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방 - 2

아티스트 웨이 7주차

by 리을

“꼭 올해 해야 해? 내년에 나가도 되잖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에게 되묻던 말이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남편이 물어왔다. 혼자 끙끙대는 모습이 안쓰러워했을 채근에 가까운 질문. 그래, 포기하면 될 일이었다. 당장에라도 북페어 참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올해는 여유롭게 북페어를 관람하고, 내년을 준비하면 그뿐이다. 소설을 더 단단하게 다듬고,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작업에 집중해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왜 놓지 못하고 있는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희망과 절망을 오가고, 제대로 잠들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해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면서도 왜 놓지 못하는 걸까?


그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하고 싶으니까. 지금, 올해 북페어에 참여하고 싶었으니까.


포기해야 하는 수백, 아니 수천 가지 이유를 앞에 두고도 나는 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었다. 아무리 논리적인 말로 설득하려 해도 소용없었다. 그냥 해내고 싶었다. 왜 안될 수밖에 없는지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 않았다. 난생처음 느껴본 듯한 그 강렬한 마음이, 도무지 이성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그 고집스러움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소설이 엉망진창으로 끝낼지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완성한 책을 북페어 부스 위에 올려놓기로 다짐했다.


굳게 다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이유만 늘어놓던 머리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요한 모든 시간을 역으로 계산했다. 완성된 책이 언제까지 집에 와야 하는지, 인쇄 작업을 마치려면 마감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표지와 간지 및 작가 소개 등 한 권의 책에 필요한 작업을 나열하고 기한을 정했다. 글쓰기를 게을리할 수도 없었다. 모니터로만 보던 글을 모조리 출력했다. 그리고 작은 방에 홀로 앉아 연필로 줄을 치며 소리 내 읽었다. 눈으로 술술 넘어가던 글이 이상하게 입으로 뱉는 순간 턱턱 걸렸다. 멈춰 선 지점의 문장을 고쳐내고, 다시 소리 내 읽기의 반복. 퇴고하는 방법도 몰랐던 나는 요령도 없이 그저 원고를 읽으며 한땀 한땀 나아갔다. 양면으로 인쇄된 종이가 책상 위에 한가득 쌓였다. 몇 번을 고쳐냈음에도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가득했다. 읽다 보면 여지없이 감당 못 할 일을 벌인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일부러 더 크게 소리 내 원고를 읽었다. 괴로워할 시간도 내겐 사치였다.


우여곡절 끝에-

23년 12월 북페어 당일, 나는 자그마한 부스에 '당신의 꿈을 여는 가게, 심향'이라는 390쪽의 소설책을 올릴 수 있었다.


이틀간의 북페어는 허무할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책을 만들었다는 소식에 멀리 있던 지인들도 한걸음에 달려왔다. 기꺼이 값을 치르고, 서명을 받아가는 모습에 가슴 부근이 간지러워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몰랐던 작가를 많이도 만났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책을 만들고, 작품에 관해 설명하는 그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위로로 받았다.


따뜻해진 가슴으로 글쓰기를 계속 이어갈 것만 같았다. 어설프지만 완성한 소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줄 알았다. 조금만 쉬고 나면, 지쳤던 마음을 달래고 나면, 취직하고 일에 적응하고 나면... 당연히 작은 방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북페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소설책의 재고를 한가득 쌓아두고, 퇴고를 위해 뽑아둔 종이를 쌓아둔 채, 굳게 닫힌 방문을 열지 않았다. 어느새 한 글자도 적지 않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잘 해내기 위해선 먼저 서툴게라도 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 대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지점에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싶어 한다. 이런 한계 속에 갇혀 살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절망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긴 하지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전은 매우 값비싼 환상에 불과하다. (아티스트 웨이 204p)


위의 문장을 읽다, 지난 2년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불안에 떨면서 소설을 쓰고, 어떻게든 책으로 만들어 북페어에 참여하고, 없었던 일처럼 외면했던 일까지. 처음 쓰는 소설이 어떻게 서툴지 않을 수 있을까. 엉망으로 완성해 보자는 다짐은 그 서투름을 인정했기에 가능한 줄 알았다. 기꺼이 세상에 꺼내두고, 주목받지 않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잠시 쉬고 싶은 거라 여겼다. 몇 개월간 고생했으니 바깥세상도 보고, 또 취직했으니 적응하면 돌아볼 거로 생각했다. 오래도록 달콤한 핑계에 취해, 내 마음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던 거다.


에세이로 독립 출판물을 낸 적이 있었다. 책이 나오고 독립 서점들을 검색해 이력서를 쓰듯이 입고 지원서를 냈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서점에서 거절당했다. 만약 소설의 입고 지원서를 돌렸다면 어땠을까? 연락도 없이 거절당하면, 나는 또 어땠을까? 두꺼운 페이지, 소설이라는 장르, 가격까지 그 무엇하나 매력적이지 않다. 아마도 에세이보다 더 입고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계산 빠른 머리가 그걸 몰랐을 리 없었다. 전부 꿰뚫고 있었기에, 확신이 드는 지점에서 내 한계를 설정했다.


온 마음을 다해 쓴 소설이 외면받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내놓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 따위는 생길 리 없으니까. 혼자만의 추억이 되더라도 '완성'한 사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언젠가 더 멋진 작품을 쓰게 되면, 그때 선보이면 되니까. 그렇게 내가 쓴 소설을 외면해 왔다. 어쩌면 내 책을 읽은 가장 잔인한 독자는, 두려움에 책을 숨겼던 '나'였다.


다시 쓰게 된 지금은 안다. 그게 얼마나 값비싼 환상에 불과했는지를. 서툴게 쓴 글을 외면하고 다음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쓰지 않으면 영영 멋진 작품 근처에는 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은 방을 들락거리게 된 요즘, 나를 위해 소설책 한 권 꺼내 들었다. 천천히 다시 읽으며 멋대로 설정해 둔 한계를 부수고, 세상에 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부끄럽고 두렵지만, 서툰 소설을 좀 보인다고 해서 내가 잃어버릴 건 없다. 아마도 마음 한편에 무겁게 쌓아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들이 벌어지리라 믿는다.

끝으로 소설 작가 소개란에 썼던 문구를 옮겨보려 한다. 외면하기엔 너무 뜨거웠던 나를 기억하며,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KakaoTalk_20251014_220445729.jpg 당신의 꿈을 여는 가게, 심향 / 작가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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