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 그 위험한 질문

아티스트 웨이 2주차

by 리을

몇 년 전 무료한 일상의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혼자 쓰는 게 어려워 9주 동안 함께 쓰는 온라인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호스트가 일요일 밤에 던져주는 주제로, 평일 동안 매일 세 문장 이상을 적는 것이 과제였다. 덕분에 괴롭기만 했던 일요일이 달라졌다. 한 주 동안 어떤 주제를 만나, 또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생각하며 설렜다. 기나긴 출퇴근 시간에 휴대 전화로 글감을 적었고, 야근하는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서 쓰기도 했다. 그렇게 4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썼고, 어느새 3만 자가 넘는 글이 쌓였다. 그냥 내버려두는 게 아쉬워 책으로 만들었다. 인쇄소 최소 제작 기준에 맞춘, 세상에 단 여덟 권뿐인 나의 첫 책이 그렇게 탄생했다. 표지부터 내용까지 마음대로 꾸민 책은 제법 그럴싸하게 보였다. 한 권은 나를 위해 남겨두고, 나머지는 용기를 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다행히도 모두가 좋아해 주었다. 잘 읽었다는 말과 함께 좋았던 문장을 되짚어주던 그들 덕분에 혼자 쓸 때는 몰랐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쓰는 일상이 자연스러워졌고, 정해진 주제가 아니라 쓰고 싶은 주제가 생겼다. 서른을 넘어선 나는 잔병이 많았다. 알레르기 비염, 소음성 난청, 위염, 포도막염까지 크고 작은 일들로 병원을 자주 들락거렸다. 불평거리에 불과했던 잔병에 대해 우연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무심코 지나쳤던 생각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잔병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어 보였던 몸에는 갖가지 사연이 담겨있었다. 어린 시절에 생긴 흉터, 미련한 습관으로 생긴 위염, 화장기 없는 얼굴 등 살아온 세월만큼의 이야기가 '몸'이라는 곳에 쌓여있었다.


나만의 작은 역사가 흐르고 있는 몸, 두 번째 책 '몸에 담긴 기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열두 개의 에피소드가 실린 작고 얇은 책. 그 책의 뒤표지에는 팔천 원이라는 가격이 적혀있다. 이번에는 지인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독립 출판에 도전했다. 자그마한 박스에 많은 양의 책이 집에 도착했다. 나는 전국의 독립 서점을 찾아보고, 이력서를 내듯 입고 지원서를 보냈다. 대부분 거절을 당했지만, 운이 좋게도 몇 군데 서점에 입고되기도 했다.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에게 내 글이 읽힐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어쩐지 가슴 부근이 자꾸만 간지러워서 참기 힘들었다.


그 일을 계기로 몰랐던 커뮤니티를 많이 알게 되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만났고, 함께 쓰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어쩌다 소설을 썼다. 기나긴 장편 소설을 우여곡절 끝에 완성했고, 북페어에도 참여했다. 재미로 쓴 글이 자꾸만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을 불러들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또 다른 도전을 꿈꾸던 내게 누군가가 속삭였다.


'근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알코올 의존증 상태에서 회복되려는 사람이 '딱 한 잔'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듯, 창조성을 회복하려는 아티스트도 '딱 떠오르는 생각'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에게 딱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는 자기 회의다. - 아티스트 웨이, 89p -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절묘한 순간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당시의 나는 1년 넘게 백수로 지내며, 치열했던 마감 뒤의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요란한 벨 소리가 뒹굴뒹굴하고 있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오랜만에 전 직장 상사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상사는 회사를 새롭게 차렸고, 뜬금없이 근황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다 갑작스레 물었다.


"언제부터 일할래?"


그가 말하는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안 그래도 한 달 뒤에는 일자리를 찾으려 했던 참에 굴러들어 온 제안.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박스째 한가득 쌓여있는 소설책 재고가 떠올랐다. 남은 재고를 몽땅 팔아치운다 해도, 한 달 치 월급을 조금 넘을 뿐이었다. 출판사도 없이, 인지도도 없는 내가 만든 소설책이 단박에 팔릴 리는 없었다. 아마도 에세이보다 훨씬 더 많은 거절을 당하고, 어쩌면 한 곳도 받아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미 하고 싶은 일 때문에 오랫동안 구직을 미뤄왔다. 혼자서 밥벌이하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소득도 없는 일에 더는 이기적으로 매달릴 수 없었다. 월급이라는 현실적인 단어 앞에서, 쓰고 싶은 마음은 어린아이 투정에 불과했다.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렴풋이 직장을 다니더라도 책을 홍보하고,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직장은 예상보다 바빴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근무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심신의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저녁밥을 먹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틈을 내어 눕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안락한 시간만을 기다렸다. 한 글자도 쓰지 않는 일상에서 가끔 쌓여있는 소설책이 떠올랐다. 견딜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충동적으로 모닝 페이지를 꺼내 무언가를 끄적였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너무도 미미하고 하찮게 느껴졌다. 30분 일찍 일어나 모닝 페이지를 쓰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몇 글자 적으면 뭐가 달라질까? 소설책을 알리려 아등바등 애쓰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냥 애초부터 세상에 없는 셈 치고 몽땅 잊어버리면 될 것을!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는 게,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보다는 그리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창조적 통로가 되는 과정을 즐기고, 결과를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창조성을 갈고 닦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결과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 아티스트 웨이, 93p -


홍보 글을 올리던 SNS를 접었다. 가끔 들락거리던 독립 서점도 찾지 않았다. 함께 모여 글을 썼던 모든 커뮤니티를 끊어냈다. 철저하게 잊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다. 한 글자도 쓰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편안한 삶을 위해 그 모두를 외면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괴로웠다. 그리고 잊을 수가 없었다. 잊으려 할수록 떠올랐고, 달아날수록 제자리에 와있는 듯했다. 어떠한 쓸모도 찾을 수 없었지만, 쓰고 싶었다. 글쓰기는 이미 내게 외면할 수 없는 정체성이 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다시 돌아왔다. 다시 모닝 페이지를 붙들고, 주제를 받아 매일 조금씩 적어나가고 있다. 시답지 않은 글을 토해내듯이 적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쓰기 전에는 한껏 무거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별것 아닌 몇 문장을 쓰자 옥죄던 체증이 사라졌다. 그리고 또 겁도 없이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 응모해 보겠다는 욕구와 마주했다. 언제나 그랬다. 눈앞에 놓인 기회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들 덕분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을 겪어 왔다.


'잠든 아티스트를 깨우는 시간'은 그렇게 탄생할 예정이다. 소용과 상관없이 마음의 소리를 따라 즐겁게 쓰는 과정을 담아내고 싶다.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