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슬라임 탐닉기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스퀴시 볼을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 듣는 생소한 단어라,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친구는 한 아이돌이 자신의 가방에 든 물건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와 소개했던 장난감이라고 설명했다. 궁금함에 바로 휴대전화를 열어서 검색해 봤다. 광고성 문구와 함께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공이 보였다. 갖가지 화려한 색감으로 만들어진 그 공의 이름이 스퀴시 볼이었다. 스퀴시, ‘으깨다, 철벅 소리를 내다’라는 뜻의 단어로 손에 쥐고 으깨듯이 만지면서 말랑한 촉감을 즐기는 장난감이었다. 일명 스트레스 볼 이라고도 불리는 이 장난감은 이미 유행하고 있는 듯했다. 문득 그 감촉이 너무 궁금해졌다. 몇 번을 들여다보던 나는 결국 1+1행사 앞에서 결제 버튼을 눌렀다.
며칠 뒤 만지기 아까울 정도로 핫한 핑크색과 오렌지색의 스퀴시 볼 두 개가 도착했다. 영롱한 핫핑크는 선물로 친구에게 보냈고, 핫(?)오렌지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올려놓고 보니 공이라고 하기엔 평평한 바닥면이 존재했다. 그 바닥면 위로 봉긋 솟은 둥근 형태는 종 모양을 닮아있다. 표면이 되는 실리콘 껍질 안에 정체 모를 액체가 가득 담겨있고, 바닥면에 접착제로 마감이 되어 있었다. 망설임 없이 손가락 하나로 꾹 눌렀다. 힘을 주는 만큼 자국을 그리며 움푹 들어가는 표면, 생각보다도 훨씬 말랑하고 부드러웠다. 한 움큼 움켜쥐고 쥐락펴락할 때의 느낌은 꽤 중독적이었다. 내내 손에 쥐고 싶은 마음에 넣고 출퇴근을 같이할 만큼, 그 촉감에 빠져들었다. 하루 종일 얼마나 주물러댔던지 한 달을 가지 못해 바닥면의 마감이 터져버렸다. 있는 힘껏 눌렀을 때, 압력을 견디다 못해 정체 모를 액체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강력 접착제로 급하게 응급처치를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고장 난 녀석을 버리지도 못하고 책상 위 잘 보이는 자리에 올려두었다. 왠지 내 화풀이 상대가 되어주다 지친 것만 같아서 미안하고 또 아쉬운 마음에 고장 난 장난감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한가롭게 유튜브 스크롤을 내리던 날이었다. 우연히 화려한 섬네일 하나에 손가락이 멈췄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신비로운 물체는 내 알고리즘에 처음 등장한 존재였다. 미리 보기에는 두 손으로 무언가를 마구 늘어뜨리는 장면이 나왔고, 순간 터져버린 스퀴시 볼이 떠올랐다. 그와 비교도 안 되게 신축성이 좋아 보이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고, 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새하얀 책상 위에 두 손이 화면의 중앙에 가득 담겼다. 그리고 그 손은 밀가루 반죽 같은 덩어리를 쥐고 있었다. 양손으로 힘껏 늘렸다가 다시 좁히기를 반복하다, 책상 위로 퉁-하고 떨어뜨렸다. 그 움직임은 수타면을 뽑는 중국집 사장님을 떠오르게 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바닥에 늘어진 반죽을 꼬집어 잡아 멀리 던지니, 반죽은 얇은 막이 되어 커다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뭉개 버릴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자,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상에는 그 흔한 배경음악도 없었다. 더빙하는 목소리도 없으니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었다. 그저 요상한 물건이 두 손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를 바꾸고, 글자로 담기도 어려운 소리를 내는 모습을 나는 숨죽이며 지켜봤다. 그 요상한 물건의 정체는 슬라임이었다. 주로 아이들이 갖고 노는 슬라임은 물풀, 붕사, 글리세린 등의 원료를 섞어 만든 장난감이다. 한참 유행했던 때가 있는 터라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저 좀 말랑한 찰흙이겠거니 하고 여겼던 나의 고정관념이 그 영상 하나에 산산이 부서졌다. 슬라임은 제품에 따라 모양이나 색이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도 만졌을 때의 질감이 천차만별인 것 같았다. 부드러운 반죽 같은 슬라임, 물처럼 쏟아져 내릴 듯이 출렁이는 슬라임, 셔벗처럼 미세한 알갱이들이 모여있는 슬라임까지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눈으로 보는 그 손맛을 상상하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다. 먹방도 아니고 고작 슬라임 만지는 영상에 군침을 흘리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 후 짬이 생길 때면 고요한 공간에서 슬라임 영상을 탐닉했다. 자꾸 보다 보니 참을 수 없었다. 만지고 싶었다. 손으로 움켜쥐고, 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지르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질 좋은 슬라임은 하나에 만원 정도였다. 종류별로 담다 보면, 어느새 10만 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어른이 되면 갖고 싶은 것쯤이야 언제든 살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 그땐 몰랐다. 누가 말리지 않아도, 심지어 여윳돈이 있어도, 고작 장난감 따위에 10만 원을 쓰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하는 수 없이 영상으로 아쉬움을 달래던 어느 날, 볼 일이 있어 다이소에 들렀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보던 그때, 운명처럼 마주쳤다. 한 손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에 화려한 색감으로 담겨 있는 세 종류의 슬라임을. 가격은 단돈 이천 원!
