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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꼴유랑단 Oct 30. 2017

커플여행에 대한 단상

"결혼하지 않은 커플의 장기여행이 어때서?"


S593이 극찬한 인도 빠하르간지 넘버원 라씨. 그 맛을 함께 느끼니, 아이 좋아라!


이천십칠년 시월 이십오일 수요일


우리는 우연히도 시기가 맞아 함께 중장기 여행을 떠났다. S593은 자발적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나는 2년 계약을 야무지게 마무리한 후라 마음만 먹으면 둘 다 배낭을 멜 여건이 충분했다. 우리의 여행을 지인들에게 이야기하자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는데, 그중 하나는 결혼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 반, 진담 반이라고 생각하지만 ‘왜 여행과 결혼을 묶어서 생각하는 걸까?’ 의아하기만 했다.


로맨틱가이의 천일 기념 러브레터♡


S593과 짝꿍이 된 지 약 1,000일. 계산해보니 그중 국내외를 통틀어 함께 여행한 건 약 200일 정도다. 함께 한 시간 중 약 20%를 24시간 함께 있었던 거다. 그게 뭐 대수냐, 싶을지도 모르지만 결혼한 부부 중에서도 24시간 붙어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거다. 평일에는 각자 직장생활로 바쁘다가 저녁 시간에 만나고, 주말이 돼도 온전한 24시간을 함께 보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우리의 24시간이 모인 200여 일은 특별했다. 내가 몰랐던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에는 세계여행을 하는 부부가 정말 많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한 부부는 만약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니라 연인이었다면 이런 여행을 떠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나눴다. 만약 우리가 결혼했더라면 떠나오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생각해보니 우리나라 부부 여행자, 정말 대단하다). 또, 여행 중 만난 이들에게 결혼했다고 하면 대부분 놀란다고 한다. 동양권에서는 ‘결혼=안정, 정착’이 익숙하기 때문에 그런 틀을 깨고 여행을 떠났다는 것에 놀라고, 유럽권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문화가 만연해있기 때문에 결혼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이들 중 다수는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여행할 수 있는데, 여행을 위해 결혼한 것이냐며 의아해했다고도 한다. 나 또한 그들과 생각을 같이한다. 어째서 우리나라는 결혼하지 않으면 장기 여행을 상상할 수 없는 걸까?


막상 여행을 떠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해외에서는 결혼하고 여행을 떠나는 게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장기여행 커플은 매우 극소수다. 일부 워킹홀리데이를 함께 떠난 커플의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지만, 그걸 포함하고서도 커플의 장기여행은 정말 드물다. 그래서인지 장기여행은 커플보다 부부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장기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부부든 커플이든 모녀든 부자든 친구든 혼자든, 마음이 허락하는 선에서 우리는 모두 주도적으로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선택한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누군가에게 눈치 볼 필요도, 무언가에 쫓겨 주눅들 필요도 없다. 한계를 규정짓고 그 안에서만 사고하지 않길, 편견에 사로잡혀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 편견을 깨며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길 원한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어디서든 날 웃게 해 준 든든한 사람. 알면 알수록 더욱 사랑하게 되는 마성의 남자.


아마 우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 시선 안에는 여러 가지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편견이 자리 잡고 있겠지. 하지만 부부간에도 긴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와 이혼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커플인 우리가 200여 일 동안 여행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는 건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더욱 의미 있고 소중하게 보낼 엄청난 기회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그 값진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있는 힘껏! 마음껏! 즐기고 있다(앞으로도 계속해서 신나게 만끽할 예정이다! 야호!). 어쩌면 인생에 다신 오지 않을 황금 같은 순간, 거기에 내 짝꿍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 직접 피부로 느끼고 경험하는 이 시간이 어찌 귀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결혼하지 않으면 끝난 인생이라는 둥 여행은 결혼해서 가야 한다는 둥, 결혼이라는 틀에 많은 걸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예전보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유해졌지만, 아직도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우리나라 사고방식 덕분에 많은 청년이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지인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별꼴’인 애들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우린 그저 마음 맞는 파트너를 만나 함께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면서 시간을 공유하는 것뿐. 왜 그 모든 것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가둬버리는 걸까. 안타깝기만 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결혼해서 여행을 떠나는 부부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싶다. 하지만 반대로 결혼하지 않더라도 우리처럼 충분히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거다. 특별한 것도, 특이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든 갈 수 있으며 어디서든 누릴 수 있는, 이 당연한 자유와 권리를 잊지 말길 바란다. 사회의 제도와 편견 속에 우리의 자율적 선택과 판단력을 잃지 않길 원한다.


그대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우리의 결혼을 간절히 바라는 지인들이 많은데, 아쉽게도 지금 당장은 결혼 계획이 없다. 그렇다. 우리는 30대에 접어들었고 동시에 결혼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수시로 받고 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결혼은 절대 사양이다. 나이가 찼으니, 누구누구도 가는데 등등의 분위기에 휩쓸려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엉겁결에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슬슬 해야겠는데?’ 이런 생각도 안 든다. 아빠가 들으면 가슴을 치며 속상해하시겠지만. 결혼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주체적인 삶을 시작하는 큰 걸음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 인생의 남은 퍼즐을 완성해가는 시간이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결혼을 해야만 하는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는 건 우리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과 삶과 시간이 존중받길 원하고, 서로의 상황과 의견이 맞았을 때 천천히 결혼을 이야기하길 원한다.


이번에 계획한 160여 일의 여행이 이제 슬슬 끝나간다. 아쉽기도 하지만 아쉬움이 있어야 또 떠날 수 있을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자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할 것이며, 이전보다 더 야무지고 알차게 잘 해낼 것이다. 여행이 선물해 준 값진 생각을 한 아름 안고, 더욱더 ‘나’ 답게 살 수 있도록 하루하루 여행 같은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그러니 ‘너희 장기여행 다녀왔으니 얼른 결혼 준비해!’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는 부디 삼가길 바란다. 사회의 잣대와 자신의 가치관을 삐죽삐죽 내세우며 섣불리 판단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삶과 시간과 생각을 응원해주시길.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인정해 주시길.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시작을 앞둔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by J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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