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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ghtbrain Lab Feb 26. 2021

04. 구성주의 양식의 대표적 인물, 엘 리시츠키

Design History 04

[Design History 04] 구성주의 양식의 대표적 인물, 러시아의 엘 리시츠키


금주는 저번 주 SWISS MODERN에 이어 CONSTRUCTIVISM(구성주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성주의는  초기 그래픽 디자인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한 양식입니다. 그중에서도 구성주의 양식의 대표적 인물인 엘  리시츠키(El Lissitzky)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 구성주의 운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엘 리시츠키(El Lissitzky, 1890~1941)는 선구적인 이미지와 혁신적인  표현 양식으로 초기 그래픽 디자인의 방향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그의 몸에는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로 반유대주의가 팽배했던 러시아에서 입학을 거절당한 뒤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건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배운 구조적이고 수학적인 건축의 특성은 그의 예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수년이 지나 이윽고 러시아로 돌아온 엘 리시츠키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에 의해 비텝스크 예술 학교의 교사가 됩니다.



 그는 여기서 또 한 명의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절대주의(suprematism)의 창시자인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입니다. 



 그는 샤갈과 말레비치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회화 스타일을 개발하는데 이를 ‘프라운(PROUN)’이라고 명칭 하였습니다.

 이 기하학적 추상화 양식은 훗날 구성주의 운동의 기틀이 됩니다. (아래는 그의 작품 중 대표격인 “붉은 쐐기로 백군을 강타하라”입니다)



 엘 리시츠키는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볼셰비키 혁명을 인류를 위한 새로운 출발로 간주하며 이 시기부터 엘 리시츠키는 개인적인 미학을 배제하며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였습니다.

 이 당시 그래픽 디자인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강조되었습니다. 그가 구성주의 운동에 적극적인 이유도 이런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구성주의자들은 예술 작품을 부르주아를 위한 구시대의 산물쯤으로 여기고 거부하였으며, 새로운 표현 방식인  추상화로 무장해 예술과 노동의 구분을 없애려 했습니다.


현대 21세기 디자인 비평계의 흐름에서는, 소비자 주도 디자인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써 엘 리시츠키로 대표되는 구성주의가 표방했던 담론들을  다시금 꺼내 부분적으로 활용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포스트모던이 가진 특질중 하나인 다원성과 자본주의가 만나 출산된 가격맞춤 디자인들에 대한 대안쯤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종합 스토어 “다이소”로 대표되는 가격맞춤 디자인들의 하향 평준화된 형태적 조악성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 지위가  낮다면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할 수밖에 없는 사회현실 속에서 현재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MUJI나 IKEA의 최초 기획인 디자인된 표피를 벗겨내 제작공정과 가격등의 투명함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기획은 분명 성공했지만, 곧 이어 SPA브랜드들의 양산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구성주의자들은 변화를 위한 변화를 배척시하며 “최적의 기능을 갖춘 하나의 형태만 찾자”라는 실용주의적인 관점이 강하게 녹아있습니다.
 (이 점은 바우하우스의 이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구성주의를 거쳐 데스틸, 바우하우스를 거치는 동안 나온 무수히 많은 공산품들은 세월이 지난 현재도 각 제품마다 형태적 원형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디자인이 출시되는 현대 디자인의 흐름과는 사뭇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20년대에 엘 리시츠키는 독일 등 유럽을 자주 오가며 데 스틸(de stijl), 바우하우스(bauhaus), 다다이즘(dadaism)그리고 유럽의 구성주의자들과 깊은 교류를 맺습니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역사적으로 아방가르드 운동이 일어날때마다 엘 리시츠키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그는 주요 전시회에 참여하고, 바우하우스에서 강연을 하며 <메르츠>지의 편집을 맡았습니다.

 이처럼 폭넓은 활동을 펼치며 포스터와 출판 그리고 전시회 디자인에서 의미 있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바우하우스에 큰 영향을 미쳤고 20세기 그래픽 디자인의 물적 토대들을 다양하게 고안해냈습니다.

