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웨이 1주차
아티스트 웨이 1주차를 다시 읽었다. 몇 년 만에 읽는 건데도 여전히 '아티스트'나 '창조성'이라는 단어가 나와는 멀게만 느껴진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 같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 있지만, 하늘도 올려다볼 시간도 없이 바삐 사느라 제때 바라보지도 못했을- 그 정도의 거리감이랄까?
나의 그런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저자인 줄리아 캐머런은 내면의 창조성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묻는 듯했다. 당신에게도 분명 창조성이, 아티스트적인 기질이 있지 않냐고, 혹시 잊고 있기에 멀게만 느끼고 있지 않냐고. 읽는 내내 끈질기게 물어오는 탓에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받았던 숙제가 있다. 커다란 종이에 알파벳 6개가 손바닥 정도 크기로 띄엄띄엄 인쇄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알파벳으로 연상되는 모양의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 종이를 받아 들자마자 크레파스로 단숨에 그려내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필로 밑그림을 먼저 그렸다. 누구나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알파벳이 상상하지 못했던 무언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독특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 번이고 지우개질했던 그때의 마음- 어찌 보면 나에게 있던 아티스트적인 기질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어린 나는 일기 쓰기도 좋아했다. 물론 방학에 쓰는 일기는 고역이 따로 없었지만, 학기 중에 쓰는 일기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학교에 오자마자 교탁 위에 일기장을 올려두면 하교 전에 받아볼 수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받아 들 때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제 쓴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빨간 펜의 흔적을 훑어내렸다. 빨간 펜으로 맞춤법을 교정해 주던 선생님들은 가끔 일기 하단에 짧은 문구를 적어주곤 했다. 공감과 위로, 감상이 담긴 그 짧은 문구를 나는 참 좋아했다. 마치 답장을 받은 느낌이랄까? 일기는 내게 단순한 숙제가 아니었다. 때로는 독특하고 신기한 주제를, 때로는 화가 나거나 즐거웠던 감정을, 때로는 궁금한 생각을 담아서 선생님께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는 공간이었다. 한 사람을 향한 글을 썼고,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독자의 후기를 받아보는 꼬마 작가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내 그런 모습을 유독 예뻐해 주셨다. 글을 잘 쓴다고 칭해 주셨고, 독창적으로 시도했던 숙제들도 높이 평가해 주셨다. 어린 아티스트인 우리는 성과와 업적뿐만 아니라 시도와 노력으로도 인정받아야 하고 또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아티스트 웨이, 64p) 아마도 어린 내가 만든 결과물이 엄청나서 칭찬하셨다기보다는 노력했던 시도와 노력을 잘 봐주신 거로 생각한다. 그런 선생님의 응원에 힘을 얻어 자신 있게 발표도 하고, 추천해 주신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었다. 어쩌면 내 안의 창조성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응원해 줬던 사람이 그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당신의 창조적 자존감을 방해하는 적을 세 명 적어보자'(아티스트 웨이, 83p)는 과제에서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20여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그날은 자리를 바꾼 날이었다. 6명씩 책상을 모아 조를 만들고, 새로운 조의 이름을 정해야 했다. 나는 유독 숫기 없는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앉게 되었다. 조 이름을 정하는 것부터 순탄하지 않았는데, 칠판에 상징처럼 붙일 원형 종이에 그림도 그려야 했고, 함께 쓸 도구를 담는 연필꽂이까지 만들어야 했다. 옆 조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벌써 무언가를 완성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정한 우리 조의 이름은 파랑새였다. 다른 조에는 귀여운 이름도 많았는데 열두 살이 보기에도 유치한 파랑새... 당시는 그게 최선이었다. 원형 종이에 파랑새를 연필로 그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파랑새를 열심히 담아봤지만, 아무리 봐도 새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우개로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다 시간에 쫓겨 엉성한 모양의 무언가를 그려냈다. 그 이후의 기억은 사진처럼 끊어진 장면들만 떠오른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화가 난 선생님이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찢어버렸다. 내가 그린 파랑새도 찢어졌고, 선생님에게 손찌검을 당했다. 손으로 뒤통수를 맞았는데 아프다는 감각보다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던 기억만이 선명하다. 아무리 멈추려 해도 눈물이 그쳐지지 않아 딸꾹질을 해대며 한참을 울었다. 회초리도 없이 맞았다는 것에 놀란 걸까,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나를 예뻐해 주던 선생님을 실망하게 한 것 같아 슬펐던 걸까. 집으로 돌아온 가방에는 새하얀 원형 종이가 들어있었다.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내일까지 만들어가야 했다. 다시 밑그림부터 그려보려 했지만, 도무지 그릴 수 없었다. 한참을 떨리는 손으로 고민하다 결국 아빠에게 대신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아빠가 그린 파랑새는 무사히 칠판 위를 날 수 있었다.
