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안락한 우주 너머에는

by 리을

둠칫, 둠칫. 빠바바밤-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비트가 좁은 공간을 울렸다. 밝고 흥겨운 목소리가 하나, 둘 겹치더니 어느새 너덧 명의 목소리가 정신없이 섞여 들었다. 점점 더 빠르게, 점점 더 높은음을 향해 달리던 노래는 절정에 닿아 폭발하듯 사라졌다. 잠깐의 쉼도 없이 비슷한 노래가 다시 시작됐다. 운전석에 앉은 그는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어김없이 또 다가오는 절정, 그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휘, 휘휘휘, 휘이익, 삐익-

음정 하나 놓칠세라 정성을 다해 부르는 그. 그리고 옆에서 앞만 보고 있던 내가 참고 있던 말을 꺼냈다.

“여보, 볼륨 좀… 줄일게.”

남편이 운전할 때면 주로 신나는 걸 그룹 노래를 듣는다. 볼륨을 높이면 밀폐된 차 안은 마치 콘서트처럼 음악이 둥둥- 울려 퍼진다. 거기에 고막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더해지면, 두통이 몰려오는 것만 같다. 도망칠 곳도 없는 달리는 차 안, 더욱이 그는 ‘운전자’라는 공격할 수 없는 무적의 상태가 아닌가. 선곡을 탓하며 다음 곡을 기다려보지만 소용없다. 그의 스마트폰이 연결되어, 내가 원하는 곡이 나올 리 만무했다. 금방이라도 두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지만, 우리의 ‘알고리즘’은 수억 광년이라고 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유행가’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사춘기 때도 친구들이 열광적으로 사랑했던 아이돌 노래에 관심이 없었다. 속도가 빠르고 강렬한 의미를 담은 가사를 듣고 있노라면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격정적으로 신나거나 슬픈 그 어딘가로- 여기저기 휘둘리듯 끌려다니다 보면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연달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던 적은 없었다. 손안에 든 작은 MP3에는 내가 원하는 음악으로 얼마든지 채울 수 있었으니까. 뉴에이지 음악, 팝송, 록 발라드, 애니메이션과 영화 BGM까지 내 취향으로 가득한 음악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냈다. 꼭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혼자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딘가에 정착해 유튜브 앱으로 영상을 틀어둔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 웹툰 앱, 인스타그램을 훑어 내린다. 몇 번의 손동작만으로 순식간에 나만의 우주로 빠져들 수 있다. 내 취향이 담뿍 담긴 그곳에서는 고민할 거리가 별로 없다. 기분에 따라 음악 하나에 심취해 밤새 흥얼거릴 수도 있고, 관심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파고들며 공부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에겐 어떤 설명도 불필요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있는 그들과 나눌 것은 안전하고 편안한 공감밖엔 없으니까.


이 안락한 우주에 끼어들기를 즐기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내 남편이라는 존재. 그에게도 자신만의 우주가 있다. 각자의 우주는 음악적 취향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굳이 앱을 열어 확인할 필요도 없이 멀리서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피곤함을 부르는 신나는 노래, 괴기스럽게 웃는 BJ의 목소리, 의미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만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나도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고 무언가를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내 세상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세상을 멋대로 간섭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필수였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그는 종종 이런 말을 건네왔다.

“이거 같이 보자. 같이 보려고 기다렸어.”

