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6주차
글을 다시 쓰고 있다.
아침마다 다시 모닝 페이지를 쓰고, 브런치에 목표한 주제에 맞춰 글을 발행하고 있다. 문득 스친 소재를 놓치기 싫은 마음에 메모하는 일까지. 그 모두가 기다렸던 일처럼 반가우면서도 두렵다. 그 이유는 이렇게 ‘다시’를 쓰는 일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4년 전 처음 글을 썼다. 퇴근 후 작은 일탈로 시작한 일에서 잊고 있던 ‘쓰고 싶은 마음’과 만났다. 출퇴근길,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글을 썼다. 짧은 점심시간에 글을 고치기도 하고, 졸리는 눈을 비비며 늦은 시간까지 책상 앞에 앉았다. 단어 하나에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어떤 이야기도 쓸 수 있고, 쓰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쓰는 것이 즐거웠다. 푸른 들판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종이 위를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짧게 스치는 생각이 아니라 크고 흐름이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주제를 두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자꾸 내 부족함이 드러났다. 분량 채우는 일이 버거워졌고, 어렵사리 써낸 글을 다시 읽을 땐 아쉽게만 보였다. 모자람을 채우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하지만 읽을수록 비교되는 내 부족함에 못난 질투심만 커졌다. 처음 겁 없이 빈 종이를 채웠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얀 화면에 한없이 깜빡이고 있는 커서를 보면 도망가고 싶었다.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왔고, 또 도망치고 다시 돌아오기의 반복…. 돌아와 쓰는 동안 나는 독립 출판으로 에세이와 소설을 냈다. 작은 방에는 그때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하루 종일 매달렸던 노트북이 있는 책상, 책의 재고가 포장된 커다란 상자들, 퇴고했던 흔적이 가득한 낱장의 종이, 머릿속 장면을 끄집어내려 크레파스로 멋대로 그렸던 그림까지. 빈 종이를 보고 도망쳤던 나는 흔적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작은 방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모두가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면했다.
창조성이 왜 이성적이어야 하는가? 당신은 또 왜 이성적이어야 하는가? 당신은 여전히 희생을 도덕적 미덕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을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아주 작은 그림도 좋고 단 두 문장도 좋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짤막한 시도 좋다. (아티스트 웨이 186p)
학창 시절에도 빈 종이를 보고 두려웠던 때가 있었다. 미술 시간에 눈앞에 놓인 새하얀 도화지를 보면 겁이 났다. 재능이 없던 터라 밑그림도 채색도 의도대로 마친 적이 없었다. 커다란 4절지라도 받는 날이면, 막막함에 함부로 손댈 수도 없었다. 나에게 그림은 그저 점수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는 즐거움은 재능이 있는 친구들의 특권이라 여겼다.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짐작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 그냥, 그냥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느닷없이 이십 대 중반에 불쑥 생겨난 마음이 우스웠다. 이제 와서 뭘 하겠다고, 게다가 재능이 없다는 건 무려 12년간의 교육 과정으로 입증한 사실이었다. 그저 어처구니없는 변덕이라 생각하고 외면했다.
한가롭게 친구와 카페에 있던 날이었다. 그때는 시간 여유가 생기면, 근처에 살고 있던 친구를 불러내 대형 카페에 가곤 했다. 그 친구와 만나면 마주 앉아 수다를 떨기보다 나란히 앉아 각자 무언가를 했다.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고 와 작업을 하면서 곁에 있었다. 그날, 친구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에도 낙서처럼 그림을 곧잘 그리던 친구라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나 그림 그리는 거 가르쳐줘.”
이상한 건 나였다. 불쑥 그림을 가르쳐달라고 뱉어버린 나. 머리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말에 놀라 정정하려던 순간-
“그래, 문구점에 가자. 제일 가까운 데가 어디더라?”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구의 대답은 가벼웠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확신에 차 보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그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렸다. 전공을 산업 디자인으로 택했고, 그를 위해 수능이 마친 후에도 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그렸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친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운 문구점으로 향했다. 문득 학창 시절 숱하게 그림을 망쳤던 순간이 떠올랐다. 두려웠지만, 어쩌면 배움의 문제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능통한 친구가 방법만 알려준다면, 나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망설임 없는 친구의 발걸음을 뒤따르며, 앞으로 펼쳐질 수업에 설렜다. 친구는 준비물로 갱지가 두껍게 엮인 연습장과 4B 연필을 택했다. 다시 카페로 돌아와 연필심이 많이 드러나도록 길게 깎았다. 눈앞에는 광활한 갱지가 펼쳐져 있고, 오른손에는 연필이 들려 있었다. 수업이 막 시작되려 했다.
“자- 그럼 이제 저기 앉아 있는 사람을 그려봐.”
“어? 그냥 그리라고?”
“응. 그리고 빨리. 5분이 안에 빠르게 그려봐.”
