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사는 친구

by 리을

멀어도 경북권이던 외근이 충청도에 생겨버렸다.

충청도 남도 부여군, 이름만 들어봤던 낯선 지명에 네이버 지도를 켰다.

집에서 차로 네시간 가까이 쉼없이 닿을 수 있는 먼 거리.

지도를 확대해서 보다 천안이라는 글자가 스쳤다.

내가 미팅이 있는 부여에는 논산역이 제일 가까웠다.

그리고 논산역에서 천안역까지는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하게 천안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이번주 금토일 뭐하냐고-


고등학교때 걸어서 코 닿을 거리에 살던 친구는 천안에서 자리를 잡고 10년이 넘게 살고 있다.

한사코 부산에 올꺼라면서 내 집마련을 미루던 친구가 몇 년 전에는 집을 사고, 천안에 조금 더 있기로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집들이 후 몇 번 놀러를 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먼 곳이라 가기 어려웠었다.

피곤할 것만 같던 장거리 외근길이 왠지 조금 다른 느낌으로 와닿기 시작했다.

다행히- 친구는 주말에 일정이 없었고, 지금 친구 집에서 잠시 짧은 생각을 남기고 있다.


어제 거실에 가방을 풀자마자 참아뒀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회사에 사는 개구리 이야기,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던 이야기, 내색을 못했지만 속상했던 이야기까지

어디에 쌓아뒀는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끝없이 쏟아졌다.

한참을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친구도 쌓아뒀던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서부터 몇 시간 동안 먹지도 않고 떠들기만 했다.


한참을 웃고 화내다 박수치며 또 웃었다.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질쯤 친구에게서 조금 다른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살던 친구와 나는 지금 별로 비슷한게 없다.

사는 곳도 직장도 결혼 유무도 가족 관계도- 무엇하나 같은게 없는데... 닮아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에 치여 어디 속시원하게 터놓지도 못하고,

혼자 넘기며 또 다가오는 하루하루를 버텨온 그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조금만 가까웠어도 훨씬 하루를 버티는게 쉬웠을까?

막연히 잘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한 친구도 나와 같았다는게 위로가 되면서도 씁쓸했다.

역시 좋아하는 사람에겐 행복한 일만 있기를 바라니까.


그렇게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늦게까지 뒹굴거리며 하루종일 생각나는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멀지만 칫솔 하나만 챙겨서 응석 부려볼 수 있는 친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짧은 글을 마치고 다시 친구에게 가려 한다.


20일간 모닝페이지 인증 도전, 이렇게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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