 독립의 시작을 설렘으로 가득 차게 했음은 분명하다.


당시 왜 그렇게 집 꾸미기에 열중했었나 이제와 돌이켜 보면, 우리 집에 오는 누구에게든 잘 꾸며 놓은 집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엄마 아빠에겐 잘 꾸며진 딸의 집이란, 혼자서도 잘 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것이 엄마 아빠를 안심시키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자취방을 찾아온 뜻밖의 손님



집이 어느 정도 사람 사는 구색을 맞췄을 때 처음으로 친구들이 놀러 왔다. 할 것이라곤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방바닥에 드러누워 보드게임을 하는 것뿐이었지만 마냥 좋았다. 두 달 차까지도 주말마다 친구들이 놀러 왔는데, 그맘때쯤엔 대학생 때 자취를 했더라면 큰일 났겠단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노는 게 이렇게 편하고 좋을 줄 몰랐다.


그런데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아흔이 넘으신 친할머니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당황하며 현관문을 열자 할머니는 방긋 웃으시며 집으로 들어오셨다. 할머니께서 목이 마르다 하셔서 물을 드렸고, 나는 적잖이 당황해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할머니만 바라보았다. 하루 자고 가시겠다 하시길래 영 껄끄러웠지만 전기장판을 꺼내 바닥에 깔아드렸다. 할머니는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집을 찬찬히 둘러보셨다.



'잘해놓고 산다'



그 한 마디를 듣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침대 위에서 눈만 뜬 채로 누워 엉엉 울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딱 두 번 꿈에 나오신 적이 있었고 그날이 두 번째 일이었다. 나는 돌아가신 친할머니께 애틋한 마음이 있는 손녀는 아니다. 살아생전에 살갑게 대해드리지도 못했다. 단지 중학생 시절 할머니와 1년 남짓 살았던 것이 전부인데도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내 동그란 뒤통수와 가느다란 팔다리가 할머니를 닮았다 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당신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하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선 단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몰랐다. 나는 수많은 손자 손녀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줄을 세워도 한참 뒤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막내 손녀가 뭐라고 먼 걸음 오셨을까. 지금도 너무나 생생한 그 꿈이 단지 꿈이 아니라 정말로 할머니가 나를 보러 온 것이라 믿는다. 가끔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집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더욱 혼자서도 더 잘 살고 싶다. 엄마 아빠와 친구들이 올 때만 반짝 꾸며놓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잘 보살핀 집에서 정말로 잘 지내고 싶다. 할머니가 지켜보고 계시니 말이다.




남을 위한 공간



독립 3년 반 만에 집에 소파를 들였다. 그동안 소파를 사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늘어질까 봐서였다. 집엔 1.8m의 책상과 커다란 책장으로 둘러싼 나름의 작업 공간이 있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생산성 있는 공간이기에 가장 아끼는 곳이고 내가 가능한 오래도록 머물기를 원한다. 소파는 이에 방해 요인이 될 것이 뻔했다. 그런데 뒤늦게 소파를 산 것은 순전히 집에 오는 손님들 때문이다. 특히 부모님이 집에 오실 때마다 바닥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영 불편했다.


가끔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곤 하지만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사놓고 새것처럼 방치하고 있는 게 조금 웃기긴 하다. 처음 독립할 때만 해도 나를 위한 물건을 잔뜩 모으는데 심취해 있었고 내 공간에 남을 위한 가구가 들어설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곳이 나에게 200% 편한 공간이 되자, 이제는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 편하게 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게 되었다. 혼자 있는 걸 극도로 좋아하는 집순이의 집에도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이 생긴다.




꿈에 할머니가 또 찾아오신다면 지금은 더 잘해놓고 산다고, 앉아 계실 소파도 생겼다고 자랑하고 싶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도 혼자, 기분 좋게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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