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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아 Nov 27. 2021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그것은 능력인 걸까 손해인 걸까



나는 어렸을 적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우리 집은 가난해서 화장실도 밖에 있는 단칸방 살이를 한 적도 있다.

그때에 나는 머리를 매일 감지 못해서 떡이 진 머리로 초등학교에 가곤 했다.


그 가난을 헤어 나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결국은 가난으로부터 헤어 나오기 위해 또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현재의 난 더 이상 가난하진 않다.

가난한 부모님께 내가 조금의 도움도 드릴 수 있게 되었고 결혼을 하면서 약간의 재산도 생겨났다. 물론 빚도 함께이지만.


그래서인지 난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고 마음이 갔다.

돕는 일을 하는 단체에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려운 친구에게 밥을 사주기도 하고 그런 별로 특별하지 않은 작은 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요즘에는 가끔 중산층의 입장에 선 듯이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놀란다.

이렇게 생각하다니..


나의 시간, 돈, 관심 그런 것들을 그 이웃들에게 더 많이 쏟기보다 내 취미와 쉼을 위해 쓰고 있다.


비싼 커피머신도 샀고 짧은 여행도 다닌다.

그리고선 스스로 생각한다. 난 그래도 매달 얼마를 후원하고 있어. 그들을 생각하고 있어.


내가 산 집 값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이렇게 치솟은 집값, 전세가에 고통받을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그 이웃들을 (과거의 나를, 내 가족을) 우선시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가난을 겪어보지 않은 친구들을 무시했다.

그 사람들은 타인의 어려움을 진정 이해하지 못한다고 마음속으로 무시했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부자가 된 것도 아닌데 그저 빚뿐인 삶에서 간신히 탈출했을 뿐인데도.


타인의 삶에 공감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러한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왜냐면 그것이 내게 어떠한 유익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많은 경우 내게 해를 끼친다.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유퀴즈에 나온 남해의 빵집 아저씨가 공짜로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면서도 자신의 이는 치료하지 못해 엉망인 것을 보았다.

울지마토토라는 다큐에 나온 이태석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평생을 봉사하다 암으로 투병하고 삶을 마감했다.

많은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한다.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선택적으로 그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을.

그 삶은 숭고하며 존경받을 삶이지만 내가 살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다. 선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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