‘사랑해요, 다이소….’
원래의 목적도 잊은 채 슬라임 세 통을 껴안고 집으로 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뚜껑을 열었다. 폭- 손가락 하나를 넣어보자 물컹한 질감이 느껴졌다. 책상 위에 꺼내두고, 수도 없이 봤던 유튜버의 손놀림을 따라 했다. 결론적으로 다이소 슬라임으론 영상을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용량도 작았고, 탄성도 수축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지나치게 끈적거려 손에 달라붙었고, 길게 늘이려고 하면 툭하고 끊어져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괜히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다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서랍을 마구 뒤적이다 구석에 박혀있던 상자를 하나 꺼냈다. 상자 안에는 길쭉한 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금색 클립이 한가득 있었다. 예쁜 모양에 속아 샀는데, 각진 모양이라 종이에 끼우려면 정성을 들여야 했다. 급하게 쓰면 종이가 찢어지다 보니 언젠가부터 쓰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것. 나는 망설임 없이 클립을 한 움큼 쥐고, 슬라임에 넣었다. 말랑한 슬라임에 납작한 클립이 마구 섞여 들었다. 클립끼리 부딪치면서 공간을 만들었고, 단조로운 느낌만 내던 슬라임에 공기가 섞여 들었다. 물방울 같은 작은 기포들이 연달아 생기고, 비벼 만질 때마다 뽀드득, 뽁- 하고 소리를 냈다.
‘와, 이거구나! 이런 느낌이겠구나….’
뭔가를 만들어 냈다는 기쁨도 잠시, 아쉬움이 짙어졌다. 바탕이 되는 슬라임이 양이 조금 더 많았더라면, 아님 조금 더 푹신한 재질이었다면, 아님 클립이 아니라 더 입체적인 무언가였더라면…. 모자란 부분이 자꾸 떠오르고, 새롭게 넣을 재료는 없는지 집안을 둘러보게 했다.
자본주의가 냉정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다이소 슬라임을 살 때도 잊지 않고 있었다. 분명 기대만큼은 아니라도 호기심을 가라앉힐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부족한 슬라임을 만질수록 감질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달 뒤, 다음 달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장바구니에 있는 슬라임을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거창하진 않지만 나름의 자금 계획을 세우고, 재미로 봤던 영상을 분석해서 보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종류 중에서 어떤 아이를 선택할지 손에 든 감각을 상상하며 신중히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이소 슬라임을 만졌던 날의 한 달 하고도 이틀 뒤, 드디어 상상만 했던 슬라임이 내 책상 위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연 상자에는 일곱 종류의 슬라임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의식을 진행하듯이 손을 깨끗이 씻고, 핸드크림을 듬뿍 발랐다.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슬라임 하나를 꺼냈다. 하얀 바탕에 노란색과 흰색의 알갱이 같은 새끼손톱만 한 블록들이 섞여 있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콘 샐러드 콰작’. 뚜껑을 열자마자 이름처럼 달콤하고 고소한 콘치즈 냄새가 진동했다.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이끌려 하얀 반죽을 집게 손으로 꼬집듯이 비틀었다. 꾸덕꾸덕한 녀석은 손가락에 따라붙는 것 같다가도 곧바로 떨어져 나갔다. 분명 그토록 원했던 감촉인데, 낯설고 생소했다. 왠지 금지된 것에 손을 집어넣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 호기심을 참지 못해 튀김 반죽에 손을 넣었다 혼이 났던 어린아이처럼 주눅이 들었다.
