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의 쓸모

아티스트 웨이 5주차

by 리을

인생의 가장 어두웠던 때를 떠올려보면, 청소년기 때가 떠오른다. 원치 않는 공부에 묶여 하루의 몇 시간이고 책상 앞에 강제로 앉아 있어야 했던 그 시절. 어른들은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공부를 잘하면 뭐든 쉽게 이룰 수 있다고.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기보다 현재를 그저 공부만 해야 하는 시기로 규정하는 게 슬펐다.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 해도 열여덟의 마음과 스물여덟의 마음이 같을까? 같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땐? 만약 진짜 원했던 일이 몇 년 뒤에 하고 싶지 않아진다면? 이미 그 마음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흥미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누가 책임져 줄 수 있을까…. 내게는 단 한 번 뿐인 10대를 좁디좁은 책상에서 보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재를 희생하면서 원치도 않는 공부에 매달렸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특출난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말을 외면할 만큼 용기 있지도 않았다. 하루하루 억울함 속에서 몇 번이고 다짐했다. 타의에 의해 해야만 하는 일은 딱 열아홉까지만 하자고.


하지만 스무 살이 되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원하던 학과에 진학해도 해야 하는 일은 끝없이 나타났다. 수능을 넘어서니 학점이라는 압박이 존재했다. 기대했던 전공 수업에서는 작품을 만드는 내내 담당 교수의 취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음에 들지도 않는 초안을 붙들고, 교수의 비평을 받아내며 완성을 위해 애썼다. 한 학기에 두 번, 작품 제출 마감일에는 같은 학년 모두가 모여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평가를 위해 쭉 늘어선 동기들의 작품 사이에 내 것은 볼품없이 보였다. 몇 개월 내내 시름했던 결과물이 초라해 보여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만 싶었다. 마치 모든 과정이 내게는 재능이 없다고 끊임없이 확인하는 절차 같았다. 왠지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유치한 시험 문제를 낸 수업에 일부러 낙제점을 받고, 그 교수를 평가했다고 자위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전공, 동아리, 선후배, 동기, 그 어디에도 정붙이지 못한 채 방황하는 스물두 살이 되어 있었다.


크든 작든 전진을 이루려면 신념의 발판이 필요하다. 댄스 수업을 들을 때도, 새로운 매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첫발을 떼려면 신념이 있어야 한다. (아티스트 웨이, 153p)


학교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자원봉사’ 게시판에 들어갔다. 긴 방황이 지겨웠던 탓일까? 아니면 무력한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용기였을까? 그곳에서 야간 학교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수학 선생님을 하겠다고 지원서를 보냈다. 처음 그곳에 갔던 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역에 내려서 걷는 내내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닌지, 내가 무슨 도움이 되기는 할지, 창피만 당하고 거절당하는 것은 아닌지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해보고 싶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투성이인 일상에 오랜만에 들려온 그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낡은 건물 지하에 조심스레 발을 들여놓았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밝은 조명 아래 아늑한 공간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후 7시부터 문을 여는 야학에는 여러 과목의 수업이 있었다. 한글을 배우는 기초반부터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는 초등, 중등, 고등 수업까지 교과목별로 있었다. 선생님을 맡는 사람은 대학생이거나 30대 직장인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배울 기회를 놓쳤던 부모님 세대의 어머님과 아버님이셨다. 낮에는 전혀 다른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이 밤이 되면 작은 지하의 조명 아래 모였다. 그곳에선 나이와 본업을 잊고 학생과 선생님으로 마주했다. 아르바이트로 수학을 몇 번 가르쳤던 경험이 있던 터라, 첫 수업이 긴장되지 않았다. 수업료를 받지 않으니 더 부담이 없을 거로 여겼다. 가벼운 마음으로 교실 앞에 섰던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당하고 말았다. 반짝이는 눈으로 내 움직임을 따라오는 시선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더 쉬운 표현을 떠올리고, 준비한 자료보다도 많은 내용을 알려주고 싶었다. 혼자 칠판 앞을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마치 재롱을 떨듯 콩콩 뛰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오래도록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커다란 목소리로 쉼 없이 떠들다 보니 한 시간 반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나버렸다. 종소리에 교실을 나와서도 흥분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어머님, 아버님의 배움을 향한 순수한 눈빛이 내 안의 무언가를 뜨겁게 만들었다. 다음 수업이 기다려져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 그곳에서 수학 선생님으로 지냈다. 초등, 중등, 고등을 오가며 많은 어머님, 아버님, 또 자퇴한 어린 학생들과 함께 검정고시를 치렀다. 평균 60점이 합격선인 검정고시에서 수학이라는 과목은 주력일 수는 없었다. 합격 점수를 위해서는 다른 과목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하지만 과락을 면하기 위해서는 최소 40점은 넘어야만 했다. 과년도 문제를 몇 차례 분석하고, 40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학년별 전략을 세웠다. 좀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교재를 만들고, 주말에는 나머지 수업반을 열고, 출장 수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험일에는 시험장으로 응원하러 갔고, 합격 소식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함께 맛봤다.


