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필요한 지금

아티스트 웨이 3주차

by 리을

‘아티스트 웨이’를 읽다보면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쓰고 싶고, 작은 소망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내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매번 그런 순간만 있지 않다. 불편한 감정과 맞닥뜨리고, 외면하려 했던 목소리를 듣게 될 때도 있다. 3주차 ‘잃어버린 자아 찾기’에서 그런 순간을 마주했다.


우리가 방치했던 존재, 즉 우리 자신을 되찾으려면 잠시 탐정처럼 행동해야 한다. 다음 문장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기억과 잃어버린 자아의 조각을 되찾고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아티스트웨이 134p)


작가는 스무 개의 문장에 빈칸을 채우며 기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장난감, 게임, 영화, 좋아하는 악기까지 거침없이 움직이며 빈칸을 채우던 펜이 한 문장에서 멈췄다.


기분이 조금 좋아지면, 나는 나 자신에게 할 것이다. (아티스트웨이 135p)


두어 번 반복해서 읽다가 괜히 손에 든 펜을 달깍거렸다. 머릿속도 마음도 고요했다.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는 게 무슨 의미지? 기분이 나쁜 내가 자신에게 해주지 않는 게 있다는 걸까?’ 말장난 같은 질문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짧은 문장과 시름하다 다른 칸부터 채워보기로 했다. 다른 문장은 어려움 없이 채워졌고, 나는 금세 그 문장으로 돌아왔다. 다시 찬찬히 읽어봤지만, 읽을수록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웠다. ‘번역이라 이해가 안 되는 걸까? 기분이 좋아져서 무언가를 한다는 말은, 기분이 나쁜 내가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걸까? 보통은 그 반대잖아?’ 하루를 반추해 보면 기분을 좋아지게 하려 애쓴다. 일터에서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었던 나를 달래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했다. 그리고 안락한 침대에 조금이라도 빨리 누워 쉬고 싶어 했다.


‘아...!’


순간, 변명처럼 늘어놓던 말에 얻어맞았다.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행동에 과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얼마나 있었을까. 순간적으로 기분을 좋게 하는 배달 음식이, 침대에 조금이라도 빨리 눕는 게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었을까. 좀 좋은 기분으로 퇴근했더라면, 무기력하게 보냈던 그 수많은 저녁을 다르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나는 나쁜 기분에 얼마나 휘둘리고 있었던 걸까…? 머쓱하고 당황스러웠다. 여전히 비어 있는 문장을 남겨두고 다시 열아홉 개의 문장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눈에 띄는 두 문장을 찾아냈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즐기는 활동은 낯선 장소 탐험하기였다.

완벽한 어린 시절을 보냈더라면 지금쯤 오지 탐험가 겸 작가가 됐을 것이다. (아티스트웨이 135p)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자주 들었던 20대. 어떤 날은 가능성이 무한하게 보이다가도, 또 다른 날에는 촛불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힌 듯했다. 한 발짝 내딛기도 두려운 감정이 밀려올 때면, 나는 낯선 장소로 향했다. 지하철, 버스, 기차를 가리지 않고 가본 적 없는 곳에 내렸다. 이어폰으로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지도를 보지 않고, 일부러 길을 잃었다. 양 갈래 길에 서면 순간의 느낌에 따라 멋대로 길을 정했다. 머물고 싶은 의자가 있으면 앉았고, 더 가고 싶지 않은 골목을 마주하면 재빨리 돌아 나왔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다가 예측 못 한 풍경과 마주하다 보면, 정체 모를 두려움은 사라졌다.

주로 하굣길에 했던 짧은 여정이 몇 박 며칠의 여행이 되었고,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이 되기도 했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을 무턱대고 혼자서 한 달간 유럽으로 가보겠다고 선언했던 나. 자금 준비부터 여행까지 마냥 즐겁지 않았다. 첫 도착지였던 파리에서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 눈물이 왈칵 나올 뻔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앉았을 때 느꼈던 따스한 위압감을 기억한다. 베를린의 이름 모를 교회의 미사에서 들었던 독일어의 아름다움을 기억한다. 프라하에서 마주친 한국인의 친절함, 베네치아에서 봤던 눈물 나게 아름다운 야경, 천재 가우디의 경이로운 집념이 가득했던 바르셀로나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 모두가 고독이 주는 위로였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고독에 도전해 보자.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당신 자신에게 집중하는 습관을 들여라. (아티스트웨이, 137p)


몇 년 전부터 보고 싶은 일출이 있었다. 차디찬 겨울날, 동해에 우뚝 솟은 문무대왕릉에 해가 떠오르면- 마치 바다가 끓어오를 듯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습도와 온도가 적절히 맞아떨어져야 볼 수 있다는 그 명장면을 몇 년 내내 보러 가는 상상만 하고 있다. 어디든 훌쩍 떠났던 나는 오간 데 없이, 늦은 밤 운전을 걱정하고 혼자 묵을 숙소에서 외로움을 상상했다. 그렇게 함께 갈 이가 없다는 핑계로 아까운 겨울을 몇 번이고 흘려보냈다. 어쩌면 망설였던 문장을 보자마자 ‘혼자 여행’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바로 떠올려 놓고 한참을 망설였던 건,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이 어색해졌기 때문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지금의 나는 홀로 훌쩍 떠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다.


혼자가 낯선 지금, 내게는 일부러 고독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수시로 좋거나 나빠지는 기분은 저 멀리 던져두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그 순간을 선물하고 싶다. 올겨울 문무대왕릉 일출을 두 눈에 담으려면- 처음 가는 장소에서 기꺼이 길을 잃었던 작은 여정부터 도전해 봐야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적어본다.


기분이 조금 좋아지면, 나는 나 자신에게 홀로 떠나는 여행을 선물할 것이다.


문무대왕릉.JPG 문무대왕릉, 경주시 관광자원 영상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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