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의 자격

아티스트 웨이 1주차

by 리을

다시 모닝 페이지를 쓰고,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있다. 어떻게든 쓰고 싶은 마음에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티스트'나 '창조성'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졌다. 고작 '쓰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끄적이는 글이 창조적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티스트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


나의 그런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저자는 내면의 창조성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창조적 충동을 억누른 채 살아가던 그들이 어떤 계기로 자유로워졌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묻는 듯했다. "당신에게도 창조성이 있지 않았나요? 그런데 그 사실을 잊어버린 건 아닌가요? 잊고 있기에 멀게만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요?"라고. 읽는 내내 끈질기게 물어오는 탓에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그림 숙제가 하나 있다. 열 살쯤이었던 나는 담임 선생님이 나눠준 종이를 받았다. 종이에는 알파벳 여섯 개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커다란 알파벳으로 연상되는 그림을 다음 시간까지 그려오는 것이 숙제였다. 종이를 받아 들자마자 크레파스로 단숨에 그려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필로 밑그림을 먼저 그렸다. 누구나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알파벳이 상상치 못했던 무언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독특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 번이고 지우개질했던 그때의 마음, 어찌 보면 아티스트적인 기질은 아니었을까?


어린 나는 일기 쓰기도 좋아했다. 물론 개학에 맞춰 한꺼번에 몰아 쓰는 일기는 고역이 따로 없었지만, 학기 중에 쓰는 일기는 전혀 달랐다. 학교에 오자마자 선생님 책상 위에 일기장을 올려두면, 하교할 때쯤 다시 받아볼 수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받아 들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제 쓴 쪽을 열었다. 그리고 빨간 펜의 흔적을 훑어내렸다. 주로 빨간 펜으로 맞춤법을 교정해 주던 선생님들은 가끔 일기 하단에 짧은 문구를 적어주곤 했다. 공감과 위로, 또는 감상이 담긴 그 짧은 문구를 나는 참 좋아했다. 마치 편지에 답장을 받은 느낌이랄까? 일기는 내게 단순한 숙제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독특하고 신기했던 일상을, 다른 날에는 화나거나 즐거웠던 감정을, 또 어떨 땐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담아 선생님께 보냈다. 매일 한 사람을 향한 글을 쓰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댓글을 기다렸던 나는, 꼬마 작가이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내 그런 모습을 유독 예뻐해 주셨다.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해 주셨고, 독창적으로 시도했던 숙제도 높이 평가해 주셨다. 아마도 결과물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어린 나의 시도와 노력을 잘 봐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선생님의 응원에 힘을 얻어 자신 있게 발표도 하고, 추천해 주신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었다. 어쩌면 내 안의 창조성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응원해 줬던 사람인 선생님.


당신의 창조적 자존감을 방해하는 적을 세 명 적어보자. - 아티스트 웨이, 83p -


하지만 의아하게도 위 문장을 읽고, 첫 번째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이십여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날은 자리 배치를 바꾼 날이었다. 여섯 명씩 책상을 모아 조를 만들고, 새로운 조의 이름을 정해야 했다. 나는 유독 숫기 없는 아이들과 함께 앉게 되었다. 그래서 조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고, 짧은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많아 걱정이었다. 동그란 종이에는 칠판에 붙일 조를 상징하는 그림도 그려야 했고, 함께 쓸 도구를 담는 연필꽂이도 만들어야 했다. 곁눈질로 보니 옆 조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벌써 무언가를 완성한 곳도 있었다.


어렵사리 정한 우리 조의 이름은 파랑새였다. 다른 조의 이름에 비해 파랑새라는 이름은 열두 살인 내가 보기에도 유치했다. 하지만 더는 이름으로 시름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동그란 종이에 파랑새를 연필로 그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파랑새를 열심히 담아봤지만, 아무리 봐도 새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우개로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다, 시간에 쫓겨 엉성한 모양의 무언가를 그려냈다.


그 이후의 기억은 끊어진 필름처럼 몇 가지 장면들만 떠오른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화가 난 선생님이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찢어버렸다. 내가 그린 파랑새도 찢어졌고, 선생님에게 손찌검을 당했다. 뒤통수를 스치듯 맞았는데,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멈추려 해도 눈물이 그치지 않아 딸꾹질을 해대며 한참을 울었다. 회초리도 없이 맞았다는 것에 놀란 걸까,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나를 예뻐해 주던 선생님을 실망하게 한 것 같아 슬펐던 걸까. 집으로 돌아온 가방에는 새하얀 동그란 종이가 들어있었다.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내일까지 만들어가야 했다. 다시 밑그림부터 그려보려 했지만, 도무지 그릴 수 없었다. 한참을 떨리는 손으로 고민하다, 결국 아빠에게 대신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아빠가 그린 파랑새는 무사히 칠판 위를 날 수 있었다. 서투른 내 그림이 설 자리가 없다는 슬픔보다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티스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 - 아티스트 웨이, 67p -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선생님과 남은 학기를 잘 보냈다. 여전히 나를 좋게 봐주며 응원해 주셨고, 내가 쓴 글을 칭찬해 주셨다. 청소년기에 겁 없이 어떤 글이든 쓸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후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졌다. 서슴없이 독창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던 마음은 사라졌고, 새하얀 종이 앞에서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밑그림도 그리기 전에 평가받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자연스레 되뇌었다.


'그림은 아무나 그리는 게 아니다. 아티스트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사춘기 때 내내 글을 썼다. 힘든 하루를 일기장에 쓰고, 스쳐 지나는 단상으로 짧은 글을 썼다. 친구들과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또 함께 릴레이 소설을 쓰기도 했다. 가끔은 교내 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지만, 작가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티스트는 날 때부터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 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감히 그 영역을 넘보지 않았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없었다.


그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연기를 하고, 작곡을 하고, 춤을 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에 그런 욕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 아티스트 웨이, 69p -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림도 그려보고 싶고, 멋대로 춤도 춰보고 싶다. 재능이 없어도, 그것들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떠나서- 그냥 하고 싶다. 잘 그려야지만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잘 써야지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라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주관적인 잣대로 꿈을 재단한다. 밥벌이가 안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할까 봐, 그 정도 재능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단념하라고 말한다. 결국에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스스로 부정하도록 만든다. 혼자서 마음을 의심하고 외면하도록 망가뜨린다.


나 또한 글 쓰고 싶은 욕구를 인정하는 데 너무도 긴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쓸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마음속 검열관과 싸우고 있다. 여전히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무겁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색하다. 하지만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쓰고, 그리고, 춤추며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내 안의 예술성과 함께 살아가는 삶, 그 정도도 충분히 아티스트라고 불릴 만하지 않을까. 그러니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어색하지만 억지로 되뇌며 나부터 그 마음을 소중히 해야 한다.


허우적대는 일상에서도 어떻게든 제 멋대로 글을 쓰고 있는 아티스트, 나는 '리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