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세이] 주토피아2, 독설에 담긴 진심 (스포 주의)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높은 평점이 의아할 정도로 지루했다. 혹시 다음 편이 나온다면 또 보러 올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주토피아2 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극장을 달려왔던 마음이 사라져 버린 듯했다. 2편의 전개는 1편과 거의 유사했다. 번지르르한 도시에는 아무도 모르는 흑막이 존재했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 흑막을 물리치며 주토피아를 지켜냈다. 예고편을 보고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물론 스펙터클한 전개를 기대하며 고른 영화는 아니다. 나는 그저 동물들이 궁금했다. 경찰이 되고 싶은 토끼, 편견을 딛고 사회의 정의를 구하려는 여우, 말과 행동은 느리지만 스포츠카를 타는 나무늘보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토피아’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1편에서 주디가 주토피아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장면이 떠오른다. 고대하던 경찰이 되었다는 기쁨에 주디는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긴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꿈결 같은 풍경을 스쳐 지났고, 주디가 선곡한 음악 ‘Try every thing’이 흥겹게 흘러나왔다. 음악에 맞춰 열대우림, 사막, 마음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설원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곳. 모든 동물이 모여 살 수 있는 신비로운 모습의 도시, 주토피아였다. 작은 생쥐가 타는 전용 엘리베이터와 커다란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내리는 정장을 입은 하마의 모습까지. 주책없는 심장이 환상적인 풍경 속에서 쉴 새 없이 두근거렸다.
2편의 예고편에는 ‘파충류’가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양서류와 반수생 포유류(수달, 하마, 바다표범 등)까지, 1편에서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던 생물로 가득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설레는 마음에 개봉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장면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새로운 도시가 등장하긴 했지만 금세 스쳐 지나갔고, 그곳에 사는 생물들의 모습은 가벼운 농담처럼 사라졌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상처럼 남은 미지의 도시를 탐험하지 못한 게 내내 아쉽게 했다.
게다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순진무구하고 열정 가득한 용감한 토끼 경찰 주디였다. 그저 귀엽고 자랑스럽게만 보였던 주디가 나를 힘들게 했다. 보는 내내 한숨을 자아내게 했다. 그녀는 조직의 절차, 규율, 파트너의 의견 따위는 던져두고,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일에 온몸을 던졌다. 덕분에 파트너인 닉은 온종일 그녀를 뒤따르느라 거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생각 없이 불의에 뛰어드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나도 피곤해졌다. 파트너인 닉이 불쌍해질 정도가 되었을 때쯤, 그들은 한 사건에 휘말려 오해를 받고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도망칠수록 자꾸만 꼬여갔다. 어느새 그들은 벼랑 끝에 섰다. 정체를 숨기고 떠나거나, 꼼짝없이 붙잡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주디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모든 감각은 불의에 반응했고, 정의를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세상은 알아서 돌아가, 홍당무! 네가 영웅처럼 군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언제나 말없이 뒤따르던 닉이 외쳤다. 폐부를 찌르는 그 말에 순간 주디도 나도 멈춰 섰다. 어쩐지 기억 저편에 묻어뒀던 한 장면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꿈틀대는 기억을 따라가기엔, 화면 속 상황이 너무도 급박했다. 그 말 때문에 둘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고, 하필 그 순간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에게 붙잡히는 닉을 구하지 못한 채 주디는 도망쳤다. 그렇게 둘은 잠시 이별을 맞이했다.
주디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계속해서 사건을 파헤쳐간다. 어찌저찌 진실을 마주하고 증거를 찾아낸 주디와 감옥에서 탈출한 닉이 다시 마주쳤다.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은 둘은 그동안 숨겨왔던 속내를 쏟아냈다.
“내가 '세상은 알아서 돌아간다’라고 말한 건, 정말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가 아니야. 네가 그 지옥 같은 불길 속으로 뛰어들 때마다, 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아서 그랬던 거야.”
폐부를 찔렀던 닉의 말에는 그의 걱정이 있었다. 항상 목숨을 돌보지 않고 뛰어드는 그녀를, 정의로운 세상보다 소중한 존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공포가 담겨 있었다.
그의 말에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기억 속 장면, 10여 년 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20대 중반, 세상사에 관심 없던 내가 어느 날 문득 ‘정치’라는 것에 눈을 떴다. 세상에는 불의가 가득했고, 특히나 정치판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냥 불의가 아니라 그들의 만행이 내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도 중요한 일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게 억울했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후 나는 맥락도 없이 친한 친구들 앞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이 관심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
-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그냥 부모님이 찍는 후보를 같이 찍을 뿐이야.
너무도 당당한 친구의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내 이익이나 가치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부모님을 따른다니…. 어떤 판단도 없는 그 선택에 내 삶이 휘청일 수도 있다는 공포에 더욱 열심히 떠들었다. 너와 내 삶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이것에 묶여있고, 침해당하고 있는지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방법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끝내 내 간절함은 친구에게 닿지 못했고, 오히려 정치의 ‘ㅈ’만 꺼내도 싫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친구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답답함을 속으로만 삭히고 있던 어느 날,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때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뻔뻔한 말을 내뱉는 정치인을 향해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곁에 있던 아버지가 몇 마디 보태다, 갑자기 나를 다그쳤다.
“네가 그렇게 안달복달 애쓴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 같아?!”
정의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나는 아버지의 호통에 엉엉 울었다. 부끄러움도 잊고 그저 억울함 때문에. 당연히 동조해 줄 거라 믿었던 아버지가 내뱉는 말이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노력은 모두 쓸모없는 짓이라 여기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디를 답답하게 느꼈던 건, 과거의 내가 겹쳐 보여서 그랬던 건 아닐까. 닉의 고백이 아버지의 고백처럼 들린 순간- 확신했다. 나보다 더 오랫동안 불합리한 세상을 보면서 분노했을 아버지. 청년부터 얼마나 많은, 얼마나 더 말도 안 되는 과정 속에서 투표해 왔을까. 이제나 달라질까 기대하며, 열정적으로 분노했을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달라졌던가? 애걸복걸했던 순간만큼-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지 않은 현실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비수 같은 말은 의욕만 앞선 딸이 세상 속에서 너무 아프지 않길 바랐던, 서툰 사랑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맥락도 없이 1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나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닉과 아버지를 겹쳐보다 차오르는 울음을 삼켰다. 쥐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 말을 자연스레 놓아버렸다.
기나긴 엔딩 크레딧에 복잡한 감정이 뒤엉켰다. 설렘보다는 아쉬움이 가득했고, 어이없이 터져버린 눈물은 가슴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9점을 훌쩍 넘는 평점에 고개를 젓다가도, 또 어떻게든 자국을 남기는 영화의 무게를 돌아보게 했다.
주토피아2는 내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