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는 길을 잃은 내가 돌아올 장소가 되어준다.
모닝페이지를 떠올리면 팬트리 구석에 쌓여있는 노트들이 떠오른다. 알록달록한 표지의 줄 노트 다섯 권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를 휘갈겨 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1년 11월 22일 월요일, '충동적으로 챌린지에 참여했다'라는 문장으로 나의 모닝페이지는 시작되었다. 잠시 읽다 보니 당시의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당시는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이직이었는데 달갑지 않은 현실이 펼쳐졌다. 신생 회사라 불안정한 자금 상황에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고, 업무 영역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혼란스러웠다. 고작 이런 일에 이런 취급을 받으려 왔나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 직장에서 나를 아껴주던 상사가 가지 말라고 몇 번이고 붙잡았던 일이 떠올라 괴로웠다. 미안한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왔는데... 그 모든 선택이 잘못된 것만 같아서 답답했다. 하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모든 선택을 내가 했으니까. 회사에서 불만이 쌓이다 보니 일상도 변해갔다. 싫어하는 것들은 늘어만 갔고, 무언가를 좋아했던 감정은 사라져갔다.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쉬는 날에도 그저 하염없이 누워있고만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SNS에서 '아티스트 웨이'를 소개하는 짧은 문구를 보게 되었다. 어쩐지 마음이 끌려 도서관에 들렀고, 계속 읽고 싶은 마음에 책을 샀다. 그때부터였다. 무료했던 일상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와닿는 문장이 너무 많았다. 책에는 금세 포스트잇이 수두룩하게 붙여졌고, 나는 집에 쌓여있던 빈 노트를 하나 꺼내 모닝페이지를 적기 시작했다. 책 내용에 감동해 아침마다 세 페이지를 꾸역꾸역 적었지만,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부분 푸념과 고민을 한가득 적었고, 이상한 꿈을 꾼 날에는 꿈 이야기만 세 페이지 내내 적기도 했다. 희망적으로 몇 줄 쓰다가도 금방 비관적으로 또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고 그러다 어떻게든 하루를 견뎌보자고 마무리 지었다. 찰나의 순간에도 제 멋대로 요동치는 생각을 그저 받아썼다. 왜 쓰는지, 무슨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도움이 된다는 저자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유도 모른 채 썼다.
일을 쉬면서 글 쓰는 일에만 매달려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하루 종일 소설 생각만 하면서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리고 그걸 받아적고, 다시 읽으며 글을 고치던 때에도 모닝페이지를 적었다. 그때는 좀 도움이 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역시 곧바로 답하기 어렵다. 책에서처럼 매력적인 인물이 말을 걸어온다든지, 막혀있던 부분을 해결해 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운이 좋게 모닝페이지에서 한 장면을 상상해 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담거나 과연 내가 마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썼다. 감당 못 할 일을 벌인 것 같아서 무서우면서도 잘 해내고 싶은 부담감에 허우적거렸다. 차라리 포기해버리면 되는데 어떻게든 해내려고 붙들고 있는 고집스러운 나를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모든 순간이 적나라하게 모닝페이지에 담겼다. 그리고 쓰고 싶지 않아졌다. 그토록 해보고 싶어서 도전했던 글쓰기로 인해 괴로워하는 나를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쓰기 싫다는 글자만 몇 줄씩 적다가 모닝페이지 노트를 여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새 노트의 위치도 모를 만큼 모닝페이지 없는 아침이 자연스러워졌다.
다행히도 원하던 마감을 해내고 책을 만들어 냈다. 그 일을 발판으로 삼아 더욱 글 쓰는 일에 매진하고 싶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하루 종일 매달려있던 책상이 있던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한 글자도 적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 취직하면서 글을 쓰던 일상과 완전히 멀어졌다. 쓰지 않아도 하루는 바삐 흘러갔다. 아침마다 전쟁처럼 치러지는 출근, 퇴근 후에는 친구를 만났고 주말이면 캠핑장으로 떠났다. 잘 쓰고 싶어서 아등바등했던 순간과 멀어져 보니 오히려 홀가분했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적성이 아니고, 주어진 일을 하고 적당히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쓰고 싶었다. 멋진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도, 좋은 책을 만나 남편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이야기가 있는 것들을 마주하는 순간이면- 쓰고 싶었다. 뭘 쓰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그냥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불쑥불쑥 찾아왔다.
