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쓴 첫 장
엄마, 뭐해?
나는 퇴근하고 약속이 있어서 전철을 타고 있어. 오랜만에 지상으로 다니는 전철을 타니까, 풍경 보는 게 좋네. 오늘은 날씨도 좋아서 하늘도 잘 보인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아, 집 청소해야 하는데… 너무 귀찮다'라고. 풍경이 우리 집이랑 다르게 너무 맑고 깨끗해서 그랬나 봐. 너무 솔직했나? 벌써 엄마의 잔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하하.
나는 정리정돈을 참 못 해. 그치?
같이 살 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따로 산 지 십 년이 넘은 지금에야 겨우 좀 깨달았다랄까? 나도 아주 잠시 겪어 봤는데, 깨끗한 사람이 훨씬 더 고통스럽더라고.
"물건이 지 자리에 있으면, 어질러질 이유가 없는데! 왜 그게 안 돼?"
내 방을 보고 매번 묻던 엄마의 말.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씩 웃게 돼. 왜 웃냐고? 내 물건에는 '지 자리'가 없거든.ㅋㅋ 엄마랑 같이 살 때도 그랬고, 결혼해서 7년을 넘게 산 지금도 마찬가지야.
어떤 말을 해도 방을 안 치우니까, 엄마가 그랬지. 남들 보기 창피하니까 제발 치우라고.
그때 내가 뭐라 그랬는지 기억해?
"그냥 이 방은 하숙줬다고 해. 딸이 아니라 하숙생 방이라고 하고, 문 닫아버려."
어찌나 치우기 싫던지, 그렇게 말했었네. 물론 그러다 등짝을 맞았지만.
그만큼 뭘 치우는 게 힘들어. 물건을 쓰면 쓴 대로 꺼내두고 그 자리에 둬버리는 게 습관이 돼버렸어.
뭐든 깔끔히 치우고 정리하는 엄마 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갑자기 중학교 때부터 오래도록 살았던 옛날 우리 집이 생각난다.
현관에서 바로 왼쪽 문 너머에 있던 작은 방이 내 방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방 크기가 꽤 컸어. 책장이 딸린 책상에 슈퍼 싱글 침대를 넣고도, 남는 바닥에 사람 한 명은 여유롭게 누울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재미난 공간도 많았어. 벽장도 있고, 밖이 바로 보이는 베란다도 있었지. 벽장은 옷이 더미처럼 쌓여서 항상 어지러웠고, 베란다에는 잡동사니가 가득했었지. 아, 베란다에 있는 선반에 만화책으로 가득했는데! 그거 몽땅 버린 거, 나 아직도 후회하잖아. 버리지 말걸! 엄마가 칭찬하지 말고 말려주지.
책상 위는 항상 어지러웠고, 가끔은 진짜 손댈 틈이 없었어. 공부하려면 책상 위의 짐을 몽땅 한 아름 안아서 침대 위에 올려놨어.ㅋㅋㅋ 공부할 때는 시야에 다른 것들은 없어야 집중이 되거든! 그러다 잠이 오면 고대로 다시 안아 들고 책상 위에 뒀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아- 그때 생각하니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야. 적어도 침대 위에는 짐이 없으니까.
가끔 엄마가 화 난 것처럼 보일 때면 나도 눈치를 봤었어. 슬금슬금 방을 치웠지. 어지럽게 나와 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서랍에 넣거나, 책장에 꽂으면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했어. 그러다 가끔은 상상도 못 했던 물건을 만나기도 해. 예전에 봤던 만화책이나 친구에게 받은 편지를 찾아내면, 바닥에 주저앉아 읽곤 했어. 그때부터 청소는 뭐- 물 건너간 거지.ㅋㅋ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를 간직하고 있어.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편지, 중고등학생 때 주고받았던 쪽지도 같이. 이상하게 내가 쓴 일기랑 노트는 다 버렸는데, 그 편지들은 버리지 못하겠더라. 이제는 이름을 봐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이 대부분인데 말이야. 그렇게 몇 번을 버리려다, 결국 깨끗한 상자에 옮겨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도 데려왔어.
왜 그랬을까? 누군가의 마음이 꾹꾹 담겨 있어서일까? 내가 쓴 글보다 받은 글이 더 무겁게 느껴져서 그런 걸까? 걱정하지 마. 아주 예쁜 상자에 정성스레 넣어서 팬트리 한쪽에 잘 뒀으니, 이건 정리정돈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일 거야. 아마도.
그러다 문득 책은 잘 안 읽지만, 내가 쓴 글이라면 또 읽겠다고 말했던 엄마가 떠올랐어. 요즘 다시 글을 쓰다 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아졌거든. 독립 출판물을 내는 건 힘들어서 하지 않을 것 같은데, 글은 계속 쓸 것 같아. 그래도 엄마를 위해서 한 권쯤은 책으로 만들어 선물해야지, 하다가 아예 엄마를 위한 글을 써볼까 했어.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편지를 언제 보냈는지 기억이 안 나더라고.
일주일에 5일은 통화하는 사이에 또 무슨 편지?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말로는 다 못 하는 이야기도 많으니까. 아니면 같은 말이라도 또 글로 담아보면 다르지 않을까? 같은 감정도 다르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내 편지 같은 글이 엄마에게 잘 도착해서 계속 읽히고, 또 보관되는 무언가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려고.
갑자기 너무 거창해졌다! 사실 나도 잘 몰라.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지는 모르겠어. 전혀 계획이 없어.ㅋㅋ 아마도 그냥 우리가 통화 하듯이 그냥 내가 사는 이야기를 하겠지. 나도 이제 나이를 좀 먹었으니까, 무슨 이야기든 그럴싸하게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굳이 그럴싸하지 않아도 엄마는 끝까지 읽어줄 테니까, 편안하게 하고 싶은 말을 그때그때 담아볼래. 하고 싶은 말을 잘 담고 또 다듬어서 한 아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줄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그치?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정리정돈 못 하고, 받은 편지를 버리지 못하는 나라서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엄마가 부디 가볍고 따뜻한 마음으로 읽길 바라면서,
이만 딸은 물러갑니다. 총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