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 있다고 믿고 싶어

아티스트 웨이 2주차

by 리을

몇 년 전 무료한 일상의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금 적어도 좋아'라는 온라인 프로그램에 가입해 하루에 세 문장 이상씩 에세이를 썼다. 주제에 맞춰 글을 쓰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다 보니, 갑자기 소설에 관심이 생겼다. 읽을 때도 에세이보다 소설을 좋아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마침 온라인 프로그램에는 초단편 소설을 쓰는 모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충동적으로 초단편 소설 모임에 가입했다. 정말 충동적이었던 터라 어떤 소설을 적으면 좋을지를 한참 고민했다. 그런 내게 잠이 오지 않아 혼자 거실을 서성이던 어느 늦은 밤, 문득 '악몽'과 관련된 단상이 스쳤다.


악몽 때문에 제대로 잠들지 못해 괴로운 여자. 그녀의 악몽은 외면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악몽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그러다 우연한 장소에서 한 인물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꿈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라는 짧은 상상이 스쳤고, 그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나는 먼저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무서운 악몽을 시작했다. 소설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던지라 모든 게 어색하기만 했다. 내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순서나 계획도 없이 그냥 무작정 머릿속의 장면을 종이 위에 담아냈다. 커다란 스케치북에 상상한 장면을 멋대로 그려보기도 하고, 연결성 없이 떠오르는 단어를 무작정 적어두고 지우기도 했다. 적다 보면 그 상상에 빠져 웃음을 짓다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했고, 처음 보는 인물이 상상 속에 불쑥 등장하기도 했다. 짧게 끝내려 했던 이야기가 점점 불어났다. 조연으로 등장했던 캐릭터에 자꾸만 서사가 생겨났고, 들여다볼수록 그 조연은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쓰고 있는 이야기는 커다란 나무의 한 줄기, 에피소드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3개월여 만에 마무리 지은 초단편 소설은 내게 숙제를 남겼다. 언젠가는 그 커다란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완성해 보고 싶다는 소망과 같은 숙제를.


그 막연한 숙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운 좋게 백수가 되었을 때였다. 쉬면서 마감 없는 글을 쓰고 있었는데, 마침 지역에서 북페어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4개월? 아니, 3개월쯤 남은 마감 앞에서 나는 고민했다. 정리되지 않은 방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책으로 만들어 북페어에 내놓을 수 있을까? 한 번도 완성해 본 적 없는 소설을 몇 개월 만에 써낸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괜히 한다고 했다가 책도 없이 망신만 당하고, 기분 좋게 쓰고 있던 소설을 포기하게 되지는 않을까? 과연 내 책을 사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폭격 같은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생각할수록 북페어에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 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놉시스를 가지고 북페어 참가 신청서를 냈고, 참가 자격을 얻어냈다. 쓰는 내내 그간 읽었던 소설 작가들의 능력에 감탄하고 또 좌절했다. 문장력은 고사하고 전체 흐름도 탄탄하지 못한 내 이야기. 괴로운데 괴롭다고 말하는 것도 사치였다. 누구도 내게 소설을 완성하라고 협박하지 않았고, 그 모든 선택은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래, 그 무수히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뚫고 어떻게든 책을 만들었던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왠지 지금이 아니면 평생 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할지도 못한다는 불안감이 다른 모든 불안을 이길 정도로 거대했다.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어떻게든 쓰고, 400페이지에 조금 못 미치는 장편 소설책을 들고 북페어에 참가했다. 난생처음 참여한 북페어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글쓰기가 좋아서 책을 만들고 나누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행복했다. 무엇보다 그저 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던 나와 다르지 않았다. 이틀간의 짧은 여정이 끝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여운을 곱씹어 볼 여유도 없이, 전 직장의 상사에게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 상사가 말하는 근무 환경과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백수로 1년을 지냈던 터라 더 거절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무엇보다 근무시간이 짧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만들어둔 소설책을 판매하면서 새로운 글을 쓰기에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북페어가 끝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직장은 예상보다 바빴고,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근무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심신의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저녁 밥을 먹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틈을 내어 눕고 싶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기다렸던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그 안락한 시간 속에서 나는 가끔 굳게 문 닫힌 작은 방이 떠올랐다. 그 작은 방에는 서투른 몸짓으로 완성했던 소설책 재고가 쌓여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들락거리며 손에 쥐었던 연필, 볼펜, 노트, 스케치북, 태블릿, 노트북이 있다. 그래- 일에 좀 적응하고 나서 다시 하면 되지, 이번 달만 지나고, 무더운 여름만 지나고 나면...! 그렇게 한 달, 두 달, 1년까지 작은 방 앞에 서는 시기는 기한 없이 미뤄졌다.