마음의 소리를 흘려듣던 나는 결국 1년여 만에 다시 모닝페이지를 펼쳤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진득하게 적을 수 없었다. 일주일에 세 번을 쓰다가 한 달에 한 번, 또 석 달 만에 다시 노트를 펼치다 덮기의 반복. 다른 시도가 필요했다. 혼자서 다시 시작하는 게 어렵다고 느낀 나는 아티스트 웨이로 모임을 하는 공간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뉴아티 글쓰기 북클럽'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찾아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몇 달을 망설였다. 어느 정도 적응을 했지만 회사는 여전히 버거웠고, 일상에 자꾸 사건 사고들이 벌어졌다. 온전히 내려놓고 쉴 시간도 모자라는데 또 무언가를 벌리는 게 맞는 거냐는 물음을 넘지 못해 새해의 절반을 넘겼다. 하지만 쓰고 싶었다. 못 견디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고민 끝에 모닝페이지를 매일 쓰는 모임을 시작했다. 23년 2월에 시작했던 네 번째 노트의 마지막 장을 25년 7월에 채워냈다. 반년에 한 권을 채웠던 다른 노트에 비하면 곱절에 곱절의 시간이 더 담긴 노트였다.
그렇게 쓰지 않은 날을 포함해 4년 가까이 모닝페이지를 채우고 있다. 여전히 현실에 치여 부정적인 말들만 가득한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허무맹랑한 맑은 꿈을 꾸면서 쓰기도 한다. 열정적인 자세로 여행 내내 새벽같이 일어나 모닝페이지를 적기도 했고, 덮어두고 창고에서 몇 개월을 먼지만 쌓이게 두기도 했다. 얼렁뚱땅 두 권의 독립 출판 책을 낸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서투르다. 그저 쓰고 싶다는 마음만 있지 무얼 쓰고 싶은지, 왜 계속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분명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이유도 다뤄낼 방법도 모르지만, 마음속 누군가가 계속 쓰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요령도 없이 마음만 앞설 때면 나는 모닝페이지를 찾는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노트를 붙잡고 그냥 적어 내려간다. 잘 쓰려는 마음 없이, 머리에 생각나는 것들을 그대로. 그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언가를 쓰게 됐다. 비록 어디에 내놓기 부끄러운 짧은 단상이라 할지라도. 한 글자도 적지 않던 내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하루에 있었던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며 글을 쓰는 순간이 생겨난 것이다.
글쓰기는 긴 탐험과도 같다. 즐거운 순간도 있지만 괴로운 순간도 못지않게 존재한다. 한 번 해봤다고 두 번째가 쉽지 않다. 오히려 쓸수록 부담감에 짓눌려 자신을 괴롭히고 그만두게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듯이. 아마도 나는 새로운 탐험 앞에서 주눅이 들었던 게 아닐까? 뭣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동굴이 얼마나 깊고 어두웠는지를 생생하게 겪었으니까, 발도 못 떼고 얼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모닝페이지가 떠올랐다. 어떻게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를 그 노트 앞으로 데려다 놓고 싶어졌다. 혼자 힘으로 안 된다면 함께라는 말에 기대서라도 다시 쓰는 아침을 맞고 싶었다. 아마도 모닝페이지가 기나긴 탐험의 앞에 놓아둔 베이스캠프가 된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게 아닐까?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잠시 쉴 곳이 되어주고, 길을 잃었을 땐 다시 길을 찾을 기점이 되고, 멀리 도망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 기꺼이 그 시작점이 되어주는 곳이라는 걸 의식이 깨닫기도 전에 알아차렸던 것 같다. 아직 자신을 탐험가라 부르지도 못하는 어설픈 나에게 모닝페이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베이스캠프라고... 조금씩 다시 발을 떼보고 있는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