몇 번은 호기심에 응했지만, 몇 년을 함께 살아온 지금은 모를 수 없다.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다는 것을. 그가 추천했던 개그 영상은 대체 언제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밥을 먹으면서 보기에는 비위가 상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주제가 많았다. 특히 고민 상담을 소재로 하는 유튜버가 몇 분도 안 되는 대화로 사연자의 성격을 판단해, 멋대로 조언하는 모습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다 보니 섬네일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면 거절했다. 영상이 너무 길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아니면 이유도 없이 내키지 않는 날이면 가차 없이 거절했다. 그리고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보는 내내 머릿속을 스치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쯤 되면 추천을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머나먼 우주를 넘나드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었던 주말, 그가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제목은 ‘룩백(Look Back)’, 체인소 맨이라는 액션 만화를 그린 일본 작가의 작품이었다. 체인소 맨은 워낙 인기가 있었던 터라, 나도 1화를 챙겨 봤었다. 독특한 세계관과 액션은 재미있었지만, 남자 주인공이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암울한 상황에 낙담하던 그가 천박한 동기로 의지를 다잡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1화에서 하차했다. 그런 작가의 영화라니, 내용을 듣기도 전에 보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57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과 함께 보기 위해 OTT가입까지 했다는 남편의 노력에 못 이겨 자리에 앉았다.


룩백에는 두 소녀가 나온다. 교내 신문지에 네 컷 만화 두 편을 매주 실으며, 친구들과 어른들에게 그림 실력을 인정받는 열한 살의 후지노. 어느 날 선생님의 부탁으로 한 편의 만화를 쿄모토라는 친구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쿄모토는 등교 거부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이었다. 두 사람의 네 컷 만화가 신문지에 실린 첫날, 후지노는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쿄모토가 그린 네 컷의 ‘방과 후’라는 배경 그림은 감탄할 만큼 수준급의 실력이었다. 나란히 실린 탓에 자신의 만화가 초라해 보였다. 그를 용납할 수 없었던 후지노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인물화에 관한 책을 사고, 그림 잘 그리는 법을 검색하며, 연습장을 몇 권이고 채워내며 그림에 몰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소녀의 만남과 성장. 영화에는 잔잔하고 따뜻한 음악을 배경으로 책상에 앉아 만화를 그리는 두 소녀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순수하게 그리고픈 마음을 차곡차곡 키워나가는 그 모습을 보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슬픈 장면도 아닌데 왠지 기특하고 아련하고도 아쉬워서, 울다가 웃다가 또 울었다. 57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후지모토 타츠키의 ‘룩 백’ 만화책을 주문했고, OST를 들으며 장면 장면을 곱씹었다. 아마도 내 안에 존재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이끌린 것 같았다. 분명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봐 주기는커녕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는 나에게 그 영화는 무어라 말을 걸고 있었다. 단숨에 인생 영화로 등극한 룩백, 그 영화의 포스터를 나는 1년 가까이 카톡 프로필로 남겨두고 있다. 다행히도 남편은 나를 비웃지 않았다. 그날 볼멘소리로 자리에 앉아놓고, 웃다가 울던 나를 위해 휴지를 건네줬다. 만화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감탄하는 나를 보고 빙긋 웃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크고 작은 일은 늘 존재했다. 억지로 끌려간 영화관에서 인생 영화를 발굴했고, 넘어지는 게 무서워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스키에 눈을 떠 노르웨이 겨울 여행을 꿈꿨다. 상상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게임에 빠져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한국 사회에서 게이머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안락하고 편안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알고리즘은 완벽한 우주를 만들어 준다. 불편하고 관심 없는 정보 따위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새로운 시도를 막아서는 단단한 벽이 되기도 한다. 수없이 거절당하면서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가 없었더라면, 알고리즘에 갇혀 평생 룩백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몇 주전 남편은 웹툰 하나를 추천했다. 제목은 ‘괴력난신’, 고작 네 글자에 달아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알고리즘에는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여전히 그의 추천은 달갑지 않을 때가 많다. 함께 차를 타는 순간에도 도를 닦는 마음으로 걸 그룹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새 후렴구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가끔은 처음 듣는 노래의 가수를 나도 모르게 맞출 때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불편한 다른 취향에 너그러울 수 있다면, 수억 광년을 순식간에 날아올라 다른 우주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여행에는 예측 못 한 감동이 선물처럼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러니 감히 제목 때문에 시도하지 못한 괴력난신을, 딱 10화까지만 보자고 다짐했다. 광활한 우주를 넘나드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유롭게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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