 또한 그는 1920년대에 이미 사진제판 방식이 금속활자를 대체하여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디자이너가 사회 속에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하나의 표준을 설정해 놓은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위에까지의 설명은 엘 리시츠키라는 인물의 활동영역과 구성주의에 대한 간단한 요약들입니다.


여기서 구성주의에 대해 제가 조금 더 심도깊게 다루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다시 재점화된 “구성주의”라는 말에 대한 번역의 문제입니다.
 구성주의와 관계된 다양한 사실들을 인용해서 글을 썼기 때문에 다소 어려운 내용들이 있더라도 관심있으신 분들은 계속해서 읽어 내려 가주셨으면 합니다.  



 현대미술사와 디자인사 서술들에 공통적으로 부각되는 대표적인 역사적 시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입니다. 아래는 러시아 혁명에 관한 링크입니다.

http://finedays7324.blog.me/120159305850


위에 언급했다시피, 선구적인 예술가로 자주 거론되는 엘 리시츠키, 타틀린, 로트첸코와 같은 이들은 조각과 회화뿐만  아니라 포스터와 책, 제품디자인까지 넘나드는 총체적인 예술을 실현함으로써 순수미술과 응용미술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삶에  예술을 적극 도입한 혁명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미술사와 디자인사 양 진영 모두에서 훌륭한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술을 통한 소비에트의 사회적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이들의 혁명적 실천을 일컬어 후대의 사람들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라고 부릅니다.
 바바라 스테파노바가 를 낭독한 1920년대 초반, 예술을 통한 삶의 변혁을 약속한 일군의 예술가들이 결집합니다.
 (세계를 바꾼 거대한 흐름속에는 멋들어진 선언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쟁점인 “Constructivism”의 우리말 번역어로는 흔히 <구성주의>혹은 <구축주의> 라는 용어가 모두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의 수많은 디자인 역사서나 이론서에는 <구축주의>가 아닌 <구성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합니다.
 (위의 제 글에서는 편의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이 통용되고 있는 <구성주의>쪽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Constructivism’을 번역할 때는 <구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굳이 <구성주의>가 아닌 <구축주의>라는 용어가 힘을 얻고 있는 까닭은, <구성>이라는 용어가 에 더 가까운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구성하면 떠오르는 예술가는 몬드리안이 있습니다.) 



 은 미술사의 여러 줄기들 중 러시아 아방가르드와는 거리가 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대척점이라 볼 수  있는 <모더니즘>계열의 미술이 지닌 대표적 특성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사용된 <모더니즘>은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모더니즘>이란 단어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덧붙입니다.


디자이너들에게 통용되는 절제되고 직각적으로 표상되는 양식적 특징이나 경향을 가리키는 <모던함>과는 달리 그린버그(미국의 미술평론가)와
 추상미술(잭슨폴록으로 대표되는)로 대표되는 좁은 의미의 특정 예술 사조를 일컫습니다.) 19-20세기의 서양미술은 구체적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전통에서 점차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조형 요소들을 캔버스 위에서 <구성compose>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러한 양식이 지배했던 예술사조를 <모더니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더니즘>이란 용어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평론가인 “그린버그”가 추상미술을 다른 인공물(공산품)과 구분되는 순수한 예술로서 옹호하기  위해 끌어들인 회화 고유의 <순수성>, <무관심성>, <자율성>등을 대변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개념들은 18세기 칸트와 같은 유럽 철학자들에게서 유래한 미학적 개념으로, 그린버그가 최초로 창안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그린버그는 순수미술, 특히 회화의 역사를 2차원의 캔버스가 지닌 “평면성”이라는 고유의 특성을 획득해나가는 행위를 통해 예술의 본질에 다다를수 있다는 의견을 펼쳤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그린버그는 잭슨폴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가 회화가 그 발전과정에서 정점에 달했음을 입증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린버그는 모더니즘이란 산업화 이래로 민주화된 문화 아래에서의 미학적 수준의 저하(소비자 주도 디자인)와 위협으로부터 그 질을 지키려는 계속되는 노력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결국 모더니즘이란 어떤 운동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궁극적인 미학적 가치(이데아)를 향한 일종의 지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팝 아트 등 일군의 예술가들은 20세기 이후 지속되어 온 아방가르드를 총칭하는 모더니즘의 일부를 비난하는 한편,  모더니즘의 현학화와 귀족주의를 배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곧바로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미술사적 전개과정을 통해 위에서 말한<구성주의>와 그린버그가 말한 <모더니즘>의 모순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2)이라는 작품을 계기로 출발한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작품들은 표면적으로는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예술관에 잘 적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 구축주의자들은 예술의 여러 영역에서  <순수성>이라는 순수미술의 규범에서 어긋나는, 도리어 대립하는 의도를 지닌 작업들을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즉 삶의 변혁(정치적)을 위해 예술을 도구적(소비에트 이념에 대한 ‘봉사’나 ‘헌신’등의 의미에서)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린버그가 말하는 모더니즘의 이상에는 본질적으로 부합할 수 없게 됩니다.


