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과 진실?

아티스트 웨이 4주차

by 리을

‘일몰 보러 다대포에 가자.’


책장을 넘기다 충동적인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일몰을 보러 어딘가로 향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몇 년 전 하단에 살 때는 십 분이면 낙동강에 닿을 수 있었다. 창밖의 하늘이 유난히 붉게 물든 날이면, 강가 옆 산책길을 향해 뛰쳐나갔다. 해는 서쪽으로 향할수록 빠르게 움직이니까, 서둘러야 했다. 건널목 앞에서 행여나 노을이 사라질까 봐, 종종걸음으로 하늘과 붉은 신호등을 번갈아 봤다. 이게 뭐라고 초조할 일인가 웃다가도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시 내달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곳에는 잔잔한 강 위로 탁 트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하늘은 형용할 수 없는 색감으로 가득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색감은 점점 찬란하게 짙어졌다. 그렇게 무르익어 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다.


KakaoTalk_20251021_110736128.jpg 22.10.28. 낙동강변


얼마 전 성격검사에서 ‘충동성’이 평균보다 월등히 높게 나왔다. 일부러 '매우 그렇다'는 항목은 피했는데,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상담사는 성격 검사가 우월성을 가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평균보다 높거나 낮은 부분들로 빚어질 수 있는 갈등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녀의 그 부드럽고 자상한 설명에는 모순이 있었다. 우월과 상관없는 성격을 점수화 시켜 그룹을 나눴고, 다르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나의 '충동성'은 개성이 아니라, 잠재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기분이 나빴다기보다는 납득할 수 없었다. 함께 상담에 참여했던 남편에게 물었다.


“다들 충동적인데, 억누르고 사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여보 정도는 아닐걸?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충동적이긴 하지.”


창밖의 멋진 하늘을 보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고, 노고단의 운해가 담긴 사진을 보면 직접 가보고 싶었다. 근처에 콘서트홀이 새로 생긴다면, 클래식에 관심 없어도 그곳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멀쩡히 퇴근하다가도 핸들을 꺾어 가보지 않은 길로 가고 싶지 않다고? 내 머릿속은 쉬지 않고 틈날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댔다. 어쩌면 충동성 우등생에게 '잠잠한 머릿속'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문득 ‘충동’이라는 단어를 왜 부정적으로 느끼는지 궁금해졌다. 충동적으로 옷을 샀다, 충동적으로 배달을 시켰다, 충동적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자꾸 되뇌다 보니 이미지 하나가 떠올랐다. 고요한 마음에 충동이라는 물 한 방울이 떨어져 파문을 일으킨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물결은 점차 잠잠해지다 사라진다. 다시 고요해진 수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물 한 방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라진 충동이라는 물방울은 진실이 아니라고 의심받게 된다.


아티스트 웨이 4주차 여정의 제목은 '진실성 회복하기'였다. 작가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충동에 주목하고 있었다. 현실, 사회적 위치, 돈, 시선 등에 떠밀려 외면했던 욕구들. 충동에는 부정적인 갈망도 있지만, 억눌러왔던 순수하게 하고 싶은 마음 또한 존재한다. 일몰을 보고 싶고, 바다에 가고 싶고, 글을 쓰고 싶은 욕구들을 '충동'이라는 글자에 함께 묶어, 금세 사라질 거짓이라고 치부해 왔던 건 아닐까.


재미있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절대 하지 않을 활동을 다섯 가지 적어본다.
한번 해보고 싶은 유치한 활동을 다섯 가지 나열해 본다.
예전에 즐겨 하던 활동을 다섯 가지 나열해 본다. - 아티스트 웨이, 152p -


작가가 주는 문제를 풀다 보면, 내 머릿속은 정신없이 솟아나는 충동으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그 충동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상에 끼워 넣고, 해내고 싶어졌다. 예전에 즐겨 하던 활동을 멋대로 나열하던 나는 결심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대포에서 일몰을 보고야 말겠어!’


지독하게 차가 막히는 수요일 퇴근길, 복잡한 시내를 뚫고 20분은 더 달려야 다대포 해수욕장에 닿을 수 있었다. 가는 내내 흔들리던 마음이 서쪽 하늘이 훤히 보이는 강가에 다다라서야 단단해졌다. 옅은 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였고, 설익은 노을은 연노란색으로 말하고 있었다. 오늘 일몰은 역대급일 것이라고. 조수석 창문을 힐끔힐끔 바라보다 또 초조한 마음이 번졌다. 다행히도 일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 나는 바다에 닿았다.


KakaoTalk_20250919_135007684_28.jpg 25.09.17. 다대포해수욕장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해변 위로 일출만큼이나 웅장한 일몰이 펼쳐졌다. 푸르른 하늘이 점차 붉은빛으로 물들고, 비단결처럼 고운 구름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신발 너머로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에 결국 신발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바다에 발을 담갔다.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모래가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늘 귀를 덮고 있던 헤드셋도 벗었다. 음악은 필요하지 않았다. 정강이를 적시는 파도 소리로 충분했다. 산 너머로 사라지는 오늘의 해는 어느새 하늘을 태워버릴 듯이 붉다. 그를 닮아 붉어진 파도가 넘실거리며 끝도 없이 밀려들어 내게 닿았다. 긴 해변을 걸으며 쉼 없이 보고, 듣고, 느꼈다.


충동은 거짓된 마음일까? 사실 이렇게 제멋대로 떠오르는 ‘하고 싶은 일’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창조적인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다를 쉼 없이 거닐었던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내가 놓친 수많은 일몰을 아쉬워하며 기꺼이 또 오자고 다짐했다.


달리 더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