어느새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시 시작하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충동적으로 방에 들어가 글을 끄적여보려 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시 모닝 페이지를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너무도 미미하고 하찮게 느껴졌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알코올 의존증 상태에서 회복되려는 사람이 '딱 한 잔'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듯, 창조성을 회복하려는 아티스트도 '딱 떠오르는 생각'을 물리쳐야 한다. 우리에게 딱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라는 자기 회의다. (아티스트 웨이, 89p)


'자기 회의' 돈 버는 일이 중요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리지도 않을 책을 홍보하고, 읽히지 않을 글을 쓴다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안락함 속에서 차일피일 미루면서 방치해왔던 진짜 이유, 적응을 위한 시간? 심신의 피로? 아니. 결국 소용없다는 그 생각을 물리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부끄럽지만 북페어가 끝나고 꿨던 꿈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어떤 교수에게 완성한 소설책을 보여줬다. 나는 그 교수에게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쓴 거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한참을 내 설명을 듣던 교수가 잘 썼다고 칭찬했고,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으니, 자신이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너무 깜짝 놀라고 행복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내게 영감을 준 대상에게 인정받았다는 그 충만감에 깨어나서도 한참을 곱씹게 했다.


모든 게 사기처럼 느껴져서 그에 따른 성공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어 한다. (아티스트 웨이, 102p)


물론... 꿈이니까 가능했을 거로 생각한다. 현실은 그냥 떠오른 상상을 적은 것이고, 구체적으로 영감을 받았다고 할만한 교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라니... 열심히 쓴 글로 보상 심리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무의식이 토닥여 준 것이 생각한다. 하지만 완성도가 어찌 되었든 마감하고 책을 만들어냈다. 남들이 웃을지라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고쳐 쓰면서, 어쩔 수 없는 마감 기한에 맞춰 쫓기듯이 냈지만- 해냈다. 소량이긴 하지만 북페어에서 책을 판매하기도 했다. 그 작은 변화들이 계속 일어날 수 있도록 내가 노력했더라면... 진짜 꿈 같은 기회가 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런 꿈 같은 기회가 오지 않을 거라는 자조적인 두려움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방법을 나는 선택한 걸까... 어떤 마음이었다 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고, 현실이라는 핑계에 맞춰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쳤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속 편하게 잘 지낼 것이지!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다. 언젠가는 다시 시작할 거라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쓰는 게,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보다는 그리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창조적 통로가 되는 과정을 즐기고, 결과를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창조성을 갈고 닦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결과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아티스트 웨이, 93p)


이 문장을 읽고는 한참을 서성거렸다.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게 더 쉽다라니... 결과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니... 참 멀고도 가까운 말이다. 결국 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나는 다시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있다. 다시 소용도 모를 글들을 써내려 가고 있다. 대체 작가가 가진 확신은 언제쯤이면 생기는 걸까? 진짜 유명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다면 생길까? 언제쯤이면 자기 회의에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진짜 출퇴근하듯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까? 내 작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 뿌듯하게...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나는 그냥 따라 해보는 수밖에 없다. 소용없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무엇이라도 써본다. 30분 일찍 일어나 모닝페이지 세 쪽을 억지로 채워본다. 그리고 책을 믿어보려 한다.


"위대한 창조주여, 양은 제가 책임질 테니 질은 당신이 책임지소서!" (아티스트 웨이, 109p)


부디- 그 존재가 신이든, 무의식이든, 우주든, 뭐건, 창조주라는 존재가 있다면, 무어라도 글은 써 내려갈 테니 그 질은 당신이 책임져달라고 떠넘기고 싶다. 그리고 이 부질없어 보이는 글이 미래의 어딘가와 연결될 다리가 되기를 희망하며 꾸역꾸역 글을 쓴다.


조금 더 용기가 생긴다면 어둠 속에 있는 저 소설책들도 다른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줄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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