잘은 모르지만, 미술학원에 가면 해야만 하는 기초가 있다고 들었다. 커다란 종이에 선을 긋고, 면을 채우는 뭐 그런 것. 큰 연습장을 사길래, 그런 걸 하는 줄 알았다. 방법론에 한참은 설명할 줄 알았던 선생님은 한 마디를 던져두고, 무심하게 자신의 노트북을 켰다. 그러고는 아무런 관심 없다는 듯이 다른 일을 시작했다. 나는 당혹감에 애꿎은 연필만 만지작거렸다. 두 손바닥으로도 다 가리지 못할 정도로 넓은 갱지, 오래 묵은 헌책의 속지처럼 누런빛이 도는 종이는 거칠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친구가 지목한 사람을 잠시 바라보다 연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리, 어깨, 긴 팔 위로 생겨난 주름, 다리를 꼰 자세와 그가 앉은 의자까지. 지우개도 없이 선을 이어가다 연필을 뗐다. 갱지 위에는 도무지 그림이라고 부를 수 없는 엉망진창의 무언가가 탄생했다. 몸에 비해 머리는 비정상적으로 컸고, 다리가 자세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시작점을 잘못 잡았던 터라 한쪽 모서리로 치우쳐져 있었다. 창피함에 헛웃음이 났다. 재능이 없다는, 굳이 확인할 필요 없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다 그렸어? 잘했네. 자- 그럼 다음 장으로 넘겨.”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관심도 없는 줄 알았던 친구는 말과 동시에 연습장을 자신의 손으로 넘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을 그려보라고 했다. 마치 처음 마주하는 것 같은 빈 종이에 어리둥절했다. 엉망진창의 무언가를 제대로 보기나 한 걸까? 고칠 가치가 없으니까 그냥 넘기는 걸까? 묻고 싶은 말이 많은데, 선생님은 벌써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다. 이상한데, 분명 이상한 상황인데… 담담하고 또 단호한 친구의 기세에 못 이겨 연필을 다시 붙잡았다. 나는 곁에 앉은 친구를 엉망으로 그려냈고, 연습장에서 손을 떼자마자 친구는 잘했다는 말과 함께 다음 장으로 넘겼다. 어떻게든 그리고, 넘기고, 다시 그리고 넘기고의 반복. 이건 종이 낭비였다. 쓸데없이 종이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 반복 행위에 리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대상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고, 짧은 순간 대상을 관찰하다, 연습장에 그려냈다. 어느새 친구가 넘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숱하게 종이를 낭비했다.
집으로 돌아와 연습장을 넘겨보니, 예외 없이 모든 그림이 엉망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창피하지는 않았다. 그냥 또 멋대로 그리고 싶어졌다. 스스로 연필을 붙잡은 나는 영상 속 인물을 대상으로 삼았다. 대상에는 수없이 많은 선이 존재했다. 그중에 어떤 선을 옮겨낼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었다. 어떨 때는 긴 머릿결에 선을 더 그려 넣고, 또 어떨 땐 기하학무늬 같은 셔츠 주름을 더 그리고 싶었다. 지우개질 없이 무작정 손을 움직이는 그 행위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도톰했던 연습장을 다 써버릴 정도로 크로키에 푹 빠졌다. 친구와 다시 만났을 땐, 새로 산 연습장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망설이던 모습 없이 사람들의 모습을 빈 종이 위에 담아냈다. 곁눈질로 바라보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 드디어 사람 형상을 그릴 수 있게 됐네.”
그 말에 함께 웃음이 터졌다. 분명 처음 그렸을 때와는 달랐다. 전신의 비율이 맞춰졌고, 그림의 위치도 의도해서 그릴 수 있었다. 원한다면 디테일을 넣어볼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여전히 친구한테는 비할 바 없는 실력이지만, 더는 빈 종이가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싶은 대상만 있다면 얼마든지 옮길 수 있었다. 그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못 그려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그리는 행위로 즐거울 수 있다는 걸, 그 친구에게서 배웠다.
물론 변덕쟁이인 나는 그 후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마 다시 연필을 붙잡게 되면 사람 형태를 그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는 그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연히 주어진 그림 그리기 시간에 긴장하지 않는다. 겁도 없이 크레파스를 사고, 파스텔을 사기도 한다. 새하얀 스케치북에 마음이 가는 대로 아이처럼 선을 긋고, 색칠한다. 종이 위에 피어오르는 크레파스의 냄새, 손가락에 묻은 파스텔 가루의 감촉을 그냥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도 그와 같을 수 없을까?
떠도는 생각을 종이 위에 붙잡아 두는 순간을 순수하게 즐길 수는 없는 걸까?
솔직히 말해,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는 잘과 못을 떠나 그냥 욕심 없이 그릴 수 있는 그림과는 확연히 다르다. 쓰고 싶은 마음이 짙어질수록 더 잘 쓰고 싶은 마음도 무섭도록 불어났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더 멋진 문장, 좋은 비유를 찾아 몇 번이고 고쳐 쓸 정도로 가볍지 않다. 빈 종이가 두려운 이유는 바로 욕심 같은 그 ‘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미워할 수는 없다. 몇 번을 고쳐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바라볼 때의 행복도 저버릴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니까.
다만 욕심에 휘둘려 도망치고 싶어질 땐, 친구의 목소리를 떠올려 보겠다고 생각했다.
“다 썼어? 잘했네. 자- 그럼 다음 장으로 넘겨.”
담담하고 확신의 찬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 도망가지 않을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계속 리듬에 맞춰서 다음, 또 다음 글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이렇게 말하겠지.
“축하해. 드디어 멋진 글을 쓸 수 있게 됐네.”라며 함께 웃을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