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4주차
‘일몰 보러 다대포에 가자.’
책을 읽다 충동적인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일몰을 보러 어딘가로 향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3년 전 하단에 살 때는 10분만 걸으면 낙동강 옆 산책길에 닿을 수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다 하늘이 유난히 붉게 물드는 날이면, 그 산책길을 향해 뛰쳐나갔다. 해는 서쪽으로 향할수록 빠르게 움직이니까, 서둘러야 했다. 건널목목 앞에서 행여나 노을이 사라질까봐 종종 걸음으로 하늘과 붉은 신호등을 번갈아 봤다. 이게 뭐라고 초조할 일인가 속으로 웃다가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시 달렸다. 숨을 몰아쉬며 닿은 곳에는 강 너비만큼 탁 트인 공간 위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색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다.
몇 개월 전 성격검사에서 ‘충동성’이 평균보다 월등히 높게 나왔다. ‘매우 그렇다, 그렇지 않다’ 항목을 몇 개 누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10점 만점에 9점 가까이 나왔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상담사는 성격 검사가 우월성을 가리기 위한 수단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평균과 달리 높거나 낮은 부분들로 빚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녀의 그 부드럽고 자상한 설명에는 모순이 있었다. 남들과 다른 성격은 개성이지만, 결국 그 때문에 사회에서 마찰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나의 ‘충동성’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었다.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납득할 수 없었다. 함께 상담에 참여했던 남편에게 물었다.
“다들 충동적인데, 억누르고 사는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하지만, 여보 정도는 아닐걸? 확실히 충동적인 성향이 높긴 하지.”
멋진 하늘을 보면 밖으로 뛰쳐나가 보고 싶고, 인스타로 노고단의 운해를 보면 가고 싶었다. 주변에 콘서트홀이 새로 생겼다면, 클래식에 관심 없어도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멀쩡히 퇴근하다가도 핸들을 꺾어 가보지 않은 길로 가고 싶지 않다고? 내 머릿속은 쉬지 않고 틈날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렸다. 일반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문득 ‘충동’이라는 단어가 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지 궁금해졌다. 충동적으로 옷을 샀다, 충동적으로 배달을 시켰다,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자꾸 되뇌다 보니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고요한 마음에 충동이라는 물 한 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물결은 점차 잠잠해지다 사라진다. 다시 고요해진 수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물 한 방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그래서 진실이 아니라고 의심한다.
4주 차 진실성 회복하기에서는 그 충동성에 주목하는 듯했다. 현실, 사회적 위치, 돈, 시선 등에 떠밀려 외면했던 감정들. 어쩌면 순수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충동’이라는 글자에 묶어 거짓이라고 치부해 왔던 게 아닐까.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더 내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작가가 던진 작은 질문에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마구 떠올랐다. 그리고 그 충동적인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상에 끼워 넣어 해내고 싶어졌다.
오락물이 없다면 우리는 다시 감각의 세계로 몰입하게 된다. 당신의 시야를 막고 있는 신문을 치우면 기차는 시시각각 변하는 관람 갤러리로 바뀐다. 푹 빠져 있던 소설을 내려놓고 정신을 빼놓는 TV를 없애면 저녁 시간이 광활한 사바나로 바뀐다.(아티스트 웨이 153p)
이 문구를 읽다 결심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대포에서 일몰을 보고야 말겠어!’
지독하게 막히는 수요일 퇴근길, 복잡한 시내를 뚫고 20분은 더 달려야 다대포 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었다. 가는 내내 흔들리던 마음이 서쪽 하늘이 훤히 보이는 낙동강 강가에 다다라서야 사라졌다. 옅은 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였고, 설익은 노을은 연노란색으로 말하고 있었다. 오늘 일몰은 역대급일 거라고. 조수석 창문을 힐끔힐끔 바라보다 또 초조한 마음이 번졌다. 다행히도 일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 나는 바다에 닿았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해변 위로 일출만큼이나 웅장한 일몰이 시작되었다. 푸르른 하늘이 점차 붉은빛으로 물들고, 비단결처럼 고운 구름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신발 너머로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에 견디다 못해 결국 신발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바다에 발을 담갔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발밑의 모래가 움직이며 간지럽혔다. 늘 한 몸처럼 가지고 다니던 헤드셋도 벗어던진 지 오래였다. 음악은 필요하지 않았다. 파도 소리로 충분했다. 산 너머로 사라지려는 오늘의 해는 어느새 하늘을 태워버릴 듯이 붉다. 그를 닮아 붉은 파도가 넘실거리며 끝도 없이 밀려들어 내게 닿았다. 긴 해변을 걸으며 쉼 없이 보고, 듣고, 느꼈다.
충동? 거짓과 진실? 그런 건 모르겠다. 늘 이렇게 제멋대로 떠오르는 ‘하고 싶은 일’들이 작가가 되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다를 쉼 없이 거닐었던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내가 놓친 수많은 일몰을 아쉬워하며 기꺼이 또 오자고 다짐했다.
달리 더 이유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