잠시 주춤대다 용기를 내 집게손가락으로 깊게 눌렀다. 우두둑, 가만히 있던 블록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툭- 하고 무언가가 끊어졌다. 다급하게 통에서 그 녀석을 꺼내고 양손으로 터뜨릴 듯이 눌렀다. 폭신한 질감 사이로 무수한 알갱이가 내 손바닥 안에서 와글거렸다. 힘껏 늘렸다 다시 있는 힘껏 찌그러뜨리기를 반복했다. 알갱이들이 비벼지면서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사이에 공기가 스며들었다. 덕분에 반죽에는 물방울 같은 작은 기포가 생겨났다.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 내 손 때문에 기포는 생기자마자 연달아 터지며 뽁뽁뽁 비명을 질렀다. 공기를 머금은 반죽은 점점 푹신하게 부풀고, 옥수수 알의 모서리들은 손바닥을 스치며 끊임없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예쁜 색감과 달큼한 향기, 쉼 없이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 그리고 견딜 수 없이 다채로운 촉감까지 그 모두가 그토록 원했던 ‘손맛’이었다. 이름 그대로 옥수수 샐러드를 콱 베어 문 것만 같은 즐거움에 손바닥이 붉어지도록 한참을 놓지 못했다.
너무 좋아서 TV를 보면서 만지고, 남편과 이야기하다가도 집어 들었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냉장고에 잠시 넣어두었다가 꺼냈다. 찹찹해진 슬라임은 본래의 질감보다 딱딱해졌다. 시리도록 차갑고 땅땅한 슬라임을 두 손으로 주물렀다. 처음에는 토라진 듯이 뻣뻣하게 제멋대로 굴다가도, 어느새 또 화가 풀려 말랑하게 쥐는 대로 움직이는 그 촉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손안의 온기와 함께 더위가 가시는 건 기분 좋은 덤일 뿐.
슬라임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개봉 후 2주 정도 쓰고 나면, 바탕이 되는 베이스의 성질이 변한다. 처음보다 묽어지거나 끈적거려서 만지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뚜껑을 열지도 않은 슬라임의 유통기한에 미리부터 아쉬웠다. 일곱 개를 한 번에 열었다가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한 주에 한두 개씩 새로운 슬라임을 꺼냈다. 마치 진짜 좋아하는 사탕을 오래도록 아껴먹고 싶은 아이처럼, 새로운 슬라임을 꺼낼 때마다 설렜다.
파인애플 젤라또, 에프리콧 팝콘 아작, 물방울 요정 지글리, 체리쥬빌 쿠키, 딥말차푸딩 지글리, 페어청 유과 난사 눈꽃. 이름만으로도 먹음직스럽고, 화려하고 촉감 또한 다양한 컨셉의 슬라임과 두 달 정도를 보냈다. 남편이 이상하게 바라볼 정도로 손에서 슬라임을 놓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조용한 방 안에서 음악도 없이 손맛에만 집중할 때가 가장 즐거웠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 슬라임을 맛봤다.
아티스트 데이트, 아티스트 웨이를 읽는 사람이라면 꼭 마주하는 단어다. 작가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내면의 어린아이와 단둘이 노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몇 개월 촉감에 빠져 어린아이처럼 굴었다. 방해받지 않도록 남편에게 선전포고 하듯이 말하고, 문을 닫은 방 안에서 혼자 놀았다. 이 별것 놀이를 하려고, 나는 몇 가지 장벽을 넘어섰다. 슬라임은 어른이 갖고 놀기엔 유치한 장난감이라는 인식,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쓰기엔 과해 보이는 돈과 시간, 투자 대비 쓸모없어 보이는 ‘재미’라는 감정까지. 어쩌면 처음 슬라임을 마주했을 때의 망설임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뿐 아니라 그 모두가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슬라임을 멋대로 주무르고 만지며 느낀 쾌감 역시 그런 금기를 깨는 것 같은 기분에 더 극대화된 게 아닐까?
고작 슬라임 가지고 멋대로 상상하는 나. 뭐- 상상에 불과하다면 새로운 작은 취미를 하나 발견한 것이고, 나도 몰랐던 금기를 깬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축하할 일이다. 벌써 설렌다. 다음엔 어떤 장난감을 발견하게 될까.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될까. 또 다른 금기를 발견하게 될까.
호기심이 슬라임처럼 자꾸 부풀어 말랑거린다.
어떤 유치한 상상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 그게 바로 나의 아티스트 데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