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브레인 조성봉 이사의 멘토 인터뷰
좋은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은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 누군가는 창의성을 키우고, 누군가는 프로세스를 가다듬고, 누군가는 전문성을 연마합니다. 저 같은 UXer 들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뭘까요?
그것은 아마도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쓰기 쉬울뿐더러, 생각지 못했던 편리함과 감성까지 전달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디자인’을 만들겠다는 것은 UXer들에게 꼭 필요한 마인드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방법론과 지식이 요구됩니다. 아무리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UX 방법론과 지식 없이 디자인을 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의 성공, 나아가 그 기업/브랜드의 성공이 UX에 달려있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 단순히 디자이너 개인의 마인드나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체계와 방침, 방법론과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은 곧 그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일을 일컫습니다. ‘나를 위한 디자인’, ‘나만의 개성과 스타일’은 적어도 UX 디자인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라? 저는 거기에다가 ‘시대가 원하는 일을 해라’,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는 얘기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시대 흐름에 따라서, 서비스 분야에 따라서, 사용자 유형에 따라서 가치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에는 천편일률적인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수 백여 개의 UX 과제를 진행해 온 저 같은 사람에게도 새로운 과제는 늘 새로운 고민거리와 접근 방법을 안겨줍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제품/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이전의 경험과 노하우가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UXer들에게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정진(精進)은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시대와 현장과 사용자에게서 멀어진 순간, 그는 단지 지식이 많은 사람일 뿐이지 디자이너라고 불리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그들과 같이 일해보면 기업과 다루는 분야는 다를지라도 특유의 긴장감과 최상을 결과를 향한 집념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겪은 UXer들에게서는 내밀한 자신감이 엿보입니다. ‘언제는 쉬웠던 적이 있었어?’, ‘원래 우리 일이 그렇잖아’, ‘우리가 잠시 이렇게 주저하는 동안에도 애플(또는 테슬라, 넷플릭스, 스타벅스)이 무언가 준비하고 있겠지?’ 라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스무 살에 그린 50살의 저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결재서류나 검토하고, 회의실 상석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거라고 상상했었는데, 지금의 저는 스무 살의 그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이 ‘행복해? 일은 잘돼?”라고 물어본다면 ‘매일이 즐겁지는 않지만, 일 때문에 더 행복합니다. 제게 좋은 직업을 주셨어요. 후회 안 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만들 디자인이 지금까지 만든 디자인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이가 들면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적어도 UXer라는 직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60대 이상의 UXer들이 아직까지 실리콘밸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죠. 시간이 더 지날수록 UX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UX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성장이 어려운 만큼 딱 부러지게 이 일을 설명드리기도 어려운데, 최대한 간결하게 UX 디자인의 특징을 말씀드립니다.
UX 디자인은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습니다. 웹/모바일과 같은 UI/UX 분야에서부터 B2B 시스템, 산업용 솔루션에도 적용되고, IoT나 웨어러블, 자동차, 전자제품 등에도 적용되며, 최근에는 AI 서비스와도 접목되고 있습니다.
UX 디자인은 현장에서 많은 활동들이 이루어집니다. 현장에서 이해관계자나 사용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경험을 관찰하고 문제나 기회를 찾아내는 게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입니다.
UX 디자인은 구체적인 디자인 결과물 외에도 사용자에게 제공할 가치나, 시장 내 전략, 경쟁사와의 차별화 방안을 다룰 때도 많습니다.
UX 디자인은 참여자 간에 자유로운 논의가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기존의 생각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갇힌 생각은 매우 위험하며, UX 관점에서 다양한 생각이 교류되었을 때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UX 디자인은 사용자의 인지적인 수용 능력이나 감성적인 상태, 신체적인 제한조건을 자세히 다룹니다. 상식적으로 논하는 수준이 아닌, 매우 깊이 있게 사용자가 처하게 될 인지/감성/신체적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인지심리학이나 뇌인지과학과 같은 학문을 어느 정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UX 디자인은 사용자의 개별적인 문제나 니즈뿐만 아니라 사회/기술적인 변화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회/기술적인 트렌드를 모르면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디자이너로서 향후의 진로와 비전을 고민하실 때 위에서 말씀드린 UX 디자인이 여러분들께 참고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라이트브레인 UX 컨설팅 그룹 조성봉
_영디자이너에게 전하는 선배, 스승의 ‘격려’ 혹은 ‘노하우’
“Cheer up” or “Know-how” of Seniors and Mentors to Young Designers
#1. 나는 누구?
저는 UX 디자이너, 우리끼리는 UXer라고 부르는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UX 1세대라고 누가 얘기하더군요. UX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컨설팅을 이끌고 있기도 하지만, 1년에 30여 차례의 강연과 세미나,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자문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바쁘게 살지만 이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항상 즐겁습니다
#2. 디자인? 디자이너? 나는 이래서 좋다!