"아티스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잖아." (아티스트 웨이, 67p)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선생님과 남은 학기를 잘 보냈다. 여전히 나를 좋게 봐주며 응원해 주셨고, 내가 쓴 글을 칭찬해 주셨다. 청소년기에 글쓰기 겁이 없었던 건 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건이 내 안의 무언가를 바꿔버렸다. 서슴없이 독창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던 마음은 사라졌고, 새하얀 종이 앞에서는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밑그림도 그리기 전에 평가받는 게 두려워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되뇌었다. '그림은 아무나 그리는 게 아니다. 아티스트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고.
아쉽다. 그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겁 없이 빈 종이 위에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림은 그리지 않았지만, 사춘기 때 내내 글을 썼었다. 학업 스트레스를 일기처럼 쓰고, 스쳐 지나는 단상으로 짧은 소설을 쓰고, 친구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또 릴레이 소설을 쓰기도 했다. 교내 대회에서 제법 상을 받기도 했는데, 재미로라도 작가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배고픈 아티스트라는 통념에 맞서 예술 분야에 도전하는 아이들에게 흔쾌히 힘을 실어주는 부모는 드물다. 굳이 권한다면 예술은 그저 취미로, 창조적 소일거리로 삼으라고 한다. (아티스트 웨이, 66p) 엄마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글을 쓰고 싶다면 나중에 직업을 갖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혹여라도 재능 없는 딸이 헛되이 도전하지 않도록 말했다. 물론, 그런 어른들의 말에도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다. 고작 이 정도의 글을 쓴다고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아티스트는 날 때부터 뛰어난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되는 것이고, 나는 그런 재능을 가지지 못했다. 특출난 재주로 예체능 쪽으로 꿈을 키워가는 친구 부러웠다. 감히 내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 아티스트가 된다는 상상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연기를 하고, 작곡을 하고, 춤을 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에 그런 욕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티스트 웨이, 69p)
가끔 아티스트라는 말이 버거워 지우고 생각해 본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 멋대로 춤도 춰보고 싶다. 그것들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떠나서, 남보다 뛰어나게 잘할 수 있는지를 떠나서- 그냥 하고 싶다. 잘 그려야지만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잘 써야지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라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주관적 잣대로 꿈을 재단한다. 밥벌이가 안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할까 봐 먼저 선수를 치며 말한다. 그 정도 재능으로는 못해, 안되라고. 결국에는 자연스레 일어나는 마음을 스스로 부정하도록 만든다.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춤추며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욕구들을 소중히 대해 줄 수 없는 걸까.
나 또한 글 쓰고 싶은 욕망에 솔직해지는데 너무도 긴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못 쓰는 것 같아 쓸 자격이 없지 않냐고 말하는 마음속 검열관과 싸우고 있다. 여전히 아티스트라는 단어가 무겁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색하다. 하지만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쓰고, 그리고, 춤추며 멋대로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내 안의 예술성과 함께 살아가는 삶- 그 정도면 충분히 아티스트라고 불릴 만하지 않을까. 그러니 연습해야 한다. 어색하지만 억지로 되뇌며 나부터 하고 싶은 마음을 소중히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허우적대는 일상에서도 어떻게든 멋대로 글을 쓰고 있는 아티스트, 나는 리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