누가 봐도 쓸데없는 일이었다. 전공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고, 등하굣길과는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먼 거리였다. 이력서에는 봉사활동이라는 한 줄을 적을 만한 스펙에 불과했고, 활동 내내 노력에 대한 보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 어디에서도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 호기심에 작은 지식을 나눴을 뿐인데,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낮은 자존감으로 방황했던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분에 넘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뜨거워진 내 안의 무언가는 야학 수업뿐만 아니라 도망치고만 싶던 학교생활도 바꾸어 놓았다. 환상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의 스무 살을 놓아주고 현실을 마주했다. 중고등학교 때 고심 끝에 고른 전공을 후회 없이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낙제점을 받았던 수업을 다시 듣고, 학점을 떠나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에 집중해 보기도 했다. 원치 않았던 인간관계는 끊어냈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학교 밖 인연들과 만나며 남은 대학 생활을 마쳤다.


30대 후반인 지금, 돌아보면 크고 작은 어두운 시기가 늘 있었다. 사회에 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온 힘을 다해 눈앞의 일을 헤쳐나가다 보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타의에 의해 해야만 하는 일들로 삶을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그로 인해 현재를 희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무기력해지고 만다. 자꾸 쉬고만 싶고, 어떤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 그렇게 침대 속에만 있고 싶어지는 나를 밖으로 불러냈던 건, 언제나 야학 선생님처럼 쓸데없는 경험이었다. 문득 스친 ‘하고 싶은 마음’에 만화책을 꽂을 수 있는 책장을 만들러 목공방으로 향했다. 독서 모임에 나갔고, 철학과 심리학 책을 함께 읽으며 낯선 사람들과 상처를 나눴다. 어떤 경험을 하든, 처음 문을 두드리는 일이 쉬운 적은 없었다. 중력보다 무겁게 끌어당기는 안락함과 무기력함을 뿌리치는 게 단박에 되지 않았다. 매번 첫 시도가 바보처럼 보일까 두려웠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돈과 시간을 쓰는 것 같아 망설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야학을 떠올렸다. 벗어나고 싶었던 일상을 지탱해 주었던 건, 의무감이 만든 동기 부여가 아니라 쓸데없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딴짓’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어느새 나는 고민을 하느라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보내더라도, 용기를 내 딴짓을 벌리는 사람이 되었다. 작은 세상을 내 손으로 짓기 위해 미니어처 공방을 찾았고, 앙금으로 꽃을 만들어 떡케이크를 만들었고, 타로카드로 점 보는 법을 배우고, 복싱이나 크로스핏 같은 새로운 운동을 시도했다. 그러다 우연히 글쓰기와 만났다. 마치 소모품처럼 딴짓을 바꿔대던 내가 이상하게도 글 쓰는 일은 좀처럼 놓지 못했다. 재미로 소량 책을 만들다가 장편 소설을 쓰고, 독립 출판으로 찍어 내놓고는 방구석에 쌓아두고 있었다. 그렇게 변덕처럼 왔다가 사라질 것 같던 쓰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외면하려다 결국 다시 돌아와 쓸데없이 늦은 밤까지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째서 딴짓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보기로 했다. 눈앞에 크기도 가늠할 수 없이 아주 커다란 퍼즐 판에 작은 조각들을 찾아서 끼워 맞추는 중이다. 내가 수도 없이 벌리는 딴짓이라는 작은 조각들은 도무지 같은 퍼즐 판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모양도 색도 다르다. 맞춰 오던 쪽에서 보면 전혀 쓸모없는 조각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대편 모서리 어딘가에 그 작은 조각의 자리가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 가늠하기 어렵겠지만, 계속해서 맞춰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모두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하나의 작품이 될 거라는 제멋대로인 상상.


커다란 판을 완성하기 위해 더욱 부지런히 쓸데없는 짓을 하겠다고 멋대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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