디자인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저는 구글의 리나 머천트가 얘기한 다음 내용을 종종 인용합니다.
“디자인은 우리가 만든 경험을 통해 고객에게 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이고 유용한 것에서부터 출발해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닌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죠. 그런데 그것을 나의 경험과 창의성에 기반하지만 않고, 사용자의 구체적인 경험, 다시 말해 그들의 고충과 갈등, 우려, 기대, 행동 등에 기반해서 한다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사용자를 암묵적으로 배제한 채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디자인이 저의 디자인이 아니라는 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 디자이너에게 직장/직업이란 이런 것이다!
먼저 제가 조금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굳이 디자인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야 돼?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잖아?” 라고 누군가는 얘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할 수도 있는 제 생각에는 우리 디자이너들이 이 직업에 대해서 좀 더 소명감을 가지고, 좀 더 철두철미하게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눈 앞에 있는 대상에 때로는 겸허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다가가며 그 결과로 만들어질 사용자의 가치를 미리 마음속에 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뛰어난 디자인을 만들어냈는지는 얼마나 뛰어난 가치를 전달했는가에 달려있으며, 그것이 그 디자이너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봅니다. 때문에 직장이 어디인지, 현재 연봉을 얼마나 받는지 보다는 지금 내가 어떻게 디자인을 잘할 수 있을지, 디자인이란 직업이 본인의 성향과 맞는지, 정말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는 지를 깊이 고민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여러분이 디자인을 통해서 정말 뛰어난 가치를 전달했다면 돈은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다중지능이론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8가지로 얘기합니다. 일반적인 디자이너에게 공간적 지능과 언어적 지능이 중요하다면 저같이 UX를 하는 디자이너들은 사용자 공감을 위해서 대인관계 지능, 개인 내적 지능도 중요합니다.
#4. 포트폴리오? 면접? 이렇게만 해라!
처음 사회로 나아가는 시점이시라면 분야를 한정하기보다는 향후 몇 년간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Wannabe 회사를 찾는다면 물론 좋겠죠. 몇 년간 노력 끝에 (본인의 자랑스러운 포트폴리오를 들고) 구글이나 애플에 입사한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본인이 하고 싶은 디자인을 잠시 접어두고, 사회가 원하는 디자인, 시대 흐름상 각광받을 수 있는 디자인 대상을 찾아서 포트폴리오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신입 디자이너들은 공공 서비스를 포토 플리오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취업하려는 직장이 쇼핑몰이나 전자회사라면 과연 그 포트폴리오가 면접관들에게 어필할까요? 마지막으로 시대 흐름이 UX, User Centered, Design Thinking에 있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제가 UXer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 흐름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오래전부터 UX 중심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적용해왔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외에도 최근에는 UX에 관심 없었던 많은 기업들이 UX나 Design Thinking을 조직 내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AI 기반 UX를 곁들이신다면 금상첨화겠죠.
#5. 창업? 인디디자이너? 프리랜서? 백수작가? 디자인 공무원?… 디자이너가 할 일은 무궁무진!
본인이 어떤 디자인을 하겠다는 세계관, 나의 디자인은 어떤 것이다는 가치관만 갖추셨다면 그 형태는 크게 관계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기회의 장이 더 넓은 세계를 찾는 게 좁은 울타리 내에서 매번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죠. 나중에 창업을 하시거나 성공한 프리랜서가 되실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호흡을 길게 가지시고 누구한테 얘기해도 알아줄 만한 포트폴리오들을 만들 기회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신입으로 입사해서 제 밑에서 4년 동안 일하다가 얼마 전에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남기더군요. “제가 라이트브레인에서 4년 동안 쌓은 포트폴리오를 이직하는 기업의 면접관이 오히려 부러워하더라고요”
#6.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 위기는 기회더라!
이 질문에 대해서는 딱히 답할 게 없네요 ㅎㅎ. 다만 현장에 있는 제가 체감하기에는 비대면 제품,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나고 그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비대면인데 대면의 감성과 경험을 제공하려면 아무래도 AI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겠죠?
#7. 디자이너가 되려는 ’너’에게 꼭 보태고 싶은 말!
성공한 디자이너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돈도 많이 벌죠. 다른 직업과 달리 디자이너로써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어림없습니다. 세상을 많이 보고 듣고 느껴야 하며, 책도 많이 보시고,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뛰어난 건축/미술/제품/광고/편집/서비스 결과들도 많이 접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공한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나서 그들을 놀라게 할 만한 ‘매우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을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고민을 많이 하시고, 많이 작업하시고, 다른 디자이너들의 평가가 아닌 실제 사용자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꽤 어려운 직업을 하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드로잉 능력이 뛰어나거나 툴을 잘 다룰 줄 아는 게 디자인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만한 무언가를 적어도 3개는 만들어야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안 됩니다. 이 직업을 좋아할 자신이 없다면 다른 선택을 하시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DDP 영디자이너 잡페어’ 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