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과 엄마

엄마에게 쓰는 편지

by 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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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근으로 근무 시간 대부분의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보냈다.

음악을 들으며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 편지 쓰기로 했는데- 아직 시작도 못했네.

운전과 엄마라- 바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 초고처럼 써보려 한다.


엄마, 더운데 오늘은 잘보내고 있어?

나는 많은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보내고 있네.

곧게 뻗은 도로 위 날씨는 이글거리게 타오르다가 또 금새 비가 쏟아졌다가 변덕을 많았어.

운전을 자주 하는 요즘, 엄마가 처음 면허 땄던 날이 생각나서 종종 웃곤해.


엄마는 기억나?

가족 넷 중에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뿐이라며 툴툴거리던 아빠 때문에 시작했잖아.

(이 사실을 잊었을리는 없겠지?ㅎㅎ)

나는 엄마가 처음 면허를 따고 단 둘이서 마트를 갔던 그때가 바로 떠올라.

그때 내가 몇 살이었더라? 기억은 잘안나는데- 해리포터 소설에 엄청 빠져있었어.

고대하고 있던 새로운 시리즈가 나와서 너무너무 읽고 싶었거든.

근데 그날 엄마가 마트에 같이 가자고 한거야. 해리포터 책을 사주겠다고!

무척이나 행복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버스가 아니라 엄마가 차를 타고 가자더라?

뭐- 나야 해리포터가 중요하지 버스가 중요하겠어? 생각없이 옆 자리에 올라타고 벨트를 맸어.


스르륵- 차는 잘굴러갔어. 약간의 위화감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쓸정도는 아니었어.

아니, 해리포터 앞에서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겠지.

그렇게 우리는 동네에서 제일 큰 마트에 도착했고, 차는 주차장에 다다랐어.

설레는 마음에 창 밖을 보면서 책 코너로 뛰어가는 상상만 했었지.

그런데 이상하게 차가 같은 자리를 왔다갔다 하고 있는거야.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하면서 제자리를 못찾고 있는 느낌이었어.

엄마의 얼굴을 보고 그제야 알았던 것 같아. 엄마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를-

두 차 사이에 주차를 하려던 엄마는 아마도 차폭 감을 몰라서 계속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만 반복했겠지.

한껏 긴장한 듯한 모습에 말도 못걸고 옆에서 혹시라도 차가 부딪힐라 함께 안절부절했던 그날을-

엄마는 기억해?

다행히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어.

그러고는 둘이서 차를 탄 기억이 별로 없는 걸 보면... 아마 아빠 없는 시내 주행은 안하기로 한 게 아닐까?


그랬던 내가 어느새 운전면허 딴지도 10여년이 넘어가네.

작년에는 내가 옆자리에 엄마를 태우고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를 만나러 갔잖아.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목욕탕도 가고, 할머니 겨울 옷도 고르고.

엄마도 혹시 예전의 나처럼 옆에 타서 긴장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

사실 나는 운전이 적성에 안맞거든. 새로운 길로 가면 긴장도 많이 되고, 아직도 주차할 때 긴장하기도 해.

참고로 평행주차는 아예 안 해. 얼마 전에는 사고 몇 번에 엄청 위축되기도 하더라고.


그런데 그날 엄마가 내가 운전에 능숙해져서 이렇게 올 수 있다고 말해주니까 너무 좋더라.

일하느라 다니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지도 않은 운전을 꾸역꾸역하다 생긴 능력인데...

해두길 잘했다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보면 나이 먹는게 나쁘지만은 않아.

(아.. 이런 말, 이거 엄마 앞에서 말했다면 등짝 맞았으려나?)


그래도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보니 엄마를 태우고 훌쩍 가버릴 수 있게 된거잖아.

지루한 외근길이 엄마를 안전하게 모시기 위한 경험치 쌓기라고 멋대로 생각하려고.

덕분에 즐겁게 운전했어.


조만간 또 여행가자. 둘이서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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