순수한 미적 경험을 강조하는 <모더니즘>은 이를 뒷받침하는 (오늘날의 흰 입방체의 미술관이 대표하는)예술제도와 함께 보수화되는 경향으로 흘러 점차 삶과 분리되어 갑니다.
 이렇게 삶에서 동떨어진 <모더니즘>의 대척점에 서있는 러시아 예술가들의 혁명적 예술실천이 바로 <러시아 아방가르드>입니다.  



 따라서 명백히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아방가르드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러시아 은, <모더니즘>의 양식적  특징에 더 가까운 <구성>이 아닌 <구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더불어, 러시아 혁명 당시의 예술과 디자인 실천들이 강조한 <입체성과 낡은 사회를 허물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라는 의미 또한 <구성>보다는 <구축>이라는 용어가 더 잘 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비록 당대에 그들의 소박한 유토피아주의의 이상은 실패했지만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이후 예술가들이 “자율성”과  “순수성”이라는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능성’과 ‘사회성’으로 눈을 돌리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오늘날 디자인을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의 근거 또한 당시 이들의 예술실천에서 찾을 수 있을듯 합니다.
 훌륭한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책임감을 지닌 <사회적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행보는 오늘날 예술실천의 전방에 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연1) ‘구축주의’라는 번역어는 최근의 미술사 서술의 규범을 따른 것입니다.
 디자인사에 비해 미술사는 학문적 역사가 훨씬 깊은 것이 사실입니다.
 분과학문으로서 미술사는 오랜 세월동안 다양한 관점의 저술들이 풍부하게 산출되어 왔고 최근에는 역사 서술방식 자체에 대한  재검토와 비판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디자인사 연구의 전통은 아직 충분히 정립되지 못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디자인사나 디자인 이론서들에 등장하는 관련 용어들의 개념을 정리하는 데 기존의 미술사학계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들을 참고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연2) 위에서 사용된 <모더니즘>은 우리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모더니즘>이란 단어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덧붙입니다.
 디자이너들에게 통용되는 절제되고 직각적인 어떤 양식적 특징이나 경향을 가리키는 <모던함>과는 달리 그린버그와 추상미술(잭슨폴록으로 대표되는)로 대표되는 좁은 의미의 특정 예술 사조를 일컫습니다.
 사실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미술사 내에서도 서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여러모로 혼동하기 쉬운 용어이기도 하기 때문에 5~6주에 거쳐 모더니즘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봐도 좋을듯 합니다. 


부연3) 넓은 의미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러시아 구축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반예술을 지향하는 다다이스트들(마르셀 뒤샹으로  대표되는)도 당연히 포함합니다. 아방가르드라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주류담론을 전복할수 있는 강력한 예술운동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아방가르드는 역사적으로 무한히 되풀이 되고있고 현재도 어느시점에 아방가르드가 되풀이 될지 모릅니다.
 자세한 내용은 페터뷔르거의 <아방가르드의 이론>이라는 책을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 라이트브레인 가치디자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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